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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단상] 엄청난 부자(富者)

‘가난한 부자’ 권정생 선생
어린애같은 심성 기억하며

 

세상을 살아가면서 느끼는 갈증(渴症)의 근본은 무엇일까?

돌아가신지 몇 년 지나 기억속에 아른거리는 그리운 사람의 이름을 오랜만에 환한 소식으로 다시 듣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권정생(權正生,2007년 작고) 선생.동화의 고전적(古典的)인 위치로 자리잡은 ‘몽실 언니’의 작가(作家)다.

억척같은 강인한 우리들 어머니의 전형(典型)인 몽실 언니는 당시로서 엄청난 50만부가 팔렸다.

따라서 드라마로 방송되었는데 나이든 사람들은 “맞아! 맞아! 그땐 그랬어.” 하면서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훔치기도 했다.

당시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은 임원회의 때 ‘몽실 언니’를 단골 화제로 삼아 회사 임원들이 저녁약속을 줄이고 TV 앞에 앉았다는 일화도 있다.

권 선생과 인연은 매우 까다롭게 시작됐다. 회사에서 거금 300만원의 드라마 원작료(原作料)와 정주영 회장의 격려금 200만원까지 총 500만원을 권 선생에게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필자는 당시 MBC 근무)

안동시 일직면 조탑동에서 교회의 종지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동리 입구에서 아동문학가 권정생씨를 찾으니,모두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사람이 누구?

100가구 정도의 작은 시골부락에서 TV 드라마 원작자를 모르고 있다니...없는 듯 살아가고 있었다.

교회옆에 쓰러져 가는 초가집(당시만 해도 대부분 슬레이트 지붕) 맷돌위에 뒤축이 뭉개지기 시작한 까만 고무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인기척이 없어 사람 사는 집 같지 않게 조용해 몇 번을 불렀더니,뼈만 남은 앙상한 중년이 고개를 빠끔히 내 밀었다. 참으로 어린애 같은 눈빛을 지녔다. 방문한 목적을 말하고 돈을 건넸더니만 원작료는 받지만, 정 회장이 주는 돈은 받을 수 없다고 단호히 거절하는 게 아닌가.

옥신각신하다가 200만원은 다시 가지고 왔다. 그 뒤 정 회장의 격려금을 현대에 돌려보내느라 행정적 처리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지... 결핵이 말기(4기)이기에 한사코 떨어져 앉으라고 했다.

방을 둘러보니 쌀 반포대나 될까?

이불 보따리 하나,책상,그리고 타구... 몸피 만큼이나 빈한(貧寒)했다.

차후에 서너번을 놀러 갔다.

심성(心性)이 착한 어린애였다.

“친하게 지내시는 분들은 누구신지?”

“봉화에 살고 계시는 전우익 선생과 시인 신경림씨”

며칠이 지나 전우익 선생을 찾아 갔다. 집은 텅 비어 있고 웬 노인이 종이 고깔모자를 쓰고 밭을 갈고 있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권정생 선생 소개로 왔다고 하니 “권 선생이? 사람 소개 할 분이 아닌데?”

그럴리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권 선생을 만났다는 자초지정을 말씀 드렸더니 “그 사람 괴롭히지 마세요.몸도 안 좋고 얼마 살지 못할 거예요.죽기 전에 자기 좋은 일 실컷 하도록 방해하지 마세요.”

간곡하면서도 거역하지 못할 부탁이었다.

권 선생에게 질문한 것 처럼 누구를 존경하냐고 물었니, 짜맞춘 듯 “권정생 선생과 신경림 시인”

세 사람은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사이였다.

김기한 선생님께,언놈 드림 이렇게 썼다.

내가 정색을 하고 군(君)으로 바꿔 달라고 요청을 하자,무슨 말씀 제게는 모든 이가 스승입니다.

언놈,호가 언놈이었다.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일꾼(놈)이란 뜻이다.

권정생 선생과 전우익 선생.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표현이 딱 들어 맞았다.

얼마전 권선생에 대한 기사가 났다.

제목이 ‘가난한 부자!’

도대체 어떻게 권 선생이 부자일까?

인세(印稅)로 받은 현금 10억원 정도의 통장을 남기고 유언장에 “내가 쓴 모든 책은 어린이들이 샀으니 어린이들에게 돌려 주는 게 마땅하다.”

이렇게 해서 권정생 어린이재단 설립 준비위원회가 구성됐다고 한다.

멀리서 보면 큰 사람도 가까이서 보면 소인(小人)이 있고,체구(體軀)가 작지만 알고 보면 대인(大人)이 있다. 가난한 것 처럼 살았지만,권정생은 엄청난 부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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