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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더미속 단서와의 싸움…“불만 봐도 증거가 보이죠”

[Job & Life] 수원중부소방서 방호예방과 김용성 화재조사관

 

컴컴한 어둠, 잿더미 속에서 한 사내의 날카로운 눈빛이 어둠을 파고든다. 그을음의 방향과 세세한 결 하나하나. 화마(火魔)가 남긴 흔적을 좇는 그의 움직임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흉폭한 불길이 할퀴고 간 현장, 불이 꺼진 그곳에서 화마와의 또 다른 숨바꼭질이 그렇게 시작된다.


김용성 소방위가 출동전 장비가방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화재현장 조사를 위해서는 무전기와 카메라, 수첩에서 랜턴등 갖은 조사 장비들이 필요하다.

수원 중부소방서 방호예방과 김용성(37) 화재조사관. 불길이 사납게 스치고 간 자리, 잿더미 속에서 보이지 않는 ‘단서’와의 싸움을 하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불타고 사라진 현장. 증거를 쫓는 그의 눈빛에는 화재진압대원들 이상의 긴박감이 흐르고 있다.


소방공무원 12년차인 그는 진압대에서부터 행정요원, 구조대장까지 경기도 곳곳의 소방 업무를 훑은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지난 7월 ‘화재조사관’이라는 새로운 직함을 달았다. 6주간의 전문 교육과 시험을 거쳐 전문 화재조사관으로 나선 것. 화재 현장을 살펴 정확한 화재의 원인을 밝혀내고 피해규모까지 산정해 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


불길의 현장 경험은 물론 불의 살아있는 흐름까지도 잘 파악해야 하는 것이 기본이기에, 화재조사관은 ‘소방위’ 이상의 직급자만이 맡을 수 있다. 현장 경험과 과학적 지식의 접목이 관건이 되는 까닭이다.


그는 “화재 현장에 물대포를 쏘고 급박하게 인명을 구조해내는 일들이 겉으로 볼 땐 굉장히 격렬하고 거친 작업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그 어떤 작업보다도 세심함과 꼼꼼함 그리고 과학적 접근을 필요로 하는 일들”이라며 “그 중에서도 현장보존, 화재의 원인과 피해조사 등의 업무는 좀 더 전문화되고 날카로운 눈썰미가 필요한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우연한 사고로 불이 난 현장인지, 아니면 의도적 방화인지를 밝혀내는 것부터가 만만찮은 작업이다. 현장보존 작업에서부터 주변 목격자들의 확보, 집주인과 주변인들의 보험 가입 상황까지. 화마가 남긴 보이지 않는 단서들과의 싸움, 사람들과 고도의 심리전을 거치다 보면 그야말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다.


12년의 현장경험과 6주간의 교육으로도 소화되지 않는 부분들은 관련 전문서적과 전국의 실시간 사례들을 일일이 살펴보고 공부하는 것 외에는 왕도가 없다. 전기누전때문인지 담배꽁초 때문인지, 숯덩이만 가득한 현장이 김 소방위의 눈에는 온통 증거 투성이라는 점이 그래서 더욱 놀랍다.


이 같은 고도의 훈련과 학습이 현장에 그대로 적용 될 때, 남들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밝혀내게 될 때 그가 느끼는 ‘희열’은 그 이상이다. “그 재미에 이 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궁금한 것과 배울 것이 더 많다는 점이 일의 매력”이라고 김 소방위는 자랑이다.


김 소방위는 “그래도 제일 속이 답답할 때는 그렇게 현장에서 날밤을 새고도 ‘화재 원인 미상’이라는 보고서를 올려야 될 때”라며 “특히 점점 지능화 되는 방화현장들이 늘어나는 데 대응하는 것이 현재 급선무”라고 고충을 이야기한다.


그가 화재조사관으로 부임한 지 석 달여. 또 다른 고충은 고된 업무량이다. 석 달여 동안 대략 20여건의 화재조사 업무를 맡았다. 불이 나기 시작한 현장에 함께 출동해서 불이 꺼지면 그 후부터 또 다시 본격적 조사업무에 들어가기 때문에 실제 잠 잘 시간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2교대 근무, 24시간을 꼬박 뜬 눈으로 보내야한다. 명절이나 휴일도 없다. 듣기만 해도 숨이 찬 업무량이다. 수원 중부소방서에는 현재 김 소방위를 포함해 총 2명의 화재조사관이 포진돼 있다.

“앞으로 제 꿈이요? 화재 원인을 정말 ‘귀신같이 잘 잡아내는’ 화재조사관이 되는 거죠 뭐. 휴일이 없어서 올망졸망한 세 아이들과 놀아주지 못하는 게 마음에 걸리지만, 그래도 소방관으로서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고 김 소방위는 밝게 웃었다. /유양희기자 y9921@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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