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 (금)

  • 구름많음동두천 27.5℃
  • 맑음강릉 32.0℃
  • 구름조금서울 29.1℃
  • 맑음대전 28.9℃
  • 맑음대구 29.9℃
  • 맑음울산 28.6℃
  • 맑음광주 28.6℃
  • 맑음부산 28.4℃
  • 맑음고창 27.8℃
  • 구름조금제주 29.4℃
  • 구름조금강화 26.6℃
  • 맑음보은 26.2℃
  • 맑음금산 27.0℃
  • 맑음강진군 27.2℃
  • 맑음경주시 29.2℃
  • 맑음거제 28.0℃
기상청 제공

[소설]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26>-깨달음의 길

진각 입적 준비 알지 못하는 마곡 - 소설가 이재운

 

게송을 읊고난 진각은 주먹을 불끈 쳐들어 보였다.

“이게 바로 해탈선이라네. 자네, 좀 알겠나?”

진각은 다시 손을 펴보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주먹을 펴면 다섯 손가락이 각각 다르지만,”

진각은 다시 주먹을 쥐어보이면서 말했다.

“이렇게 오므리면 하나가 되는 것이니 펴고 오므리는 것이 자유로워 걸림이 없네.

이것은 주먹에 대한 본분설법이 아니라네. 자네가 한 번 어떤 것이 본분설법인가 말해 보게.”

마곡은 여러 모로 궁리했으나 진각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자 진각은 창문을 마구 두드리다가 큰 소리로 껄껄 웃어버리고 말았다.

진각은 시퍼런 칼만 휘두르다가 소득도 없이 거두어들인 셈이 되었다.

이 일화는 뒤에서의 최후 문답과 곧바로 연결이 된다.

진각에게도 입적의 날은 왔다. 고인의 전기를 다루는 데는 입적에 대해 거의 면역이 되어 생활의 한 자연스런 변화쯤으로 늘 무관심한 것이 사실이다. 현실감을 잊기가 쉽다는 뜻이다.

진각은 최후 문답과 유언을 모두 마친 뒤 도반 마곡이 지켜보는 데서 입적을 준비했다.

이상하게도 마곡은 진각이 곧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평소와 다름없이 진각을 대했다. 진각 또한 일상 이야기를 늘어놓고 웃으며 떠들 뿐이었다.

두 노스님들이 한참만에야 웃음을 끊고 작별을 시작했다.

물론 그 작별이란 게 너무 일방적이긴 했지만 늘 그렇듯이 진각은 마곡을 골탕먹일 궁리도 함께 해놓고 작별을 시작한 것이었다.

진각은 마곡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이 늙은이가 오늘은 몹시 바쁘다네.”

“아니, 이 사람아! 여태 잔소리를 하다말고 무엇이 그리도 바쁘단 말인가? 원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먼.”

“아, 글쎄 이 늙은이가 오늘은 몹시도 바쁘다니깐?”

마곡이 참말로 무슨 말인지를 몰라 멍하니 앉아있는 동안 진각은 미소를 띠면서 조용히 호흡을 접었다.

바쁘다는 말 한 마디가 영영 떠나는 도반의 이별사였다.

마곡은 입적에 든 진각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는 아프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바쁘다고 하고는 훌쩍 떠나는 도반을 어떻게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진각의 향수는 57세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