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크라테스가가 50대 후반쯤 되었을 때 자신이 가졌던 대화를 누군가에게 들려준다. 플라톤이 이 대화편을 완성한 시기도 50대 쯤으로 추측된다.
트라시마코스는 올바름은 ‘더 강한자의 편익’이라 규정한다. 글라우콘은 아데이만토스와 합세하여 올바름은 그 자체로는 기피할 성질이지만 그것이 가져다주는 보수나 평판 따위의 결과 때문에 사람들이 좋아하게 생각할 뿐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올바른 사람보다도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누리는 삶이 훨씬 더 행복함을 말한다. 이에 맞서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 도대체 무엇인지부터 밝히는 일에 착수한다.
그런데 올바름은 개인과 나라 전체는 물론, 큰 규모의 것도 있겠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름이 ‘편익이 되는 것’이란 점은 인정하나, 그게 강자의 편익일 수는 없다는 반론을 편다.
올바르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 올바르지 못하게 사는 것은 ‘잘못 사는 것’이라 설파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러니까 올바른 사람은 행복하되, 올바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오”라고 말한다.
고대부터 서양과 동양은 바르고 준법적인 소신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정조(正祖)는 스스로 ‘만천명월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호를 지었다. 캄캄한 밤에 달처럼 백성을 살피고 싶었다. 그가 한 신하에게 쓴 편지만 300통에 이르는 것으로 보아 세계사에 유례없는 어찰 통치의 증거로 볼 수 있다. 묘호가 정(正)인 것은 ‘올바름으로 백성과 함께 하겠다.’는 의미를 지닌다. 성품이 곧고 학문을 사랑한 정조의 인간적임을 알 수 있다.
올바름의 사전적 의미는 말이나 생각, 행동 따위가 이치나 규범에서 벗어남이 없는 것을 말한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은 인종·민족·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표현이기도 하다.
한국의 선비들은 올바름과 청빈을 생명처럼 여기면서 사회과정을 밟았다.
그런데 잇따른 공무원의 범죄행위에 이명박 대통령은 공직부패 척결을 100대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행정안전부가 금품비리 공무원에 대해 징계는 물론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수수 금액의 최대 5배까지 물게 하는 ‘징계부가금제’를 담은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을 서두르고 있다. 시시각각 정책수립에 열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그에 따른 정신과 철학을 함께 품으면 더욱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의 전통적 윤리는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연(緣)을 중심으로 윤리관계가 발달하였다. 또한 지성적인 판단보다 정(精)을 중심으로 엮어졌다. 수평적 질서보다는 지배·복종의 수직적 질서, 지배계급 위주의 윤리였다. 따라서 현대 정치와 행정은 공개주의와 견제·균형의 원리를 찾아야 한다.
다산 정약용은 일찍이 상류층이 바로 서지 않고는 나라의 질서가 제대로 잡히지 않는다고 외쳤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를 보면 발전 원동력은 엘리트들의 솔선수범정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전쟁이 일어나면 먼저 그들이 목숨을 바쳤다. 또한 저 혼자만 아무리 깨끗하고 윤리적으로 흠이 없더라도 하급관리들의 비행을 다스릴 수 없다면 목민관이 될 능력과 자격을 갖추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이 율곡은 올바른 공직사회에 합리화·능률화는 물론 제도개혁으로, 그 집행에 초점을 두었다.
첫째, 공정한 인사와 인재의 등용이었다. 그는 사람을 쓸 때나 승진을 시킬 때 어질고 재능이 있으면 그 소속을 불문하고 승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무사안일주의에 빠진 이도(吏道)의 쇄신이었다. 셋째, 행정의 안정과 전문화 추구를 들 수 있다.
다산의 깨끗한 마음을 강조한 목민관과 율곡의 제도적 차원에서 규제할 수 있는 공직윤리 개혁이 관건이다.
정부 정책결정권자가 밝은 눈으로 살피면 좋겠다. 떳떳하고 올바른 힘은 올바른 과정 속에서 탄생되고 축적된다. 그러려면 공직자는 모름지기 그 생각이 올발라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