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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 禪을 찾아가는 고행길

[Job & Life] 조각가 정해덕 씨

 

“조각은 나만이 할 수 있는 내 마음 속의 선을  찾아가는
작업입니다” 안성시 죽산면 두교리, 호수가를 따라
이어지는 산길을 따라서 가다보면 산 길 막다른
곳에 영화 속의 ‘동막골’과 같은 이름을 가진
동막 마을이 나온다. 이곳에 위치해 있는
동막 조각실. 산 아래턱께 마을에 있는
작업실에서는 정해덕(47)조각가가
단단한 대리석을 이용,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펼쳐 나가고 있다.
먼지마냥 하얀 돌 가루들로 
가득 차 있는 조각실에는
대리석을 깎고 또 깎아
만든 여러 모양들의
온갖 작품과 함께
정 조각가가
작업 중인
작품들이
놓여져
있다.

 



정 조각가는 “나의 작품 스타일은 작업할 때 한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으로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대략적으로 틀을 만들어 놓은 후 계속 지켜보면서 마음에 들 때까지 그 형상을 찾아 들어간다”며 “그렇게 작업을 하다보면 20일에서 어려운 것은 한 달도 걸린다”고 말해 그의 작품세계가 한 눈에 들어오는듯 했다.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인해 남들보다 거동이 불편했던 정 조각가는 그로 인해 방황도 많이 했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품었던 조각가가 되기 위해 남들보다 늦은 23살에 홍익대 조소과를 입학했고 85년 졸업 후 선배이자 선생님 밑의 작업실 조교로 들어갔다.
“그 당시에는 빌딩 앞에 조각 작품을 놓는 작업이 시작될 때 였다”며 정 조각가는 “졸업하자마자 선생님 밑에 들어갔기에 내 작품보다는 선생님의 큰 작업을 돕는 것이 주된 일이었다”고 말했다.
선생님 밑에서 커다란 작품을 하다 보니 물질적으로는 풍족했다. 하지만 채울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정 조각가는 “지금이라면 모를까 대학을 갓 졸업하고 나만의 작업세계도 정해지지 않았던 그 때는 선생님의 작업과 내 작업을 병행하기가 힘들었다”며 “갑자기 밀려온 회의에 술 한 잔 마시고 이탈리아로 향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무작정 떠났던 이탈리아행이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답답한 마음에 갔던 이탈리아에서 정 조각가는 우연히 대리석에 대해 알게 됐고 대리석을 보니 자신의 작품 세계도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5년동안 이탈리아 피사 아카데미에서 대리석에 대한 모든 기술을 배우면서 자신의 작업을 시작했다.
이탈리아에서 했던 작업을 눈여겨 본 아카데미 학장의 주선으로 95년 첫 번째 개인전을 이탈리아 피사의 Saletta Kinzica 화랑에서 열었다.
그 후 98년 서울.  인사갤러리(INSA Gallery)의 초대로 두 번째 개인전은 한국에서 열었다.
정 조각가는 “남들보다 개인전을 늦게 한 편이지만 그 규모가 컸기에 남들 3~4번에 할 것을 1번에 다 해야 했다”며 “이미 이탈리아에서 작업을 마친 상태였고 인사 갤러리의 초대전이었기에 가능했지 내 돈 들여서 그렇게 크게 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큰 웃음으로 역경을 털어냈다.
작년의 4번째 개인전에 이어 올해만 해도 기획전, 초대그룹전 등 무려 8번의 전시 활동을 한 정 조각가는 지금은 잠시 숨 고르기를 하는 중이다.
“주위에서 강의 제의도 들어오고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작가란 작품을 팔아 생활해야 한다”며 정씨는 “취미로 하는 작가와 전업 작가와는 구분해야 한다”고 전업 작가를 고집하는 이유를 말했다.
하지만 생필품이 아닌 하나의 기호품인 조각 작품으로 생활을 하기에는 물질적으로 어려움이 많은 만큼 전업 작가의 삶은 힘들다.
정 조각가는 “지금 내 나이대의 또래 친구들은 부장이다 사장이다 승진하고 있는데 그것을 부러워하면 이 작업은 할 수 없다”며 “전업 작가의 삶은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고 가장 기본적인 소비를 해야지 가능하다”면서 전업작가의 애환을 털어놨다.
재료가 대리석이기에 재료비만 해도 만만치 않았고 작품을 만드는 시간 또한 오래 걸려 그 고충은 더 컸다.
“남들은 내 작품이 비싸다고 말하지만 재료비와 그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며 정 조각가는 “워낙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돌을 잘 만나야 하는 작업인 만큼 좋은 돌이 들어 왔을때는 아무리 비싸더라도 작품을 위해 투자한다”고 말했다.
어려움이 많은 전업 작가의 삶에 대해 정 조각가는 “애들이 커가면서 잠깐 잠깐의 회의는 분명히 온다. 하지만 이 길이 내가 가야할 길이라 생각하고 다른 쪽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며 “모든 것이 가족의 지지가 없었으면 불가능했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하루 종일 정을 들어 돌을 깎고 밀어야 하는 작품 활동에 오른쪽 팔과 다리는 성한 곳이 없다는 정 조각가. 하지만 그런 힘든 작업을 통해 작품 하나가 완성됐을 때의 감정은 그 누구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이 세계를 통틀어서 그 누구도 만들수 없는 내가 만든 유일한 하나이기에 작품 하나 하나가 완성될 때마다 희열을 느낀다”는 정 조각가는 “자신의 색깔이 들어간 작품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비슷한 것 같지만 똑같은 것은 단 하나도 없고 작품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보인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을 지켜보며 자신의 형상을 찾아가는 작업인 만큼 작품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정 조각가는 “오직 하나뿐인 내 작품이 누군가에게 팔려 갈 때는 마치 딸을 시집보내는 것처럼 섭섭하다”고 말했다.
자신의 작품은 가족에게도 그냥 주지 않을 만큼 작품관리에 철저한 정 조각가. 그는 “한 작가의 작품은 한자리에 모여 있을 때 그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며 “기회가 된다면 죽기 전에 남아 있는 작품을 지역 사회에 기부하고 싶은 것이 앞으로의 꿈이고 그것이 작품이 남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불편한 몸
방황 끝 23살 
 늦깍이 대학생
졸업후 허무감에
 술한잔 훌쩍 마시고
이탈리아행에 몸실어
우연히 접한 대리석 매료
 드디어 자신의 작품세계 찾아
죽기전 작품 사회 기부하는게 꿈

 

 

/이미영기자 lmy@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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