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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보다 마음치료 먼저”

[당신이 희망입니다_칭찬 릴레이 ⑨] 햇살가득공부방 이상남 소장

 

추천 주인공은 엄영숙 헤어샆 엄영숙원장

 


“그냥 이렇게 우리동네에서 함께 해온 이웃들하고 곱게 늙어가는 게 꿈이에요.” 지난 주 추천 주인공 엄영숙 원장의 작은 바람이다. 20여 년 째 조원동에 삶의 터전을 일궈온 엄 원장. 그 녀는 그간 동네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꾸준히 무료 이발 봉사를 펼쳐왔다. 작년부터는 지역 미용사 10여명과 ‘사랑 실은 봉사대’ 활동을 이어오고 있기도 하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이웃, 노인들과 즐거운 여생을 꾸리는 것이 그녀의 작은 소망이다.
 

독거 노인 사업·빈민 자녀 무료 공부방
안양 5년 수원 3년 8년째 한결같은 봉사
초등생서 고교생까지 40여명 배움의 길
삐뚤어진 마음엔 꾸준한 사랑만이 ‘약’
젊은 시절 빈민운동…언제나 약자의 편
공부방+쉼터되는 그날까지 멈출수 없어

 


내일 준비물은 ‘따뜻한 옷’만 있으면 된대. 나도 꼭 갈래.” 수원시 권선구 세류동 ‘햇살가득 공부방’ 문 앞. 수업이 끝났는지, 밖으로 쪼르륵 달려 나온 여자아이가 자신을 기다리던 할머니에게 매달린다.
다음날 공부방 친구들과 함께 가기로 한 강원도의 한 휴양림 캠프, 아이에 눈빛은 벌써 캠핑장을 누비고 있다. “그래도 거기 갈라믄 도시락도 싸야하고 간식도 사야는디, 우짤라고….” 손녀딸을 기다리던 허리 굽은 할머니는 조용조용 손녀를 타이른다. 열 살을 갓 넘긴 듯한 손녀가 다시 할머니를 조른다. “정말 따뜻한 옷만 갖고 오면 된대. 산이 추울지도 모른다고 옷만 따뜻하게 잘 챙겨 입으면 된댔어.” 버짐이 핀 여자 아이의 얼굴에 해맑은 웃음이 번진다. 주름사이로 검버섯이 핀 할머니의 얼굴에도 보일 듯 말듯 잔잔한 웃음이 번진다.
준비물은 따뜻한 옷.” 수원 영덕교회 부설 지역선교센터에서 운영중인 ‘햇살가득 공부방(이하 공부방)’. ‘공부방’을 방문했던 날, 그곳에 모여 있던 20여 명의 아이들은 온통 다음날의 가을 소풍이야기로 들떠 있었다. ‘공부방’이 한 단체의 후원으로 아이들과 함께 강원도의 한 휴양림을 찾기로 한 것. 숲을 직접 체험하고, 나무들과 자연이 베푸는 것에 대해 일박 이일의 현장학습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소풍 전날의 설렘은 아이들이나 선생님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아이들 데리고 ‘나눔의 숲 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할 거예요. 덕분에 우리 선생님들도 맑은 공기 마시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으니 너무 기뻐요.” 4년 째 ‘공부방’을 맡고 있는 이상남(45) 소장. 어린 아이들, 젊은 선생님들 사이에 서있는 한 중년 여성의 표정이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해맑다.
이 소장은 안양지역의 ‘빚 진자들의 집’이라는 선교센터에 5년간 몸담다, 수원으로 이사 오며 영덕교회의 ‘비치누스’라는 지역선교센터를 연 주인공이다. 안양에서는 5년, 수원에서는 3년 째 지역 독거노인 사업과 빈민가정 아이들을 위한 무료 공부방 등 선교 활동을 이어왔다. 현재 운영 중인 ‘공부방’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40여 명의 아이들이 함께하고 있고, 공부방 근처에 작은 빌라를 얻어 지역 가출청소년들을 선도하는 ‘그룹홈’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우리 공부방이나 그룹홈을 찾게 되는 아이들의 경우 대부분 어려운 집안 사정에 상처를 많이 받은 아이들이죠. 처음에 아이들을 만나면 날카롭고 매마르고 삐뚤어져 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먼저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우리가 정말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그녀의 말처럼 이 같은 진심이 통하는 데는 대개 ‘시간’이란 것이 필요하다. 빈민 가정들과 시간을 둔 심도 있는 결연 프로그램 필요한 까닭이기도 하다. “어느 지역이건 가진 것 없는 사람들, 삶에 찌든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야 그렇다 쳐도, 그런 가정에 힘없는 노인들과 아이들이 또 다른 가난과 그로 인한 상처를 물려받게 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겁니다.” 안양과 수원, 두 곳에서 그렇게 8년 동안 조용히 일련의 프로그램들을 이어온 사람이 이 소장이다.
그런 과정들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급식프로그램과 지원활동을 펼칠 땐 늘 그 지원만을 노리고 달려드는 일반 가정의 노인들이 있었다. 가출청소년들의 반항은 반항 그 이상일 때도 있었고, 하루 24시간 선교센터에 있어야 할 땐 한참 엄마손이 필요한 집의 두 아이가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다만 신앙적 소신을 실천하자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를 만드신 분의 목적’이 무엇인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돌이켜 보면 다시 힘이 나곤 합니다.” 그녀의 마음만큼은 그렇게 늘 부자다. 이 소장은 “함께 도와주시는 분들이 없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죠. 제가 주인공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과 예수님의 가르침이 먼저 드러나야 하는데, 너무 송구스럽습니다”며 인터뷰 내내, 자신이 표면에 드러나는 것을 줄곧 불편해 했다.

이 거룩한 예배당에 앉아만 계시면서 우리들에게 감동과 사랑을 주신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늘 없는 사람들과 아픈 사람들 곁에 직접 계셨고,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참사랑을 보여주셨죠. 지금 우리 지역의 교회들과 교인들도 그런 예수님을 닮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이 소장은 말하는 참사랑 나눔 사업이다. 사뭇 그녀의 표정에 힘이 들어간다.
이 소장은 우리들이 소위 말하는 ‘운동권 출신’, 그리고 ‘빈민운동가’였다. 하지만 그녀의 활동들에는 무릇 ‘조국과 민족’이라는 큰 뜻은 없었다. “거룩한 학생운동, 빈민운동을 했던 적은 없었어요. 그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나누고 함께 사랑해야 한다는 신앙적 동기가 가장 컸을 뿐”이라고 이 소장은 설명했다.

인 젊은 시절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지금 그녀의 표정에는 그런 큰 격정은 흔적조차 없다. 대신 ‘큰 엄마’ 같은 푸근함과 잔잔함만이 남겨져있다.
그녀가 말하는 ‘내일의 준비물’은 따뜻한 옷, 즉 약자들을 따뜻하게 감싸줄 수 있는 마음 하나다. 향후 지금의 공부방을 아이들이 보다 시간을 두고 쉴 수 있는 ‘쉼터 기능’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이 소장의 목표다. 지난 7월 사정상 잠시 손을 놓은 독거노인 사업도 힘이 닿는 대로 다시 도전해 볼 생각이란다.
“내일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잘 다녀올 수 있게 응원해 주세요.” 소풍준비를 분주히 하는 이 소장의 표정이 마냥 아이 같다. 그녀의 표정으로 본 ‘내일의 날씨’는 ‘맑음’이다. /유양희기자 y9921@kgnews.co.kr

 

다음 주인공은 영통 연세치과 박창범원장

 

이상남소장이 추천한 칭찬릴레이 열 번째 주자는 수원 영통 연세치과의 박창범(37) 원장이다. 지난 1년간 공부방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료진료를 실시해온 주인공. 박 원장은 자신 뿐 아니라 동문들을 모아 지역 아동센터와 빈민가정을 대상으로 한 무료 치과진료를 진행해오기도 했다. 박 원장은 “그저 작은 뜻으로 시작한 활동인데 함께 호응해준 동료들에게 먼저 고맙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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