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아원 출신으로 소위 말하는 주먹세계를 누비다 감방을 제집 드나들 듯 한 그는 번데기가 허물을 벗고 날개를 단 성충으로 변하듯 봉사자로 예술인으로 변신을 거듭했다.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은 파란만장하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포대기에 쌓인 채 고아원에 맡겨졌으나 8살 때 뛰쳐나와 무작정 상경, 당시 서울역 앞 도깨비 시장으로 불리는 공원시장에서 어깨들의 똘마니 노릇을 했다.
자릿세를 뜯기 위해 범법자들이 판을 친 바닥에서 절도와 잦은 폭력행사는 소년원과 수용소를 수차례 들락날락거리게 했다.
15세 때 뒷골목 동료 50여명과 “명동쿠자”란 조직을 결성, 지역 확장 다툼에서 피 튀기는 싸움은 경찰의 표적이 돼 교도소는 내 집 안방이 되었다.
“내 주먹이 법이고 보호자이자 신앙이었습니다. 거칠지 않으면 살수 없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사람답게 살지 못한 시절이었지요.”
1979년 형기를 마치고 출소 시 그는 두 번 다시 교도소 신세를 면치 못하면 목숨을 끊겠다는 각오를 한다.
전과 3범 이상인 60명과 함께 과천 관악산 기슭에 텐트를 치고 봉사활동을 한 것이 새로운 삶의 신호탄이었다.
재생의 터전이었던 관악산에 대해 인명구조와 징검다리, 안전로프 설치는 물론 등하교 교통정리, 새벽 거리청소에 이르기까지 봉사란 봉사는 찾아다니며 했다.
조각에 빠져든 것은 6년 전으로 밤낮없이 작업에 몰입, 지금까지 3백여 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시와 자매도시인 캐나다 에어드리시 과천공원에 장승 6개를 세운 것도 그였다.
“젊은 시절 나쁜 길을 걸었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끌로 나무를 깎을 때마다 떨어져 나감을 느꼈습니다.”
작품소재는 동물과 새, 인물상 등 다양하다. 특히 그가 꼽는 걸작은 “생명의 시작”이다. 여성의 나신 배 밑에 불룩하게 튀어나온 뚜껑을 열면 밑 부분부터 올라온 남근이 여근에 삽입된 모습과 하트모양이 나오는 특이한 작품이다. 얼핏 보면 지독한 외설이나 예술과 외설의 어설픈 경계의 잣대를 들이대 판단한 것은 금물이라고 말한다.
“아마 전 세계적으로 이런 조각품은 유일할 겁니다. 남녀간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생명의 씨앗인 정자(하트)의 의미를 표현했지요.”
시는 13년 전부터 손댔다.
시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닮기 위해서라고 했다.
7년 전 정식 등단작가로 이름을 올린 그의 글은 인생의 성찰과 반추가 고스란히 녹아있다.
/어둠을 녹이고 싶어 나 스스로 촛불이 되었노라. 어둠을 마시고 싶어 이한 몸 불태우리니 (이하 생략)/(어두운 밤 촛불이 되어)
최근엔 2편의 시집도 발간, 구치소에 4천권을 기증, 교화용으로 쓰도록 했다.
간단치 않은 삶을 산 그는 가슴에 품고 있는 인생철학은 한마디로 정리했다.
“세상이 변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나 자신이 변해야 나의 존재를 깨닫고 세상으로의 한 발을 내디딜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