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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깨달음의 노래, 해탈의 노래<146>-깨달음의 길

시작(詩作)에 능통한 휴정과 소요 - 소설가 이재운

 

휴정은 한가한 몸으로 청산 백운 속에서 말년을 보냈다.

선조 37년(서기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 있으면서 1월 23일이 되자 목욕하고 새 옷을 갈아입더니 가마를 타고 묘향산에 있는 암자들을 두루 살피고 나서 대중에게 설법을 했다.

설법을 마친 휴정은 조실에 들어가서 자화상을 보면서 임종게를 그 뒷면에 적었다.

80년 전에는 이것이 나이더니 /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게송을 쓰고 나서 영정을 사명과 처영에게 전하라고 한 뒤 단정하게 앉아서 입적하였다.

향수 85세, 법랍 67세였다. 휴정의 법호 서산(西山)은 그가 주로 머물던 묘향산을 가리킨 말이다.

저서로는 <선가귀감(禪家龜鑑)>을 비롯한 수많은 선서가 있다.

문학(文學)은 과연 도(道)에 이를 수 있는가.

예로부터 동양 문화권에서는 시경(詩經)을 앞세워 인간의 솔직한 정신세계를 그린 시를 매우 숭상하였다.

군자라면 시 한 수쯤은 써야 되는 것으로 알았고, 이러한 문화는 조선시대까지 내려와 시는 선비가 갖추어야 할 당연한 덕목쯤으로 인정받았다. 오죽하면 임진왜란 중에 일본 사신을 맞는 관리를 뽑는데 시를 잘하는 사람으로 뽑았을까. 그만큼 옛날 사람들은 시를 도의 무게와 크기를 잴 수 있는 것쯤으로 알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불가(佛家)에서도 뛰어난 시인들이 저절로 배출되었다. 이중에서도 시만으로 따지자면 단연 휴정 선사가 대시인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그 다음으로 소요 태능 스님이 역시 대시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고도 많은 스님들이 뛰어난 시를 다투어 발표했다.

다만 유교 사상에 젖은 학계 분위기상 선시인들의 발자취를 제대로 조명하지 못해왔으며, 이러한 탓에 황진이며 허난설헌은 거론해도 일반 시사(詩史) 연구자들조차 휴정과 소요를 잘 알지 못하게 된 것이다.

휴정 스님과 소요 스님의 선시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읽어보아도 가슴 저리는 구절이 너무나 많다. 그것이 도를 나타내든 그렇지 않든 마음을 뒤흔들어대는 것만은 틀림없다.

소요 태능 스님은 처음에는 주로 부휴(浮休)의 지도로 선기(禪機)를 달구었다고 알려졌다.

소요가 출가한 것은 열세 살 때였다. 우연히 백양산(白羊山)에 놀러갔다가 물외(物外)의 선경(仙境) 보고 출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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