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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뤄내 마음의 빚 덜어”

故 박종철 열사 대학 선배 박종운 씨

6.10 항쟁 20주년을 맞는 박종운씨(47·도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사진)의 감회는 아프고 슬프다.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고 하지만 그의 가슴은 ‘업보’ 탓에 아직 새벽처럼 서늘하다.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요. 저는 종철이를 그렇게 가슴 속에 묻었습니다”

그는 6.10 항쟁의 기폭제가 된 고(故) 박종철 열사가 경찰의 물고문을 당하면서도 끝내 지켰던 서울대 선배였다.

“종철이는 저를 끝까지 보호하려다 꽃다운 청춘을 마감했습니다”

그가 고(故) 박종철 열사를 가슴에 묻는 이유였다.

박종철 열사는 당시 민주화 운동으로 수배중이던 그의 소재를 캐내려는 경찰에 잡혀갔으나 끝까지 그의 행적을 말하지 않다 1987년 1월 14일 물고문으로 숨진 것이다.

“종철이가 죽고나서 며칠 뒤 신문 보도를 보고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됐습니다. 학생운동을 할 때 감옥에 가는 것은 모두가 각오를 하고 있었지만 사람까지 죽이다니..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죠”

그는 6월 항쟁 이후에도 계속 도피 생활을 하다 지난 1988년 10월 수배가 해제돼 ‘자유의 몸’이 됐다.

“6.10항쟁은 종철이의 민주화 열망과 혼이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났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딛고 승리했기에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습니다”

그는 매년 1월과 6월, 고(故) 박종철 열사 추모 행사와 6.10 항쟁 기념행사에 참석해 먼저 간 박 열사를 기리고 있다.

”종철이가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민주화된 살기 좋은 세상에 함께 살고 있을텐데..”라고 안타까워 하면서도 ”그의 희생이 없었다면 민주화도 없었을지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수배 해제 이후 정치권에 잠깐 몸담았다가 지금은 도경제단체연합회 사무총장직을 맡고 있다.

어느덧 40대 후반이 된 박씨는 “이제 정치적 민주화는 이뤄졌으니 경제의 민주화를 달성해야 한다”며 “앞으로 소비자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해나가겠다”고 조용히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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