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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곡의 현대사 부둥켜 안은 '거리의 신부'

 

우리는 그를 `거리의 신부‘라고 부른다. 소용돌이 쳤던 현대사의 주요현장에서 항상 중심에 서있었던 그가 지금은 평택미군기지 이전 예정지역인 평택 팽성읍으로 이주해 살고 있다. 질곡의 현대사를 온몸에 부둥켜 안고 전국을 자신의 집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문정현(66)신부를 25일 `대추리 역사관’에서 만났다.
헬멧을 쓰고 빨간색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문 신부에 대해 대추리 주민들은 `오토바이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문 신부는 이날도 여느 때처럼 하얀 수염을 늘어뜨리고, 환한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발걸음은 그리 가벼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안방보다는 길거리에서 생활해온 지난 30년이 가져다 준 병으로 매우 힘들어했다.
문 신부는 “왼쪽 다리가 불편하고 그래서인지 골반과 허리도 좋지 않아“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지난 6월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저지 및 김지태 이장 석방 등을 위해 21일간 단식한 이후로는 회복이 더디다. 하지만 ‘길위의 신부’로 살았던 30여년 역정과 대추리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동안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고, 눈빛은 더욱 강렬했다.
문 신부는 1974년부터 길에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 반 독재정권 투쟁의 시발점된 ‘인혁당 사건’은 ‘굴곡의 인생’을 알리는 서곡이었다.
당시 문 신부는 인혁당사건에 연루된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조작사건으로 사형까지 처한 것을 알게 됐다. 인혁당사건에 연루된 관련자들의 처절함을 보고 남의 일로 여길 수 없었다.
“처형된 8명의 이름은 생생하지만 생면부지야”
인혁당 사건을 계기로 문 신부는 노동자 곁으로, 농민 속으로 들어간다. 그는 정권 교체로 문민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종횡무진 시민운동의 현장을 누볐다.
1989년에는 비밀리에 방북한 임수경 씨와 동생 문규현 신부가 판문점을 통해 남측으로 귀환하면서 통일운동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문 신부는 “동생과 임수경은 48년 김구 선생 이후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과했어”라며 동생을 자랑스러워했다.
“문익환 목사는 그때 ‘홈런’이라고 했어. 표현이 ‘깨끗한 처녀, 총각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어. 나한테 그랬다니까”
“가서 보니 같은 형제, 같은 자매더라, 끌어안고 서로 사랑할 수 있더라. 뿔이 없더라. 사람 사는 동네더라 이거야. 서경원 의원, 문익환 목사가 얼마나 지탄을 많이 받았어? 그런 걸 때려부순 거지. 광고로 따지면 돈으로 환산할 수 있겠나?”
문 신부는 “통일운동을 하다 보니 주한미군이 눈에 거슬렸다”고 말했다.
그는 군산에서 신부생활을 하게 된 1997년, 미군문제에 눈을 뜨게 됐다.
“미군기지로부터 오는 피해가 너무 심각했어. 특히 공여지 문제는, 공여지에 건축을 하면 땅 주인도 몰라.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도 알게 됐고, 32개 조항도 알게 됐어.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니고 종속 관계구나…”
때마침 벌어진 군산 미공군기지 사용료 협상에서 시민사회단체의 압력은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갔다.
하지만 미군기지 문제는 군산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적인 문제였다.
문 신부는 ‘불평등한 SOFA 개정 국민행동’을 조직했다. 출범 초기 127개였던 단체는 146개로 늘어나 있다. 시간은 매향리, 맥팔랜드 사건, 효순이 미순이 사건, 이라크 파병에 이어 미군기지확장문제까지 흘렀다. 2004년 전국 70여개 도시를 돌며 ‘대추리’의 실상을 알렸던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은 2005년 아예 대추리로 이주해 들어왔다.
문 신부는 “당사자들과 함께 사는 것이 유랑”이라고 했다. 그는 “평택문제는 한국정부가 국민을 속이고 지금까지 온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군사정책, 전략적 유연성, 해외주둔군 재배치 때문인데 ‘개편’ 얘기는 없고, ‘미군기지 통폐합’만 거론했다는 것이다.
그는 “국방부가 ‘통보’했잖아, ‘귀하의 땅이 미군기지로 확장된다. 토지는 국방부가 협의매수 하겠다’고”라며 “독재정권의 행태대로 하더라. 주제를 모르는 거야”라고 했다.
더욱이 국방부는 이 같은 상황에 분노한 주민들을 상대로 단 한 번의 대화도 갖지 않았다.
문 신부는 “감정평가, 이의신청, 중토위의 토지수용, 공탁 등 협의매수 과정이 강압적으로, 힘으로 진행돼 번번히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혔다”고 주장했다. “5월4일 집행에 이어 빈집 철거를 힘의 논리로 해나가는데 납득이 가느냐 이거야. 지금대로면 막 가자는 거다”
그는 “국민 생존권을 무시하면 무엇을 위한 안보며, 무엇을 위한 동맹이냐”며 “올해도 내년에도 이 땅에서 살다가 이 땅에서 묻히고 싶다는 당위성이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상표기자 jsp@kgnews.co.kr

문정현 신부는?
74년 인권운동 시작 억압·모순 개선 앞장

1940년생인 문 신부는 1966년 사제서품을 받았다.
신부가 된 지 만 40년째다.
1974년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서 인권운동을 시작했다.
1975년 인혁당 처형자의 시신 탈취를 막다 다리에 장애를 입었으며, 1976년에는 3·1 민주구국사건으로 구속됐다.
통일운동에 나선 이후에는 ‘군산 우리땅 찾기 시민모임’과 ‘매향리 미군 국제폭격장 폐쇄 범국민대책위’로부터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까지 반전활동과 국가보안법 폐지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또 ‘불평등한 SOFA개정 국민행동’ 상임대표로, 매주 금요일 미군기지 정문과 매주 둘째 주 화요일 주한미국대사관 앞에서 반미연대집회를 갖는 등 SOFA 개정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2004년 평화유랑단 ‘평화바람’을 이끌고 70여개 도시를 돌며 ‘대추리 거리캠페인’을 가졌으며, 같은 해 5월29일 5·29 평택평화축제를 조직해 7천여명이 함께 대추리에 진입했다.
2005년 5월14일에는 평화바람 일부 회원과 함께 대추리로 이주해 거주하고 있다.
임수경 방북사건때 북한을 방문,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문규현 신부는 동생이다.
전북 익산시에 어린이 보호시설 ‘작은 천사 어린이집’을 운영해, 현재 50명 원생의 보호자이기도 하다.
정상표기자 j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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