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난 소녀는 어릴 적 한약방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손을 잡고 약재를 구하러 다녔고 언제나 방안엔 말려놓은 한약재의 향취가 풍겼다. 그의 아버지는 자신이 그러했듯 가업을 막내딸이 잇기를 은근히 바랐다.
과천시 별양동에 자리한 삼세(三世)한의원 박남숙(34) 원장은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3대에 걸쳐 한의학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19일 생면부지의 박 원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뒤 찾아간 한의원 실내는 옅은 연둣빛 실내조명이 편안함을 줬다.
“아버님이 공부를 비교적 잘한 저에게 한의사를 되기를 원했지요. 희망한 미대를 포기한 것도 그 영향이 전혀 없다고는 못하겠죠. 한의학 공부가 힘들 때 왜 한의대를 택했을까란 회의도 들었으나 대학 시절 오지에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건강을 되찾게 해주는 일에 보람을 느꼈고 그 뒤로 한의학에 전념하게 됐지요.”
그의 할아버지는 전형적인 시골선비로 당시 중인이 하던 의관은 택하진 못했지만 한의학에 유독 관심이 많아 한방서적을 두루 섭렵했었다.
쌀독에 바가지 긁는 생활고를 느낄 때도 학업에 정진, 동네 아픈 사람을 찾아다니며 의술을 베풀었다.
그런 부친을 보고 자란 아버지는 한약업사 자격증을 취득, 한약방을 개업한 것이다.
지금이야 한의사제도로 사양길로 접어들었지만 의료기관이 많지 않던 시절, 한약방은 병을 다스리던 장소로 각광을 받았다.
부친은 1960년대 초반, 무의촌이던 과천에 뿌리를 내렸다.
“아버님은 정신적인 지주이자 스승이었지요.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많이 배웠고 경희대 한의학과 재학시 이해가 되지 않은 분야를 놓고 끙끙대면 가르쳐주시기도 했고요.”
그러나 부친은 사랑하던 막내딸의 개업을 불과 7개월 앞둔 2003년 봄에 타계, 그에게 아픔과 아쉬움을 안겼다. ‘나이가 젊어 환자들이 꺼려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젊다는 게 경륜에선 약점이나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신 의학을 공부했다는 점은 강점”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보험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 부분이 많아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이 쉽게 접근 못하는 문제에 대해 “정부가 인식을 달리해 의료보험적용의 확대 등 관련법 개정이 시급하다”며 “이런 정책은 장기적으로 의료재정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는 답변을 했다.
박 원장은 올해 3월 아주대학교 대학원 의학과에 입학, 한의계가 지칭하는 양의학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전공분야는 약리학과로 기초의학의 배움은 앞으로 한의학발전을 이룩할 것이란 판단이 든 이유도 있지만 워낙 연구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다.
환자진료의 기본을 사상의학에 바탕을 둔다는 그는 건강하게 사는 법에 대해 “스트레스를 덜 받고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는 한편 꾸준한 운동과 규칙적인 식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할 것”이라 말하고 ”그러기 위해선 생활습관이 바꾸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