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08 (일)

  • 구름조금동두천 20.0℃
  • 맑음강릉 21.6℃
  • 맑음서울 23.1℃
  • 구름조금대전 23.5℃
  • 흐림대구 24.7℃
  • 박무울산 24.0℃
  • 박무광주 23.5℃
  • 박무부산 26.7℃
  • 맑음고창 20.5℃
  • 구름많음제주 26.6℃
  • 맑음강화 19.8℃
  • 구름많음보은 22.2℃
  • 구름조금금산 22.3℃
  • 흐림강진군 24.0℃
  • 구름많음경주시 24.6℃
  • 구름조금거제 24.6℃
기상청 제공

[소설]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36>-깨달음의 길

지공, 나옹의 큰 법기(法器) 인정 - 소설가 이재운

 

지공은 다시 물었다.

“고려에서 왔다고 하니 묻는데 동해 바다는 보고 왔는가?”

“바다를 건너온 사람이 어찌 바다를 보지 않고 올 수 있겠습니까?”

“누가 널 이렇게 오게 했지?” / “스스로 왔습니다.”

“무얼 하러?” / “후세 사람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실을 허락했다.

며칠이 지나서 지공이 게송 하나를 지어서 나옹에게 주었다.

선(禪)은 집 안에 없고, 법(法)은 밖에 없거늘 / 뜰 앞의 잣나무가 사람의 사랑을 아는구나 / 서늘한 누각 위의 해맑은 태양이여 / 동자가 모래알을 세고 있으니 동자는 알겠지

나옹도 게송 두 편을 지어 지공에게 바쳤다.

들어갈 때 안이 없고 나올 때는 밖이 없으니 / 이 세상 모든 것이 선불장이네 / 뜰 앞의 잣나무가 다시 분명하니 / 오늘은 초여름 4월 5일

모르면 산과 내가 경계를 이루나 / 깨닫고 보면 티끌이 다 한 몸이로세 / 미혹과 오도를 함께 때려 부수니 / 닭은 아침마다 오경에 우네

지공은 나옹의 두 게송을 보고 마침내 나옹이 큰 법기(法器)임을 인정했다.

나옹은 법원사를 떠나 평강부 휴휴암에서 하안거를 지내고 처림(處林)과 평산(平山) 두 선사를 찾아갔다. 나옹이 찾아갔을 때 마침 평산은 승당에 있었다. 그것을 본 나옹은 승당으로 들어가 이리저리 걸었다. 평산이 그러는 나옹을 보고 물었다.

“어디서 온 사람인가?” / “고려의 서울에서 왔습니다.”

“누구를 보고 왔는가?”/ “서천과 지공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얼 하고 있던가?” / “날마다 칼 천 개를 휘두르고 있습니다.”

“지공의 천 칼은 그만두고 너의 한 칼이나 가져오너라.”

나옹은 벌떡 일어나 깔고 있던 방석을 집어들어 평산을 내리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이는구나.”

평산이 이렇게 소리치자 나옹은 평산을 잡아 일으키면서 말했다. 도적놈은 법을 훔친 사람, 진리를 가져간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이 껄껄 웃으며 나옹의 손을 잡고 방장으로 들어가서 차를 대접했다.

“고려의 지혜 명철한 수좌가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 말하는 품이 부처님과 조사님들의 말씀에 썩 잘 어울리는구나. 종안(宗眼)이 명백하고 말귀 속에 칼날을 감추었다. 내가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부촉하여 전법의 신(信)을 표한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