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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에게 길을 묻다<2>-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

 

-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는 이사장님께 어떤 해가 될까요. 감옥생활도 하시고 정말 굴곡많은 인생을 살아오셨는데요.
▲ 60년대 한일협정과 월남전 참전을 반대하는 대학생시위에 참여해서 두 번 감옥에 갔고, 강제징집으로 군대를 갔죠. 70년대에 8년만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유신반대운동으로 감옥을 갔죠. 독재체제에서 일명 ‘신원불량’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중·고등학교에서 18년동안 영어 교사를 했었는데 제 이력때문에 두 번이나 해직당하기도 했죠. 
감옥에서 인생의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얻은 것도 있습니다. 밖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독방에서는 각종 서적을 읽을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 때 얻은 지식이 지금의 열정과 추진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올해에는 단국대학교가 경기도 수지로 이동합니다. 학교나 경기도, 양쪽 모두에게 의미있는 움직임입니다.

 

- 그런 경험들이 단국대학교를 활성화하는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사장님이 ‘경기도 죽전으로 학교를 이전하는 문제를 철회할 수 있다’는 등 단대 본교 이전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 잘못된 보도입니다. 현재 경기도 수지캠퍼스가 90퍼센트 건설되었고 내년 3, 4월이면 준공에 들어갑니다.
단국대학교 본교가 경기도 용인시 수지에 들어서면서 경기도민이자 경기도 대학교로 자리잡는거죠.
경기도가 유치해서 이동하는 것도 아니고 학교가 자체적으로 현 상황을 고려해 토지를 매입,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는만큼 도에서도 환영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특히 분교가 아니라 본교가 움직이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죠. 수지, 성남, 용인 각각 100만 정도의 인구가 살고 있습니다. 인구 총 300만, 그 중심에 종합대학이 자리를 잡는 것은 경기도로서도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건국대도 경기도를 발판삼아 다양한 발전방안을 모색할 것입니다.

 

 

- 장기적으로 단국대와 경기도의 협력관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 경기도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지역 시장과 만나서 논의를 했습니다. 단국대는 도내 최고 대학으로 기존의 대학들과 건전한 경쟁을 통해 도민 의식 향상 등 지역 교육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지역과의 협력속에서 단국대가 발전하고 경기도 또한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 단국대 이사장뿐만 아니라 5.18기념재단 이사장도 맡고 계시죠. 최근 ‘5.18 민주화 운동’이 폄하되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지난해 12월말까지 임기였습니다. 강의에 전념하기위해 사임한 상황입니다.
광주 5.18은 전세계의 민중에 영향을 미친 명백한 사실입니다. 누군가의 말 한 마디로 폄하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한국 역사에 남아있는 확실한 기록인만큼 그 가치를 지금의 우리가 흔들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네. 다른 이야기를 여쭤보겠습니다.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가 380회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저도 매일 받아 읽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쁜 가운데 매일 글쓰기가 어렵지 않나요?
▲ (웃음) 어렵죠. 일반적으로 글쓰는 사람들도 희한하게 생각하죠. ‘어떻게 저렇게 매일 쓰는가’하고 말이죠. 모두 열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다산의 진면목과 지혜를 알고 활용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에 제 열정이 식지 않죠. 소재가 떠오르지 않으면 논문을 다시 보고 지나가면서 마주한 현상들을 떠올려봅니다. 현실과 다산을 접목시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입니다. 즉,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지 우리 삶과 무관한 것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열정이 식지 않았으니 앞으로 당분간은 계속 쓸 수 있겠죠.

 

 

- 다산연구소를 만든 취지와 계획을 설명해주세요. 북한의 다산연구현황도 대단한데 북과의 교류 계획은 없으신지요. 또 주변에서 다산의 사상과 이사장님의 사상이 결합됐다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다산공부를 시작한 것이 70년 이후인데 다산책을 보고 논문을 쓰면서 그 사상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교사로 재직했기 때문에 글을 쓸 여유가 없었죠. 95 ,96년에 조그만 사무실을 내고 다산연구소를 차리면서 글을 쓰기 시작했죠. 그때까지도 ‘정치를 더 해야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했고 권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2004년 16대 국회의원 선거 때 고민끝에 국회의원을 사퇴하게 됐습니다. 언론에서는 ‘다산으로 돌아간다’고 표현하더군요. 다산포럼을 통해 현실을 비판하고 실학산책 등을 통해 다산을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풀어쓰는 다산이야기’ 메일 서비스를 통해 주변에 실학자들의 지혜가 전해졌습니다. 몇백명에서 시작한 것이 이제 33만명이고, 인터넷의 특성상 50~60만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생각과 다산의 사상이 결합됐다고 이야기하는데 그것은 제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독자의 판단을 제가 강요하거나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마지막으로 연구소에서 남북 다산 연구를 위한 심포지엄을 하자고 북측에 보냈지만 답변이 없습니다. 어디서 심포지엄을 개최하든간에 모든 경비를 우리 쪽에서 제공하겠다 해도 북한에서 응답이 없어 답답한 상황이죠.

 

 

- 다산정약용하면 일반적으로 수원 화성을 떠올립니다. 이사장님은 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제가 집중적으로 화성을 연구한 것은 아닙니다. 화성 전문가가 그 중요성을 더 잘 알고 있겠죠. 제가 아는 한 화성이라는 축조물은 영, 정조시대의 학문, 사상, 예술의 결정체입니다. 지렛대와 도르레, 바퀴, 거중기, 농로 등 당시 과학과 문명이 그대로 반영돼 있는 것이죠. 방화수류정의 아름다움은 예술의 극치입니다. 성이 적의 침입을 방어하도록 가장 과학적으로 설계되어 있고 당시 국방력을 살필 수 있는 최고 집약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유교중심사상인 효가 들어있습니다. 정신적, 철학적 측면에서도 화성이 가지는 의미는 크죠. 우리나라 구조물 가운데 역사적 가치가 가장 큰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경기도 수원의 한 가운데에 자리잡은 화성을 보존하는데에 기울여야할 도의 노력은 말할 것도 없죠. 특히 구조물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사상을 도의 정신으로 상징화시켜 보존해야 합니다.

 

 

- 경기도가 실학정신을 계승하고 화성 보전을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 경기도의 미래는 실학이 가진 미래지향적 실천에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기도는 ‘실학의 도’를 자처하고 있기 때문에 실학자에 대한 연구를 게을리해선 안됩니다. 그런 작업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실학의 긍정적인 측면을 극대화시켜야 합니다. 이같은 노력이 경기도를 업그레이드시키고 다른 도와의 차별성을 구축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렇다면 다산의 사상은 무엇이고 21세기 다산사상이 후대에 미친 역사적 산물은 무엇일까요. 또 오늘날 그 사상을 구체화 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 1862년 임술(壬戌)년, 임금 철종의 만년(晩年)으로 3남 지방의 곳곳에서 민란이 일어나 세상이 시끄러웠던 해입니다. 나라의 기강은 무너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한 세상이었습니다.
철종은 나라의 벼슬아치나 선비 가릴 것 없이 모든 지식인들에게 당시의 삼정문란에 대한 해결책과 민란 방지의 방책을 올리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이 때 전라도의 장성에 살던 당대의 학자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1798~1879)은 삼정문란의 위에는 무능한 수령이 있고 아래로는 간악한 아전들의 횡포가 자리하고 있다고 썼습니다. 또 그들의 간악함은 다 말할 수 없으며 이러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해결법은 앞선 임금 때의 신하였던 정약용의 저서 ‘목민심서’에 모두 열거돼 있다고 적었습니다.
임금께서 그 책을 구해다가 시험 삼아 읽어보면 나라의 위기를 진단하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대책을 건의했죠. 다산이 1836에 죽었으니 다산이 죽은후 30여년이 지나서 전라도 일대에 목민심서가 퍼져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현실을 인식하는 데에 다산의 사상은 동학관계자들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줬을 것입니다. 북한에서 나온 자료에는 ‘경세유표가 전봉준 등에게 영향을 줬을 것이다’라는 자료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다산의 사상을 되짚어보면서 반성하고 부정과 비리 척결의 큰 방책을 연구해야 합니다.
2004년도부터 경기도와 연구소가 공동주관해 실학축전 일환으로 실학산책을 진행중입니다. 최근 경기도문화재단에서 남양주시로 실학축전을 넘겼지만 한국실학 전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실학산책같은 프로그램을 경기도에서 비중있게 운영해야 할 것입니다.

 

 

- 다산의 진보적 사상을 받아들여 경기도가 더욱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최근 사회가 보수화되는 느낌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세상 살아가는 법을 말씀해주세요.
▲ 세상이 혼돈스럽고 살기 어려울 때 자극을 받아 변화를 추구합니다. 그렇게 개혁이 이뤄지는 것인데 지금 아무리 살기 어렵다고 해도 젊은이들은 편한 세상을 사는 것 같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 등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하고 싶은 말도 다 할 수 있으니 젊은이들에게는 살기편한 세상일 수도 있죠. 자극이 적으면 열정이 식고, 변화하고자하는 욕구와 열정이 식으면서 현실에 안주하게 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변화에 대한 열정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가 사회적으로 빠르게 발전을 거듭하다보니 만족하고 안주하는 경향이 생긴 것 같습니다.
지금 우리는 안주할 때가 아닙니다. 더 높은 목표를 세우고 자극받고 행동해야 할 때죠. 지식인들과 어른들도 현실에 만족하지말고 스스로 변화를 꾀하며, 젊은이들에게 자극을 줘야 합니다.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박석무 다산연구소 이사장은 1942년 전라남도 무안에서 태어났다. 1970년 전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법학 석사과정을 밟았다. 한중고문연구소 소장,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역임한바 있으며 제13대, 14대 국회의원으로 정치계에 몸담았다.
 박 이사장은 현재 다산연구소 이사장직 외에 단국대학교 이사장, 경기도 실학현양추진위원장 등을 맡고 있으며, 성균관대 석좌교수로서 출강하고 있다. 석사학위 논문인 '다산 정약용의 법사상' 등 여러 논문과 '다산산문선', '애절양' 등 고전 번역서와 '다산기행',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등 많은 다산 관련 저서를 냈다. 지난 해 6월에는 메일링 서비스 내용을 모아 '풀어쓰는 다산 이야기'(문학수첩)를 출간한 바 있다.

 

 

김준혁 수원시 학예연구사는
김준혁 수원시 학예연구사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수원에 살면서 정조와 화성을 연구하고 있다. 중앙대학교에서 역사를 공부하며 박사 과정을 마쳤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의 불교 정책', '정조대 장용위 창건의 정치적 추이', '정조대 군제 개혁과 수총양영 혁파', '정조대 무예도보통지 편찬 의도와 장용영 강화' 등의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우리 전통 문화와의 만남', '강좌 한국사'가 있으며, '정조의 꿈이 담긴 조선 최초의 신도시, 수원화성' 등 어린이를 위한 책도 펴냈다. 이 밖에도 이순신과 전태일의 전기를 저술했으며, 화성의 연구와 복원에 참여해 지역문화 발전에 일조하고 있다.

 

 

대담 : 김준혁 수원시학예연구사
정리 : 류설아기자 사진: 최윤영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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