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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04>-깨달음의 길

지한 일곱번째 걸음에 입적하다-소설가 이재운

 

지한이 어느 날 시자를 불러 물었다. 지한은 역대 고승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았는지 물었다.

“앉아서 죽은 사람이 누구냐?”

“승가(僧伽)입니다.”

“서서 죽은 이는?”

“승회(僧會)입니다.”

모두가 생사를 초탈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시자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지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여섯 걸음을 걷고 일곱번째 발을 내딛는 순간 입적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탄생할 때 일곱 걸음을 걷고 사방을 둘러본 다음 한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다른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

이라고 말했다는 보요경 주행설화와 어느 정도의 관련을 가진 행동이었을 것이다. 선사들의 삶에는 쓰레기가 없다. 버릴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죽음마저도 선사들에게는 설법이 되는 것이다.

얼마나 고귀하면 신던 신이며 먹던 바루며 입던 낡은 옷가지마저 경외의 대상이 된단 말인가. 그러니 그런 선사들에게 이 세상이란 얼마나 고귀했겠는가.

어느 날 구지가 기거하는 암자로 한 비구니가 찾아왔다. 이 비구니는 큰 삿갓을 쓰고 구지를 중심으로 세 번 돌고 난 뒤에 말했다.

“한 말씀 해보시지요. 바로 말씀하시면 삿갓을 벗겠습니다.”

비구니는 똑같은 질문을 세 번 했으나 구지는 번번이 말문이 막혔다. 비구니가 그대로 떠나려 하자 옆에서 지켜보던 앙산이 말렸다.

“날이 저물었으니 하루밤 묵어 가시지요.”

“구지 스님께서 바로 말한다면야 자고 가겠습니다.”

구지가 또 말이 막히자 비구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가버렸다. 그 일이 있은 지 오래 뒤에 천룡(天龍)이 암자로 찾아와 그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얘기를 듣고난 천룡은 아무 말 없이 한 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그제서야 구지는 꽉 막혔던 가슴이 활짝 열리는 깨달음을 이루었다.

그 후로는 누가 불법을 묻기만 하면 손가락을 세워 보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는 독특한 방법으로 제자들을 가르쳤다.

어느 날 객승이 찾아와 친견을 청하였다. 마침 구지는 외출 중이라서 암자에 없었다. 그때 구지의 시봉을 들던 동자가 나서서 어디서 오셨느냐 등등 이것저것 말참견을 하자 먼 길을 애써 찾아온 객승이 낙심한 끝에 동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동자야, 너희 화상께서는 무슨 법을 말씀하시더냐?”

“어려울 거 없어요.”

동자는 언제나 보아온 대로 구지의 흉내를 내어 제 손가락을 쳐들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마침 암자로 돌아오던 구지가 먼 발치에서 그 모습을 보고 황급히 달려와 동자를 붙들고는 쳐들고 있던 손가락을 잘라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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