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대 총선이 하루 앞으로 다가 왔다. 투표율이 사상 최저로 나타나지 않을 지 걱정이 많다. 네 달 전 치렀던 17대 대통령 선거의 투표율이 사상 최저였듯이 국민들은 날로 공직자 선거에 관심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물론 일차적으로 정치인들의 책임이다. 정치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한 결과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실시되었던 각종 여론조사들은 투표 1주일 전까지도 무응답층이 이례적으로 높게 나왔다. 지난 2월 29일 자 경향신문 보도로는 정당과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에 무응답층이 26.1%였으나 한 달 뒤인 3월 29일 조선일보 조사 때는 이들이 41.2%로 늘어났다.
이는 4년 전인 2004년 4.15 총선 때의 같은 시기 무응답층 21.3%보다 갑절 이상 뛴 것이다. 그만큼 후보별 당락 예상이 어렵다. 무응답층은 투표일이 가까워질수록 엷어지는 법인데 이번 경우는 다른 모습이다. 이처럼 무응답층이 많은 것은 수도권 30~40대가 방황하기 때문이라는 견해가 있다. 이들은 대부분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보냈지만 총선에 임하면서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고소영 내각’이니 ‘강부자 내각’이니 하는 특권층 우대 정부에 실망했다. 그렇다고 고작 몇 달 만에 등을 돌리자니 자존심이 상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리적 갈등을 겪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런 현상은 기권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한겨레’가 지난달 말께 보도한 ‘표적집단심층면접(FGI)’에 따르면 우리나라 30~40대는 경제를 ‘국가 차원’이 아닌 ‘개인 차원’에서 보고 있다.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경제성장율’이나 ‘무역수지’따위는 관심이 없다.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치부한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들의 미래는 불안하기만 하다. 또 그들은 세계화나 양극화를 불가피한 현실로 받아드린다. 그들은 이념적으로도 보수나 진보가 아닌 중도라고 말한다. 지난 10년간의 ‘보·혁 갈등’시대를 겪은 학습효과이다. 이전 세대와는 확연하게 구분된다.
집권당인 한나라당과 야당인 통합민주당은 모두 외부 인사에게 공천 작업을 맡겨 개혁을 시도했다. 겉포장은 개혁이었지만 내용물은 계파 간 분배였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명박의 지분은 크게 늘리고 박근혜의 지분은 최소 보장하는 절충을 택했고, 민주당은 손학규와 박상천 양대 주주의 지분을 보장해 주었다는 평가이다. 다수 공천 탈락자들이 불복, 무소속 출마 중인데, 이는 정당정치를 부정하는 행위이다.
개혁으로 출발했지만 결과가 이렇게 변질된 것은 개혁이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이번 총선의 특징은 보수우파 세력의 분열현상이다. 이들은 대선과 총선 공천과정을 거치면서 한나라당, 친박연대, 그리고 자유선진당으로 3분되었다.
이로써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권력을 독점했던 보수우파 세력이 처음으로 분열된 것이다. 만일 총선 후 이들 세 집단이 통합한다면 우리 정치권력은 다시 보수우파 세력의 독점체제로 굳어질 공산이 크다. 물론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킨 책임은 지난 10년간의 국정담당 세력에게 있다. 그들은 특별한 실정은 없었는데도 지탄을 받았는데 이는 교만, 아집 그리고 포용력의 부족 때문이었다.
흔히 보수는 부패하기 쉽고, 진보는 분열하기 쉽다고 한다. 국민 사이에 만연한 부패불감증은 반세기가 넘는 보수집권의 부작용이다. 지난 10년 동안의 진보개혁 집권으로 이 병이 치유될 듯 했는데 다시 부패 친화적인 세력이 국회를 장악한다면 부패가 되살아나고, 그만큼 선진국 진입은 힘들어질 것이다.
찍고 싶은 후보가 없다는 불만도 들린다. 이런 사람들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스스로를 통치하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그에 대한 최대의 벌은 자기보다 못한 사람한테 통치를 당하는 것’이라는 금언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프랑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는 그의 저서 ‘미래의 물결’ 한국어판에 붙인 ‘한국의 가까운 마래’에서 “한국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과거가 빚어놓은 갈등, 즉 북한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이라면서 “북한의 핵무기 야욕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개성공단 같은 산업시설을 통해 경제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정책 또한 병행하라”고 충고한다.
핵무기 문제는 북·미 간 협상 대상인만큼 일단 지켜볼 일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권은 민주주의의 포기이다. 싫더라도 투표장에 나가 ‘나보다 못한 사람’이나, ‘남북관계를 악화시킬 사람’은 찍지 말아야 한다. 좋은 선택은 21세기 한국의 미래를 좌우한다.
문영희<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