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도에 한번 입문하면 그 오묘함에 절대 빠져나가지 못합니다. 체력단련과 정신수양을 겸한 스포츠로는 궁도를 쫓아올 종목이 없지요.”
체육 동호인 클럽 탐방 차 지난 2일 오전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고 찾은 과천동 하천변에 자리한 율목정은 10여명의 습사(習射)가 한창이었고 사대에서 한 순(巡)을 쏜 뒤 내려온 회원들은 입안이 마르도록 궁도 예찬론을 폈다.
인류가 무기로 맨 처음 손에 든 것이 창과 활이었고 그 중 활은 한민족에게 특히나 친근한 존재였다.
율목정 회원들은 예전 전통무예에서 이제는 스포츠의 한 종목으로 자리 잡은 궁도를 소중히 여겨 보존 계승하는 동시에 자신의 신체단련 수단으로 늘 곁에 두고 생활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갖는 애착심에 반해 궁도장 환경은 좋은 편은 못되었다.
입구에서 사대로 가는 좁은 길은 비만 오면 질퍽거렸고 사대와 사무실을 겸한 휴게실도 비닐하우스로 지어져 열악했다. 타 지방 궁도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시설은 좋지 않았지만 회원들의 열정 하나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번듯한 궁도장을 갖추면 더 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비닐하우스면 어떻습니까. 뜻과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한자리에 모인다는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일인데 심신까지 단련하니 비단 위에 꽃을 더한 격이지요.”
율목정 탄생은 지난 2003년 10월로 역사가 오랜 된 편은 아니다. 조선 시대 과천이 현(縣)이라곤 하나 활터 한 곳 없었던 터라 궁도에 대한 애착과 인식이 얕을 수 밖에 없었다.
서울의 관문인 과천에 궁도장이 한 곳도 없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 김영수(65) 현 회장이 회원 20명을 주축으로 율목회를 발족시켰고 6년여가 지난 현재 회원이 50여명으로 늘었다. 연령 대는 10대서부터 80대까지 고르게 포진돼 있고 직업도 주부, 농업인, 직장인 등 다양하다. 여성회원을 5명이나 보유한 것도 율목정의 자랑이다.
회원 간 화합은 한달에 한두 번 습사가 끝난 뒤 회식을 하면서 토론으로 다지고 신입회원이 처음으로 과녁에 화살을 적중시키면 일중례(壹中禮)로 축하해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연습은 1주일 내내 율목정이 개방돼 있어 자신이 편한 시간대에 하면 된다.
재미있는 사실은 궁도도 바둑과 똑 같은 급수가 있다는 것. 9~1급, 1~9단까지 실력에 따라 18등급으로 분류하고 최고수인 9단은 전국에 14명이 있다고 했다. 율목정엔 1, 2단이 각 두 명, 3단이 한 명이다.
김 회장은 실력이 타 동호회에 비해 떨어진다고 하나 경기도체육대회와 생활체육대회, 경기도지사배 등에서 중위권의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여수, 통영, 합천 등 4개 시·군이 참여해 최근 개최된 통영시장배에선 개인전, 단체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전국 궁도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인 황시열(62) 사범은 각궁을 불에 달궈 모양을 잡는 작업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넌지시 궁도자랑을 늘어놓았다. “활을 쏘는 원동력은 팔 힘이 아닌 하체에서 옵니다. 흔히 궁도는 가만히 서서 하는 운동으로 별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보나 역도선수가 한계체중을 50번 들어 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에너지를 소모한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릴레이 바통을 받듯 주위를 빙 둘러 앉은 회원들도 한마디씩 거들었다.
김강명(38) 여무사(여자 궁사를 이렇게 불렀다)는 “도시생활에다 업무로 인해 쌓인 스트레스가 화살 한번 쏘고나면 말끔히 날아간다”고 했고 이태연(43)씨는 “참을성과 매사 신중함을 배웠다”며 체험담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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