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굴레, 문학도의 길 좌절케 했지만 틈틈이 풀어낸 恨의 노래 세상빛 봤으면…”
서울경마공원 이원문(47)씨는 시(詩)쓰는 마필관리사로 통한다.
학창시절 교지에 글이 실릴 만큼 글짓기가 뛰어났으나 가정형편상 문학의 꿈을 접었던 그가 타고난 자질을 주체할 수 없었는지 10년 전부터 시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아마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소설이나 시로 쾌 이름을 알렸겠지요. 하지만 학창시절 늘 가난이란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문학의 길은 엄두를 못 냈지요.”
부친이 6.25때 한쪽 눈을 실명한 참전용사로 제대 후 소작농으로 생계를 이어갔으나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여서 가난은 늘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보훈대상자인 그의 첫 직장은 유명제약회사였으나 고졸인 학력이 승진에 걸림돌로 작용, 마음고생 끝에 13년간의 직장생활을 접었고 정부가 추천한 마필관리사란 직업을 36살이란 적지 않은 나이에 택했다.
“배고프고 무시당하는 등 가진 설움은 다 겪었습니다. 마필관리사로 마음의 안정을 찾기 전까지 부모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원망을 참 많이 했습니다.”
그는 가슴 겹겹이 쌓인 한(恨)을 시로 풀어나갔다.
/팔자위에 놓여 살아가는 모든 이의 비명소리는 갈수록 높아져만 가고 바꿀 수 없는 숙명은 원망과 탓으로 얼룩져간다…/(팔자의 비명)
/마음이 가난하여 슬픈 것인가. 천금의 부가 없어 슬픈 것인가.(중략)돌아보면 저 하늘의 별처럼 수많은 모든 것이 잊혀지고 잃어버리고 아스라한 기억들만 남았을 뿐 모두가 슬픔만 남긴 채 떠나버렸네…/(슬픔의 저 언덕)
1990년대 후반 초기 작품을 보면 온갖 상처로 얼룩진 자신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아픔은 겪은 만큼 성숙하듯 2000년대 들어서면서 굴곡진 자신의 운명을 승화시키는 단계에 이른다.
/늪은 우리 모두가 흘려보낸 오물을 불평 없이 썩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는 근원이 된다. 늪인 내가 늪이 되고 싶어 된 것이 아니기에 나를 늪으로만 보지마라/(회생)
모두 30여 편인 자작시는 현란한 기교나 톡톡 튀는 시어는 드물다.
그러나 ‘회생’과 ‘들꽃’ 등에서 보듯 주변 사물을 통해 인간의 그릇된 생각과 시각을 재조명하는 비유법은 탁월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또 반복되는 시구를 통한 음률이 뛰어나다는 말도 듣고 있다.
그는 “은퇴 후 문학 분야에 더욱 정진해 시집을 발간하고 제목도 정하지 않은 채 미완성 작품으로 남은 단편소설을 마무리 짓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