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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외로움과 독재정치의 공포

러시아 부조리극 - 엘리자베따 밤

 

후텁지근한 밤공기, 불빛들이 명멸하는 간판들, 간판 아래를 바삐 오가는 이들의 뒷모습, 광고 전단이 어수선하게 흩날리는 거리. 25일 수원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무대에 올린 부조리극 ‘엘리자베따 밤’은 인계동 번화가의 밤거리를 닮아있었다.

이 극은 도시의 밤 거리처럼 쓸쓸하다. ‘부조리극’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다닐 하름스의 ‘엘리자베따 밤’은 전위적인 느낌을 살려 어두운 무대에서 시작된다.

무대 한 켠에서 촛불을 손에 든 여자가 나타난다. 이름하여 엘리자베따 밤. 그녀의 독백은 취객의 음성처럼 어수선하다. 엘리자베따 밤은 ‘살인죄’로 KGB 요원들로부터 쫓기고 있다. 촛불을 손에 든 그녀의 얼굴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이 연극은 엘리자베따 밤을 체포하는 무대에서 시작해 그녀가 죽음을 맞는 장면까지 총 22개의 에피소드로 진행된다.

극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작품의 배경을 먼저 알아야한다. 작품의 공간은 1920년대 러시아 스탈린시대의 사생활이 불가능한 공영아파트이다. 여러가구가 한 아파트의 각 방을 나눠쓰는 구조이기에,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작가 다닐 하름스는 공영아파트라는 공간을 통해 당시의 현실을 반어법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 극은 기존의 사실주의 연극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다소 낯선 작품이다. 특히 사실주의 연극에서 주축을 이루고 있는 인물들의 갈등구조나, 심리변화 등이 나타나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물들은 하나이면서 여럿이 되고, 여럿이 하나가 되는 점도 더해진다.

이런 전위적인 형태는 엘리자베따 밤이 한 명이 아닌 세 명으로 등장하고, 그녀의 아버지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으로, 두 명의 KGB 요원이 네 명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서로 다른 성향을 가진 분신이다.

스탈린의 하수인들이 엘리자베따 밤을 체포하지만, 그들 자신도 결말에는 죽게된다. 공영아파트 안에서 진행되는 22개의 장면은 인간이 외로운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셈이다.

이 가운데 재미있는 장면은 엘리자베따 밤과 아버지가 종소리에 맞춰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중얼거리는 부분이다.

이 장면에서 이들은 국어책을 소리내어 읽듯 ‘맥주’와 ‘완두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읊조림. 이들이 이야기하는 것들은 의미가 아니라 공포에 대한 기표로 재현된다.

이렇듯, 이 극은 서로를 감시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반어법적으로 들려주고 있다. 이는 스탈린의 독재정치와 맞물려 있다. 특히 시대적 상황을 몽타주 기법으로 구성하고 있기에 관객들은 어수선한 기분을 갖게 된다.

여기에 처음과 끝이 동일한 장면이 다른 형태로 구성되어 당시의 지독한 공포를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하지만 감시의 기능을 살리기 위해 배우들이 여러 명 등장하는 장면에서 이들의 대사들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고, 관람가 나이가 7세이상 임에도 불구하고 극에 대한 별도의 안내가 없었던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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