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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다 늙은 마피아가 털사로 간 까닭은

114. 털사 킹 - 테일러 쉐리던

 

올해 실제 나이 77세(1946년생)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극 중 75세 마피아 역을 맡은 국내 OTT 채널 TVING의 파라마운트 시즌 드라마 9부작 ‘털사 킹’은 미국 털사(Tulsa)를 배경으로 한다.

 

털사는 미국 중남부 오클라호마주의 두 번째 도시로 인구는 40만이 좀 넘는, 인구밀도가 낮은, 미국 기준으로 보면 이른바 ‘깡촌’ 개념의 지역이다. 인디언 크리크족이 카지노를 운영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며, 이 인디언 후예들도 신종 마피아로 불린다.

 

털사가 있는 오클라호마주는 위로는 캔사스가 있고 아래로는 텍사스가 있는 지역이다. 소위 바이블 벨트에 속한 지역 중 하나인 곳이다. 바이블 벨트는 미국 중남부에서 동남부에 걸친 기독교 지역으로 대체로 보수적이고(공화당, 심지어 트럼프를 찍고) 동성애에 대한 반대론이 강한 지역이다.

 

 

미국 최대 도시인 동부 뉴욕이나 서부 LA 등지에 있다가 이곳 털사로 온다는 것은 한 마디로 좌천이나 유배를 뜻한다. 주인공 드와이트 데이빗 맨프레드(실베스터 스탤론)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뉴욕 마피아 보스 피트 인버니치(A.C.피터슨)의 아들 치키(도미닉 롬바르도치)가 1997년에 저지른 살인사건의 죄를 대신 뒤집어쓰고 25년을 복역한 후 만기 출소한다. 조직 보스 피트와 드와이트는 두목-부하관계라기보다 절친 사이다. 드와이트는 굳게 입을 다문 채 25년을 버틴다. 조직의 비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함구한다.

 

그러나 인비니치 패밀리는 감방에서 돌아온 그를 애물단지로 여긴다. 그냥 두자니 이제 실질적인 보스가 된 치키에게 걸리적거릴 것이고, 버리거나 처치하자니 조직의 룰이나 의리상 그럴 수가 없다. 새 보스 치키는 그에게 털사로 가라고 명한다. 거기서 새롭게 조직을 일구고, 개척하며 살라는 것이다. 이제 드와이트는 인비니치 패밀리의 털사 지부장이 된다.

 

드와이트는 거칠고 폭력적이지만 나름 지혜롭고 현명한, 게다가 25년의 복역 기간 중 책을 엄청나게 읽어서 꽤 유식하고 지적이기까지 하다. 그는 ‘샐러리맨의 죽음’을 쓰고 마릴린 몬로와 살았던 미국 최고의 희곡작가 아서 밀러를 설명하면서 헨리 밀러와는 다르다는 점을 이야기하는데(헨리 밀러가 쓴 건 ‘북회귀선’이야 라고 말하면서), 털사에서 조직하게 되는 신종 단원 중 그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그의 운전기사가 된 25세 흑인 청년 타이슨(제이 윌)은 물론 대마초 판매상 보디(마틴 스타)조차 우드스탁이란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세상은 무식해졌다기보다 바뀌었다. 25년이라는 큰 강이 생긴 것이다. 마피아 깡패 드와이트가 겪는 털사의 삶, 신천지의 인생이 격랑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드와이트는 옛날 방식으로, 25년 전에 맺었던 인간관계의 방식으로(그는 주로 현금을 쓴다) 자기만의 마피아 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한다.

 

‘털사 킹’은 9부 에피소드 내내 다양한 사건과 상황들을 전개시키며 보는 사람들을 TV 앞에 바짝 붙여 앉힌다. 로맨스도 비교적 상당한 분량으로 나오는데, 이 늙은 마피아는 스테이시라는 미모의 중년 여성(안드레아 새비지)을 사귀지만 끝은 그렇게 좋지가 못하다.

 

그녀는 에피소드 내내 드와이트 옆에서 묘한 관계를 맺는다. 연방 기관 AFT(Bureau of Alcohol, Tobacco, Firearms and Explosives :미국 주류 담배 화기 단속국) 요원인 여자가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가 자신과 같은 처지이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잘 나가던 요원이었던 여자는 9·11의 트라우마를 겪었고 이른바 설리 사건(미국에서 항공기가 허드슨강에 불시착한 사건) 때 큰 실수를 해 털사로 밀려온 인물이다.

 

 

스테이시는 드와이트와 동침한 다음 날 그에게 나이를 묻는다. 드와이트는 그녀에게 그렇게 직접적으로 묻지 말고 JFK가 암살됐을 때 몇 살이었냐는 식으로 물어보라고 한다. 그때 몇 살이었냐고 여자는 다시 묻고, 남자가 고등학생이었다고 하자 여자는 혼비백산 바로 옷을 챙겨 입고 호텔 방을 나선다. 나가면서 여자는 이렇게 소리친다. “난 당신이 꽉 찬 쉰다섯인 줄 알았다고!”

 

드와이트가 정작 마음을 기울이게 되는 여성은 스테이시보다는 나이가 좀 더 든 마가렛 드베로(다나 델라니)라는 인물이다. 목장의 여주인이고 아마도 이번 시즌1보다는 시즌2에서 드와이트를 위해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목장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드라마 내내 늙은 백마 한 마리가 나온다. 파일럿이란 이름의 이 말은 종종 목장에서 탈출해 말발굽 소리를 또각거리며 시내 곳곳을 다닌다. 파일럿은 늙어서 소용없는 말이지만 여전히 품위 있는 자태를 지녔다.

 

 

새벽, 차가 비어 있는 거리에서 말갈기를 휘날리며 걸어가는 파일럿의 모습은 주인공 드와이트의 모습과 대구(對句)된다. 드와이트 역시 파일럿처럼 늘 말갈기를 다듬으며(정장으로 빼입으며) 다닌다. 그 역시 외롭고 늙은데다 쓸모가 없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마피아 패밀리 중간보스로서)품위가 있고 매력적이다. 여자들이 드와이트에게 빠지는 이유이다.

 

‘털사 킹’은 그래서, 마피아 이야기인 척 마피아 이야기가 아닌 드라마이다. 드와이트는 털사의 터줏대감인 조직 폭력배로 바이크 갱단 카올란왈트립 일당(리치 코스터)과 일전을 벌여야 한다. 그 와중에 AFI와 FBI 양쪽의 추적을 받는다. 왈트립의 수하로 들어간 지역 경찰까지 그를 귀찮게 한다.

 

 

그러나 정작 주인공 드와이트가 회복하거나 되찾는 것은 이들을 물리치고 새롭게 건설하는 조직 패밀리 ‘따위’가 아니다. 그가 털사에서 새롭게 얻는 것은 가족관계 같은 파트너들, 젊은이들이다. 드와이트는 실제로 자신의 딸을 되찾기도 한다.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딸 티나는 오랫동안 범죄자인 그를 증오해 왔지만 결국 아빠 곁인 털사로 오게 된다(이 부분이 다소 억지스럽다).

 

‘털사 킹’은 갱스터 드라마가 아니다. ‘털사 킹’은 갱스터 드라마인 척, 갱스터 드라마를 변주한 가족 드라마이다. 9개의 에피소드를 흥미 깊게 혹은 주의 깊게 지켜보게 되는 이유이다.

 

‘털사 킹’은 고령화 사회를 우회적이면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는 많은 사회적 정치적 메타포가 담겨져 있는데, 드와이트와 운전기사 타이슨의 관계를 통해 신구세대 갈등과 흑백 갈등 문제를 이야기하곤 한다. 세상의 어느 사회처럼 기이하게 부정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미국사회에 대해 한 늙은 현자의 안타깝지만 따뜻한 시선을 담아 내고 있다.

 

드와이트는 자신이 머무는 호텔에서 어두워지는 창밖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린다. “피투성이가 됐지만 패배하진 않았어. 다운이 됐어도 여전히 난 링 위에 서있어.” 미국이 갖고 있는, 올드하지만 여전히 의미있는 자본주의적 가치, 인간이 지니고 있어야 할 존엄성과 품격을 말한다. ‘털사 킹’의 매력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대본, 시나리오가 돋보인다. 현재 미국 할리우드의 가장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 테일러 쉐리던(‘시카리오’, ‘로스트 인 더스트’, ‘윈드 리버’)이 전편을 썼다. 텍사스 출신인 그는 털사가 고향인 것처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 낸다. 사실 이 ‘털사 킹’의 제목은 아벨 페라라 감독이 1990년에 만든 ‘킹 뉴욕’에서 가져 온 것이다. ‘킹 뉴욕’은 잔혹했다. ‘털사 킹’은 인간적이다.

 

세월이 바뀐 만큼 마피아 두목도 폭력배로서만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법이다. 그건 자본주의가 점점 인간적인 얼굴이 돼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마피아적 삶과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것에는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전설의 영화 ‘대부1·2·3’ 시리즈가 오랜 시간 늘 해왔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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