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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1>-최덕기 주교

 

 

이윤숙 : 주교님 안녕하십니까?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은 좋으신지요? (사담)

 

최덕기-사실 건강합니다.

 

이: 전 신자가 미사 때 마다 기도하는데 건강 안 하실 수 있나요? (모두 웃음)

 

이: 오늘날 과학의 힘이 크게 증대되면서 종교의 역할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정상 IMF정국을 거치면서 중산층이 무너지고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지만 ‘인간소외’의 문제가 점차 현실로 대두하고 있습니다. 과연 종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요?

 

 

최-자살문제가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입니다.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가는 많은 경우에 경제적 측면에서 희망이 안 보이니까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 전체적인 국민들의 사고/패러다임이 경제적인 것으로만 고착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우리 종교가 인간을 구원할 것인가는 엄청난 질문인데요. 종교의 역할이 ‘사회의 혼’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이 아무리 욕심있어도 혼이 없으면 죽은 사람인 것처럼 혼이 올바라야 하는데, 그런 면에서 종교는 역사적으로 그런 일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가는 질문에는 지금까지 해왔고 지금도 보시고 있듯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파한 김대건 신부가 순교한지 170여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김대건 신부의 순교가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새겨보고 싶습니다.

 

 

최- 김대건 신부님은 스물 다섯의 나이에 그야말로 천신만고 끝에 신부가 됐어요. 신부가 된 지 일년 남짓 됐을 때, 새남터에서 목이 잘려서 돌아가신 것은 순교의 마지막 절정이자 신부님의 삶 전체가 순교였다고 생각합니다. 김대건 신부님 댁은 김대건 신부님까지 4대가 천주교 때문에 순교하셨습니다. 충청도 솔뫼가 고향인데 신앙 때문에 고향에서 못 살고 용인 양지에서 사셨잖아요. 또 천신만고 끝에 공부를 해서 신부가 됐지만 일년도 안돼서 붙잡혀 천주교 신앙을 버린다거나 천주교 때문에 쫄닥 망했다는 생각도 전혀 없이 그 길을 가셨다는 것이 너무나 훌륭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부님이 15살 나이에 12월 6일 여기서 출발하셨다고 그래요. 한겨울 추운 날씨에 솜 바지저고리를 입고 6개월만에 (마카오에 도착한 것은) 하루 70리 길을 걸은 셈이거든요. 지금 우리나라 15살 사람들을 몇 백명을 놓고 마카오까지 가라고 하면, 과장된 것이 아니라 초인적인 것이 아닌가요. 신앙에 의해 된 것이에요. 그분의 신앙과 삶, 죽음이 자랑스럽고 대대손손 본받아야 됩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천신만고 끝에 신부가 된 후 일 년도 안 돼 돌아가셨는데, 당신이 돌아가시면 우리나라에 이제 아무도 없는 거에요. 그랬을 때 인간적으로 볼 때는, 어떻게든 그 순간을 모면해 순교의 길을 뛰쳐나와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소위 요즘말로 ‘머리를 굴린다’든지 하는 것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지만 그 분은 당신의 길을 똑바로 걸어가셨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멋있는 것입니다. 신앙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그런 분이 선조라는 것이 자랑스럽고 길이길이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김대건 신부 활동 당시 천주교는 유교의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반상이라는 계급의식이 뚜렷해 양반 등 사대부로부터 사회질서를 파괴하는 사악한 종교로 인식됐습니다. 반면 대다수 피지배계급 즉 평민, 상놈, 상인, 천민 등으로부터는 인간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천주교 논리가 크게 환영받고 희망을 가질 수 있어 비밀리에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오늘날에는 반상의 개념이 빈부격차에 의한 양극화로 전이된 느낌입니다. 양극화 현상을 바라보는 입장과 이의 해결을 위한 방안을 천주교 교리나 개인적인 입장에서 풀이해 보신다면 무엇이 있겠습니까.

 

 

최- 양극화 현상도 경제논리에 따른 것이에요. 삶에 있어 (경제 외에) 다른 면도 있습니다. 꼭 양극화를 안 보려하는 것은 아니에요. 경제논리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하는 것은 문제에요. 천주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에게 똑같은 것을 얘기합니다. ‘여러분 모두 양반이거나 아니거나 모두 다 하느님의 자녀, 가족입니다’라고. ‘가족 사이에 (반상이) 뭐가 그리 대단한 문젭니까’라고. 지금도 똑같은 거죠. 어제도 새터민을 돌보는 수녀님한테 들었는데, 새터민들에게 ‘여러분도 하느님의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한사람 한 사람이 전부다 (하느님의) 귀염둥이입니다’라고 했더니 그분들은 그런 말을 처음 들어봤다는 거에요. 이주노동자도 마찬가지죠. 교회는 지금도 모든 사람에게 부자도 하느님의 자녀요, 가난한 사람도 하느님의 자녀라고 가르칩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가족입니다. 그런데 가족 중에 인간의 품위가 떨어질 만큼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 것이 말이 되겠습니까? 이런 것은 안됩니다. 가난이나 질병때문에 사람이 품위을 잃어버리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이런 것을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의 가르침입니다. 우리사회의 양극화 현상을 말하면서 어떻게든 저울에 달아서 똑같이 만드려고 하는 것은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좋게 얘기하면 천국을 지향하려는 사람이고, 부정적으로 표현한다면 좀 비현실적인 것을 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양극화의 구체적 해결방안으로 천주교에서 펼치는 한마음운동이 있는데요. 거기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최- 며칠 전 지낸 크리스마스라는 것은 하느님 아들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해 주신 날입니다. 격상시켜 주신거죠. 우리가 감히 바랄 수도 없는건데, 우리가 그런 특혜를 받았기에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그런 나눔을 실천하자. 우리보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려가자. 그런 사람들도 끌어올려 주자. 그런 것을 천주교에서는 ‘강생의 신비’라고 합니다. 또, 미사 때 예수님의 몸과 피를 나눠서 우리가 영적인 생명력을 얻도록 해 주신 ‘성체성사의 신비’도 있지요. 이 두 가지 신비를 살면서 구체적으로 실천하자는 것이 한마음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천주교 수원교구가 주축이 되어 하지만 일반인도 같이 합시다’라고 해서 사회운동으로 키워나가려고 합니다. 천주교 사회운동에는 신협운동이 있었어요. 신협운동을 천주교 성당 안에서 키웠습니다. 신협운동은 처음부터 우리가 키워서 시집보낸다는 자세로 해 결국 내보냈어요. 이 운동은 비슷하지만 완전히 시집보내진 않습니다. 천주교가 끝까지 관여하면서, 사회운동으로 펼칠 것입니다. 모금이 되면 우리사회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줄 계획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사회 복지혜택을 받으려면 자녀가 없어야 합니다. 그러나 자녀가 있어도 고통받고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어요. 얼마 전에도 한 독거노인이 돌아가신 채 발견되었는데 실제로 자녀가 5명이나 있었어요. 그렇게 복지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우선적으로 도와드리고 희귀병이라든지 정말 우리사회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도우려 합니다. 종교나 신앙의 유무 상관않고 도와 줄 겁니다. 모금이 쓰인 내역을 후원자들에게 알려줌으로써 그것만으로써 운동이 커갈 수 있게 할 생각입니다.   12월8일 창립대회를 하고 크리스마스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약 5000건 정도가 들어왔어요. 돈은 아직 한번도 쓰지 않았어요. 이런 일을 통해서 여러가지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동안 교구에서 한 일을 예로 들자면, 외국인 노동자 사목에서 몽골분의 애기 손이 오리처럼 붙은 것을 수술했어요.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에 살기 때문인지 미숙아를 낳기도 합니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야 하는데 분당서울대병원은 하루밤 400만원이래요. 그래서 돈을 감당할 수 없어 국립의료원으로 옮겼죠. 국립의료원은 돈 안 들어가요. 이렇듯 우리 나름대로 기구(체계)가 있으니까 인큐베이터 들어가서 아기가 살았지, 못 들어가면 죽을 수도 있었죠. 그런 좋은 일 앞으로 하려고 합니다.

 

 

이: 잘 착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 천주교가 들어온 지 200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부침도 많았을텐데요,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최-다른 나라 천주교는 선교사들이 그 나라에 가서, 선교사에 의해 천주교가 시작됐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가장 독특한 점은 우리 선조들이 서적을 통해서 천주교라는 것을 알게 됐고 신앙을 갖게 됐다는 점입니다. 그 이후에 선교사를 모셔오게 됐습니다. 가장 특징적인 것이자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천주교가 들어온 후 100년이 넘게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순교자가 일만 명이 넘게 나왔어요. 그렇게 씨를 말리려고 하는데도 천주교가 계속 커 갔었다는 것도 신앙이 아니라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이후 해방 후 박해가 끝나면서 유신시대 들어오면서 국민들이 입은 있으되 입을 못 연 시기에 천주교가 국민의 아픔을 대변해 말했죠. 특히 그 중심에 (계셨던) 김추기경님이 많은 밤을 하얗게 지새우시면서 참으로 많은 기도 바치고 고생 하셨거든요. (지금은) 김추기경님이 많이 약해지셨어요. 뵙게 안될 정도로 마르셨어요. 제 생각에는 국가가 김추기경님 보약해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당시 많은 신부님들이 강론할 때마다  불려가고 감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며 국민을 대신하며 유신시대에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지요. 그 중에서도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박종철 고문치사를 발표한 것, 1986년 민주화운동이 오기 전에 수원교구청을 비롯해 신부님들이 모여 며칠씩 단식기도를 하신 것, 그런 것이 우리 천주교가 국민들에 인식받는 계기가 됐지요. 1984년도 한국 천주교 200주년 103위 한국순교복자시성식과 1989년 세계성체대회 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내한하셨습니다. 그런 것 통해 복음화가 많이 됐죠.

 

 

이: 서울 명동성당은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성역으로 일반인들에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이는 천주교가 한국의 정치현실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증거라 생각합니다. 군부독재 하에서 공권력의 총칼을 피할 수 있었던 마지막 보호처가 명동성당이었을 때가 많았습니다. 물론 종교가 정치에 깊숙이 개입하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을 외면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신부님 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지금의 정치상황은 무엇이라고 보시는지.

 

 

최- 솔직히 요즘 정치에 관심없어요. 그냥 재미없어요. 우리사회가 전체적으로 갈등이 심화되는 사회라고 생각하고 그런 면이 많이 답답합니다. 그리고 이 작은 한반도에서 갈등을 얘기하고 서로가 반목하고 이럴 때가 아닌데... 우리 주변 중국과 인도가 동남아가 싱싱나가며 발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뭐하는 일인가? 그런 걸 생각하면 아주 많이 답답해 재미없다는 겁니다. 갈등사회가 된 것을 어떻게든 풀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입니다. 꼭 부탁할 게 있어요. 저는 그래서 모두가 자기 일만 열심히 하자. ‘네 탓이요’ 좀 덜하자. 널리보고 다른 나라들이 어떻게 뛰어가는 지 잘 보고요. 마치 여기 안의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살면 잘못된 것이에요. 주변을 두루두루 보면서 균형있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김영삼 정부 초기 군부출신 대통령들에서 민주화 출신 대통령으로 정권이 인계되는 상황에서 전임 대통령 구속 등 사회적 혼란상이 많았습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당시 천주교사제단 등에서는‘내 탓이오 내 탓이오 모든 게 내 탓이오’라는 이른바 사회정화 차원의 운동을 전개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 같은 내 탓이오 운동은 남의 탓이 더욱 일상화돼 모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는 오늘날 더욱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데요. 내 탓이오와 비견 될 어떤 말씀 등 천주교 교리나 성경에서 인용할 만한 문구가 있다면 풀어주십시오.

 

 

최- 예수님이 말씀하셨듯이 자기 눈에 든 들보는 못보고 다른 사람에게 든 티끌을 떼어 내려한다는 것 때문에 우리사회가 반목하는 것이죠. 꼭 얘기하고픈 것은 우리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의 흐름과 마음에 각인된 것이 경제의 패러다임이라는 것이에요. 발전도요. 저는 그것을 사람을 키우는 것. 자기 자신을 키우는 것. 인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결국은 사람이에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결국엔 모든 것이 되요. 어떤 기술이든 2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키워야하는 데 우리사회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해서는 우리사회가 정말 잘 될 수 있을까? 정말 일등국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입니다. 사람키우는 것이 많이 약해요. 가정교육에서부터 시작해서 문제에요. 제가 자랄 때 보면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매번 야단맞았어요. 똑바로 앉아있으라고요. 지금은 그런 것을 안하죠. 그런 것은 사람을 인성교육으로 가꿔나가고 키워나가야 되거든요. 우리사회가 너무 경제논리, 성장 기술개발지향적으로 하는데. 물론 그것도 해야겠죠.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거죠. 그것이 전적으로 간과됐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 자신부터 생각해보면 부족한 면이 많다고 생각해요. 주교직 수행하면서 부족함을 느끼기에 참 어려워요. 나 자신부터 키우는 노력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수원교구 신자들 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고픈 말은 자신을 키우는 일을 하자. 꼭 종교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든 인간으로서 자신을 키우자는 겁니다. 결국은 사람이니까.

 

 

이: 앞서 질문들이 너무 무거운 주제를 다뤘습니다. 당황하셨다면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가벼운 주제로 풀어보겠습니다. 통계청이 지난해 5월 발표한 인구조사결과 천주교 신자는 1995년 295만8000명에서 2005년 514만6000명으로 무려 7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천주교 신자들이 증가하는 것은 천주교의 어떤 부분이 일반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보는 데 무엇인가요.

 

 

최- 한마디로 표현하면 ‘증거의 삶’이에요. 첫째는 만 명 이상이 신앙을 위해 죽었잖아요. 생명은 하나뿐인데. 그 자체도 큰 밑거름이 됐다고 생각하고요. 다른 한가지는 유신시대때 천주교가 보여준 것도 국민이 주목했고요. 재작년 연말 황우석 교수 사태 전까지 황 교수는 영웅이었어요. 거기다 누가 돌 던지면 죽일 놈이었어요. 그 때 종교계에서 정 추기경님이 제일 먼저 윤리문제를 말씀하셨어요. 이런 모든 것 통해서 말이 아니라 삶으로 보여준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군종교구장 주교님에게 들은 말씀인데요. 지지난해에 군에서 장성이 된 사람 중 40퍼센트가 천주교신자라고 합니다. 전체 국민의 10퍼센트가 천주교신자인데 4배나 많은 거에요. 이런 모습은 한 단면이지만 다른 곳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천주교 신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성실하다는 거에요. 그 외에도 신부나 수녀님이 독신으로 사는 것도 큰 증거죠. 돈쓰는 것에 청렴하다 등 그런 것들이 통틀어서 천주교가 보여주는 증거다라고 생각합니다.

 

 

이: 올해는 전 국민에게 희소식도 있었습니다. 천주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200여년에 즈음해 추기경이 두 명이 됐습니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75) 대주교가 추기경으로 임명됐습니다. 1969년 김수환(84) 추기경에 이어 한국천주교가 37년 만에 두 명의 추기경을 맞은 것입니다. (정 추기경은 80세 미만 추기경이어서 현 교황이 서거하거나 사퇴할 경우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비밀회의)에 참석할 수 있고, 교황으로 선출될 자격도 가졌다.) 새 추기경의 의미는?

 

 

최- 김수환 추기경님이 85-86세로 연세 많아요. 2001년 김 추기경님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만나 간곡히 부탁하는 것을 제가 옆에서 들었어요. ‘교황님 제가 교황님보다 한 살 적습니다. 내년에 제가 80세가 되니까 꼭 잊지 말고 기억해 달라’고 말했어요. 그 의미는 당신이 연세가 많으니 빨리 후임을 내 달라는 부탁이었어요. 그런 면으로는 늦은 감이 있어요. 오래 기다렸던 추기경님이 나오신 것이고 교회로서는 든든한 어른이 두 분이 계셔 든든해요. 국가 사회적으로도 좋으신 어른이 계시다는 것도 큰 일이 아닌가 해요. 요즘 사회를 어른이 없는 사회니, 심하면 필요없는 사회라 하는데 분명히 좋은 어른을 모셨다는 것은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큰 축복이고 좋은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80세 미만 추기경 교황 선출 자격의 의미는요?


최: 이것 한 가지만 말하죠. 지금 베네딕토 16세가 건강하십니다. (모두 웃음)

 

 

이: 개신교의 경우는 각각의 교파가 중심이잖아요. 천주교는 하나의 교리를 갖고 있는데 문제는 없는 지, 그리고 최근 정교의 원리나 교리를 왜곡한 ‘다빈치코드’라는 책자가 나와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물론 영화로도 나왔지요. 책이나 영화가 천주교의 원리나 교리에 위배된다고 합니다. 책이 왜곡한 부분이 사실과 다른 부분들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최- 전세계 천주교신자 8억 정도되요. 그런 모든 신자들이 한 곳으로 향해 가는 것과 같은 믿음을 갖는 데는 물론 어려움이 많죠. 또 교리 등이 제기됐을 때 그것에 대해서 얼른얼른 답을 듣지 못하는, 덩치가 크면 한바퀴 도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습니까? 그런 면에서 보면 어려움입니다. 다른 한편 그렇기때문에 전체 교회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서 한발 한발 나가며 한마음이 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느리게 가지만 한발한발 바르게 가는 것이 빨리빨리 가서 혼란이 일어나고 그러는 것보다 낫지요. 그런 것을 문제로 봐야할 지는 모르겠어요. 다빈치코드는 우선 소설이라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하는데 사람들이 소설과 영화를 실제와 혼동해요. 소설을 소설로 보면 문제가 안돼요. 하지만 소설의 생각이 전이가 되어 실제를 곡해해서 보게 되면 문제가 되죠. 실제를 볼 때 소설과 영화때문에 영향받는 사람들이 없을까요? 분명히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인이라든지 천주교 신자라 할 지라도 아직 굳지 않은 사람, 청소년들은 호기심이 많은 데 그런 것들이 영향을 많이 줄 수 있죠. 그래서 천주교 본교리를 비뚤게 다른 시각으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천주교에서 문제가 됩니다. 요한 바오로2세가 한 터키 청년에 의해 저격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굉장히 쇼크를 받았어요. 왜냐하면, 교황님이 총을 맞았다는 것 때문이라기 보다는 우리 사회가 아무리 세속화된 사회라고 하지만 성역이 있다고 믿어왔는데 교황님이 총을 맞았기에 그 성역까지 무너졌다는 데에 쇼크를 받았어요. 바로 다빈치코드도 그런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도 배려할 줄도 알고 다른 사람을 존경해야지 나도 존경받잖아요. 다빈치코드 같은 소설과 영화는 그런 면에 맞지 않다고 봐요.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 다른 종교에 대한 존경, 비록 그 종교를 믿지 않더라도, 그런 면에서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교리적으로 맞지 않는 것은 여러가지가 있죠. 우선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그 자손들이 현존해 있다라는 것은 ‘소설’입니다. 천주교와 개신교 성서학자들 중 어느 학자도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학자를 보지 못했고, 예수가 결혼을 했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부활 신앙은 교회가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믿어온 핵심적인 믿음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믿을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다빈치코드는 기독교에 대한 배려내지 존경이 깔렸어야 했는데 그것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또, 이런 것을 함으로써 교황님이 총격당한 것처럼 성역이 무너졌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다빈치코드 때문에 안티기독교 사이트가 많이 생겼어요. 누구든지 한번씩 건드려보는 거에요. 이런 것을 조장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그리고 다빈치코드가 일반인들이 정교인 천주교를 바라보는 시각에 어떻게 얼마만큼의 영향을 줬다고 보시는지.

 

 

최- 젊은이들이라든지 비교인이라든지 다빈치코드 소설이나 영화를 보고 예수님의 얘기를 들을 때 완전히 (편견을) 지우고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독교와 예수님을 바라볼 때 이런 색유리 나타나기 마련이죠. 분명 영향인거죠. 안티기독교 사이트, 천주교에 대한 공격을 많이 조장했다고 봅니다.

 

 

이: 2007년 교구청 사목교서는 무엇이고 소공동체 활성화와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대리구제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최- 사목교서는 사회식으로 얘기하자면 교구장의 내년도 정책방향입니다. ‘소공동체를 열심히 잘하자. 청소년 신앙생활 활성화 위해 노력하자. 그것을 가정을 중심으로 잘하자. 대리구에서 열심히 하자’는 것입니다. 유태인, 중국인들 세계 각지 흩어졌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죠. 그 비결이 뭔지 아세요? 자기들 나름대로 똘똘뭉쳐 문화를 유지해 오고 있는 거에요. 언어도 유지하고. 천주교회는 우리 사회에서 10퍼센트 밖에 안됩니다. 이런 사회에서 천주교가 삼투작용을 해서 주저 앉지 않고 살아나려면 중국인과 유태인들 처럼 소공동체를 이루어 나가는 겁니다. 지켜나가며 믿는 사람들끼리 뭉쳐서 살아가는 것이 소공동체 운동입니다. 청소년 문제는 청소년들이 교회나 국가의 미래니까 그들을 위해 노력해야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지금까지 노력은 하지만 좋은 성과가 잘 나지는 않네요. 어려워요. 젊은 신부들도 2-3년 지나면 선후배간 생각이 또 달라지거든요. 생각의 차이가 나죠. 청소년들은 더 그래요. 그러니까 청소년들을 배우려고 해도 점점 더 멀어져요. 청소년 대상 사목 어렵습니다. 그래서 경험을 통해서 볼 때 청소년을 위한 것을 하지 말고, 청소년들이 하는 것을 지도하면서 도와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 청소년들을 위해서 어른들이 뭘 해주려고 했어요. 그건 아니다. 특별히 가정이 온전하면 청소년 문제가 거의 없습니다. 교정사목의 신부가 말하길 소년원의 99퍼센트가 가정이 파괴된 경우라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지내는 아이들, 부모가 없는 아이들, 그러니까 가정이 온전하지 못하면 사회가 괴로운 거에요. 그래서 가정을 보금자리로 만들어야 해요. 방법적인 것도 무시 못합니다. 가정을 우선 성화시켜나가자하는 겁니다. 대리구제를 실시했는데, 천주교는 아무래도 신부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교구만 해도 신부님이 320명이 됩니다. 주교인 제가 그 신부들과 정말 마음으로 뭉치기란 어렵습니다. 저 나름대로 친화력에 단점도 있어요. 그런 것이 약합니다. 6개 대리구로 대리구장 신부 아래로 신부님 30명 정도 되니까 신부님들과 융화관계가 굉장히 잘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부님들부터 융화 잘되면 많은 좋은 일들이 일어날 수 있어요. 지난 9월말 시작해서 2007년에는 대리구제가 뿌리내리는 시점입니다. 신부님들이 잘 뭉쳐있으면 다른 것들이 잘 된다고 생각해요. 가정이 잘 되면 교회도 잘 되고 국가 사회도 잘 되잖아요.

 

 

이:빈부격차, 양극화, 정치력의 부재 등으로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소시민들에게 격려의 메시지나 위로의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 제일 안 좋은 것은 사람이 실망하는 것이잖아요. 그러면 길이 없는 거에요. 6.25에서 죽을 고비 몇 번씩 넘긴 사람들 얘기 많이 듣잖아요. 고통스러울 때 고통스럽다고 힘들 때 마다 끝장을 내버렸으면 그런 얘기 들려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고생을 넘어서 잘 사는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절대 실망하거나 과격한 일 하지말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빈익빈 부익부라고 한다지만 그래도 우리사회는 희망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끝까지 희망을 놓치지 말고, 우리가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희망의 땅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거듭 강조하는데  모든 것을 경제적 논리로만 본다면 앞이 깜깜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세 끼는 다 먹잖아요. 경제논리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으로도 사람답게 사는 길을 봤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티브이 등에서 그런 예 많이 보잖아요. 자신이 장애가 있음에도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이 누구 못지 않게 행복하게 사는 것을 많이 보기 때문에 경제논리로 세상을 보는 자체가 세상에 위험한 요소다라고 봅니다.

 

 

이: 저도 힘이 나네요

 

 

최덕기 주교는

 

 

천주교수원교구청 교구장 최덕기(바오로)주교는 1948년 평택군 서탄면 수월암리에서 태어났다. 73년 서울 가톨릭대학 철학신학부 졸업후 독일로 건너가 75년 Eichstatt대학 신학석사, 83년 Munster대학 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75년 10월 사제서품을 받고 83년 부곡성당 본당신부 직무대리로 시작해 수원 가톨릭대학교 교무처장, 남양 및 군포성당 주임신부 등을 지냈다. 90년 노동사목위원회 위원장과 수원교구 사목국장을 거쳐 96년 2월 김남수(안젤로) 당시 교구장으로부터 주교서품을 받았다. 97년 2월 수원교구 제3대 교구장에 임명됐다. 현재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이사와 총무, 매스컴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최 주교는 교회 안팎으로부터 검소하고 인자한 성품을 지녔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윤숙 조각가는

 

 

이윤숙 조각가는 지역에서 예술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1960년 수원 태생으로 성신여대 조소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성신여대와 장안대, 협성대, 경기대, 중앙대 등에 출강했다. 현재 한국미술협회, 성신조각회, 수원가톨릭미술가회, 조각그룹 ‘광장’회원이다. 슈룹조형연구소 대표, 수원조각회 회장을 맡고 있다. 2005년 남편 김정집 관장과 수원 북수동 자신의 집을 개조해 대안공간 눈 및 갤러리 아트넷을 열었다. 기존의 정형적인 전시공간 문화을 개척해 참신한 수원지역 작가들에게 전시공간을 제공하고 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대담:이윤숙 조각가
정리:김재기 기자    사진:최윤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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