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19 (토)

  • 흐림동두천 23.0℃
  • 흐림강릉 20.8℃
  • 서울 27.9℃
  • 구름많음대전 28.0℃
  • 흐림대구 27.6℃
  • 구름많음울산 25.5℃
  • 구름조금광주 28.6℃
  • 구름조금부산 28.2℃
  • 구름조금고창 28.4℃
  • 구름많음제주 29.8℃
  • 흐림강화 26.6℃
  • 구름많음보은 23.2℃
  • 구름많음금산 27.2℃
  • 구름많음강진군 29.6℃
  • 구름많음경주시 26.8℃
  • 맑음거제 28.6℃
기상청 제공

전쟁후, 뚝섬경마장 시대 열리다

1954년 5월 8일 완공…조랑말 경주로 시작

전국토를 폐허로 만든 한국전쟁은 마사회와 한국경마에도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신설동 서울경마장은 1951년 서울 재탈환 후 미공군의 비행장으로 징발됐고, 부산경마장은 해방 직후부터 미군 부산 기지사령부가 되었고 연지동에 신설한 부산 제2경마장도 전쟁 발발 직후 미군에게 징발됐다.

해방 후 유일하게 남아있던 대구경마장도 1950년 7월부터 미군이 주둔했고 경주목장은 건물과 토지를 UN군이 차지해버렸다. 군산경마장은 미군의 폭발사고로 건물이 소실된 채 방치되다가 인근 주민들이 무단 개간하여 농사를 짓는 바람에 농지로 탈바꿈했다. 경마사업이 유일한 사업소득인 마사회로서는 비빌 언덕조차 없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서울 수복 후 돌아온 마사회 임직원들은 비행장으로 징발된 신설동 경마장을 되찾으려고 노력했으나 가망이 없어 보이자 새로운 경마장의 건설을 모색하게 된다.

한국마사회는 경마장 이전을 목적으로 1930년대 조선경마구락부 시절, 이전을 목적으로 토지를 매수해 놓은 뚝섬 일대에 눈을 돌렸다. 새로운 경마장 건설만이 유일한 활로였던 마사회는 1953년 초부터 뚝섬경마장 건설을 추진, 53년 7월 28일 착공에 들어갔다. 이 날은 휴전협정이 맺어진 다음 날이었다.

마사회는 불용토지와 사택을 매각해 공사비를 마련했으나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린 끝에 1954년 5월 8일 완공하고 개장했다.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중단된 경마가 만 3년 11개월 만에 재개되는 순간이었다.

뚝섬 경마는 조랑말 경주로 시작했다. 당시 충분한 마필자원을 확보하지 못했던 마사회는 광주·목포·군산·평택 등지에서 몽고계 재래종마를 모아 겨우 경마를 시행할 수 있었다.

개장 초기 뚝섬 경마는 주말에 하루 12경주를 시행했으며, 주로는 모래와 초지가 섞여 있고 안쪽에 채소밭이 있었으며 관람대는 지붕에 미국제 맥주깡통을 이어붙인 허름한 모습이었다.

베팅은 패리뮤추얼 방식이었으나 토털리제이터(배당률 계산기)가 없어 경주 20분전에 마감을 하고 수많은 아가씨들이 주판으로 배당률을 산출해냈다. 대부분 경주마는 노쇠해 10세가 넘는 말들이 허다했고 어떤 경주에선 14세 마필이 3두나 출전하기도 했다.

대부분 조랑말 경주였으나 하루에 1경주 정도는 더러브렛 경주가 끼어 있었다. 뚝섬의 경마는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지금과 달리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