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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최연식 기자의방북 취재기

(사)평화3000 주관 평양~백두산~묘향산 여정… 살벌한 구호·무표정 인민 등 씁쓸

 

 

지난달 27일부터 30일까지 3박4일의 일정으로 다시 북한을 다녀왔다. ‘(사)평화3000’의 주관으로 실시된 이번 방북은 ‘평양~백두산~묘향산’에 이르는 여정으로 비교적 북한의 넓은 지역을 목격할 수 있는 기회였다. 민간 방북단을 동행하며 느낀 수령과 장군의 나라 답사기를 일정 순으로 싣는다.

 

-그대로의 평양, 표정 없는 인민

 

▲개인적으로 평양 방문은 2번째다. 지난해 11월 방북 때는 평양시내에만 머물다 왔으나 이번에는 백두산 등정과 묘향산 관람이 포함돼 있어 꽤 기대가 됐다. 하지만 당초 9월 20일 출발하기로 돼 있었던 여정이 하루 전에 취소되면서 1주일이 지난 27일에야 평양 순안 공항을 향해 비상할 수 있었다.

오전 10시경 순안비행장에서 각 조별 버스 승차 후 숙소인 양각도 호텔로 향하는 도로변에는 추수를 독려하는 문구들과 초라한 행색의 인민들이 소달구지에 옥수수를 실어 나르는 모습도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60년대로 회귀한 느낌이 들었다.

또 거리를 오가는 인민들의 모습은 여전히 인민복 차림이거나 어두운 색 계통의 비슷비슷한 옷차림이었고 무표정의 바쁜 걸음이 삶의 고단함을 대변하고 있는 듯 했다.

평양 시내의 간판들은 여전히 붉은 빛으로 섬뜩한 구호들을 내뱉고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 원수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 ‘위대한 선군 정치 만세’ 등 고층 건물의 옥상이나 거리의 한 곁에는 어김없이 구호들이 난무했고 그 앞을 지나는 인민들은 구호에 관심 없는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전 11시쯤 대동강 양각도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북측 환영 오찬에 참석키 위해 잠시 쉬는 동안 방에서 평양시내를 내려다 봤다.

대동강 푸른물이 유유히 흐르고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 아래 저 멀리 모란꽃 형상을 한 5.1경기장이 보이고 골재를 채취하는 선박들과 강변에서 낚시를 하는 인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양의 뿔을 닮았다’는 뜻의 대동강의 양각도에 지어진 호텔은 총 47층으로 유럽식 내부 구조를 갖추고 있었고 지하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카지노장, 47층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회전식 레스토랑으로 돼 있었다.

 

-김일성의 고향집 만경대와 쑥섬 관람

 

 

▲북측의 환영 오찬을 마치고 일행은 김일성이 태어났다는 만경대 ‘고향집’으로 향했다.

만경대 고향집은 초라한 초가집이었으나 북측은 이곳을 성역화해 모든 인민의 고향, 혁명의 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

만경대 관람을 마치고 대동강의 쑥섬으로 향하며 평양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광복거리와 청춘거리를 지나는 동안 정주영 체육관과 소년학생 궁전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으나 우리의 시선은 창밖에 펼쳐진 인민들의 모습과 전차를 연상시키는 전기 버스에 빽빽이 올라 탄 피곤한 인민 군상의 생활에 집중됐다. 소년학생 궁전에 걸려 있는 ‘이 세상에 부러움 없어라’라는 구호가 발길 없는 ‘광복백화점’ 상호와 초라한 인민들의 외모와 대비되면서 참으로 비참한 나라, 가엾은 나라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쑥섬은 쑥이 많아서 붙여졌고 안내원에 의하면 그곳에 있는 버드나무 아래서 조국통일을 위한 56개 남북한 정당과 단체 대표들의 연석회의가 열렸는데 김구 선생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김일성을 칭송해 직접 쑥섬에서 잡은 고기로 어죽을 대접했다고 했다.

쑥섬 관람을 마치고 일행은 저녁식사를 위해 ‘평양 단고기 집’으로 향했다. 이곳 역시 김일성이 먹어보고 최고의 식당으로 평했다는 곳으로 30년 이상 단고기를 전문으로하는 식당이라 했다.

단고기의 유래는 김일성이 말하길 ‘영양가도 좋고 맞도 좋은 민족의 고유 음식을 개고기라하면 되겠는가? 단고기라 함이 좋겠다’고 해 단고기로 불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감격이 벅차오르는 백두산

 

▲양각도 호텔의 47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평양은 어두웠다. 저 멀리 주체탑의 횃불만 눈에 들어올 뿐 대한민국의 그 어느 도시보다 어두웠다.

새벽 5시에 일어나 6시부터 아침 식사를 하고 백두산으로 가기 위해 순안공항으로 향했다. 아침의 평양거리는 출근하는 인민들의 모습으로 제법 북적였다.

순안 비행장에서 삼지연 공항까지는 약 1시간이 소요됐다. 삼지연 공항에서 미니 버스로 갈아타고 150리 길을 달렸다.

백두로 오를 수록 풀 한포기 없는 불모의 땅이 펼쳐졌고 백두산 아래 펼쳐진 망망한 삼림지대가 풍경화처럼 펼쳐졌다. 백두산은 이미 영하 10도를 기리키고 있었으며 새파란 하늘아래 위엄을 갖춘 오묘한 자태로 우리를 맞이 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가 천지가 있는 정상에 도착하자 새파란 하늘 아래 바람 한점 없는 청명한 날씨로 천지는 고요롭게 한반도의 정수리에 고여 있었다.

그 아래로 내려가 천지물에 손 담그고 한 모금 마시고 싶은 충동이 일었으나 북측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한참을 달려 백두산을 내려오다가 백두산 중턱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김일성이 항일 유격대를 이끌고 투쟁했다는 일영의 막사로 향했다.

그곳엔 김정일이 태어난 장소를 기념하는 정일봉이 있었고 당시 유격대의 생활상을 가늠할 수 있는 오두막과 총이 진열된 내무반 등이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저녁 6시쯤 백두산 아래 베개봉 호텔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은 후 호텔 광장으로 나왔다.

하늘에 수많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워 보였다. 싸늘한 기온과 울창한 숲, 쏟아져 내리는 별빛이 조화를 이뤄 평화로움이 가득 밀려왔다. 이곳이 북한이라는 생각이 든 것은 안내원이 가까이 다가와 감시 할 때였다.

-다시 평양으로

 

▲아침 9시. 삼지연 공항을 떠나기 전 주위를 둘러보았다. 망망한 고원지대. 침엽수림이 펼쳐진 산자락에 햇살이 내리쪼이고 이미 늦가을로 접어든 주변은 어깨에 겨울을 얹고 있었다.

저멀리 희끗한 백두산이 고개 숙여 ‘잘가라’며 인사하고 ‘다시만나자’고 손 흔들고 있었다.

고려항공을 타고 평양에 도착해 곧바로 간 곳은 장충성당이다. 이곳은 평화3000의 지원으로 5천여명의 평양 어린이들에게 줄 콩우유를 생산하는 공장이 있는 곳이다.

지난해 왔을 때는 콩우유가 생산돼 탑차에 실려 나가고 있었으나 어찌된 일인지 이번에는 공장 가동이 중단돼 있었다.

유일하게 평양시에서 교통법규를 무시하고 달릴 수 있는 차가 콩우유 배달 차인데 생산기계의 상태로 보아 한동안 가동이 중단된 것이 확실했다.

이에대한 이유와 영문을 관계자에게 따져 묻자 “식량난에 허덕이는 북한 당국이 지원금을 다른 곳에 돌린 것 같다”고 한탄했다.

확실히 규명돼야 할 사안이 아닐 수 없었다. 남쪽의 많은 관계자들이 콩우유를 지원하는 것은 어린이들의 영양을 위한 것이지 북한 정권의 이익을 위하거나 그들이 전용해도 좋다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콩우유 공장을 나와 그 유명한 ‘옥류관’으로 향했다. 오후 일정은 방문지가 혁명 사적지였고 그들의 사상 학습장이었다.

주체탑이 그러했고 조국통일 3대헌장 탑이 그러했다. 평양의 어디에서나 보이는 주체탑은 그 내부에 각국에서 김일성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세계에서 보낸 각종 글귀가 새겨 있었고 그곳에는 남측의 단체나 개인들이 보냈다는 문구도 여럿 눈에 띄었다.

주체사상의 근간이라고 부르짖는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고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논리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건만 위대한 진리인양 떠 받들며 호들갑을 떠는 그들의 의식에 광기와 맹목적성을 엿 볼 수 있었다.

-묘향산 그리고 자유대한으로의 귀환

 

▲평양시내 혁명사적지를 관람하고 양각도 호텔로 돌아와 답례 만찬을 끝낸 후 평양에서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조식을 마친 후 묘향산으로 가기위해 버스에 올랐다. 2시간정도가 소요되는 묘향산 행은 4차선 고속도로를 질주 했는데 넓은 도로에 오가는 차가 가뭄에 콩나듯 해 막힘 없이 달렸다.

2시간을 달려 묘향산에 도착했지만 정작 묘향산을 오르지는 못했다. 그곳에 간 이유는 묘향산 관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김일성과 김정일이 세계에서 받은 선물을 전시한 ‘국제친선 전람관’을 견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이 선물관은 화려한 요새로 돼있었으며 김일성 부자가 받은 선물은 총 185개국에서 22만2천522점이 전시 돼 있었다.

국제친선전람관 견학을 마치고 우리측 일행들의 ‘보현사’ 관람 요구에 못이겨 바로 옆에 위치한 보현사를 관람 후 향산 호텔로 향했다. 이 호텔에서 점심을 먹은 후 일행은 서울로의 귀환을 위해 2시간을 달려 순안 비행장으로 향했다.

출국수속을 마치고 오후 4시 순안비행장에 기다리고 있던 대한항공에 오르자 이내 숨쉬기가 편해졌다.

공항에서 북측 인사들과 이별의 악수를 하는데 낯익음 때문인지 그들의 눈빛에서 아쉬운 석별의 정을 느낄수 있었다.

“잘 가세요. 다음에 꼭 또 오시라요.”

순안 비행장을 이륙한지 1시간여만에 비행기는 김포 공항에 도착했다. 남으로 오는동안 줄곧 3박4일간의 북한 생활이 오래된 영화처럼 스쳐갔다.

화려한 서울의 경치를 내려다 보며 체제와 사상과 삶의 모습은 다르지만 분명 그들은 우리의 형제였고 보듬어 안아야할 민족임을 다시한번 깨달았다. 그러나 양측이 모두 소원하는 듯한 통일은 어쩌면 양측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의문 또한 들었다.

김포 공항에 내리면서 마음껏 자유의 심호흡을 하며 기원했다.

“조국이여! 역사 앞에 솔직하라. 대한민국이여! 너의 자유가 북에 넘치게 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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