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1 (목)

  • 구름조금동두천 26.0℃
  • 맑음강릉 30.6℃
  • 구름조금서울 27.8℃
  • 맑음대전 27.3℃
  • 맑음대구 28.5℃
  • 맑음울산 27.1℃
  • 흐림광주 27.7℃
  • 맑음부산 27.4℃
  • 구름많음고창 27.9℃
  • 맑음제주 28.9℃
  • 구름조금강화 26.6℃
  • 맑음보은 25.9℃
  • 맑음금산 26.1℃
  • 맑음강진군 26.4℃
  • 맑음경주시 26.3℃
  • 맑음거제 27.2℃
기상청 제공

[특집] ‘과천향토사료전’ 11일까지

문화원·향토사硏 15년간 곳곳 찾아다니며 사진 수집
시대배경 1930~1970년 주종 ‘5060’세대 향수 자극
서울대공원 1984년 개관 100만 인파 몰려 인기 짐작
묻혀가는 선인들의 삶·전통문화 등 애향심 고

막걸리 한잔에 시름 날리는 농민… 일본군으로 강제징병 가는 청년…
빛바랜 사진 속 숨은 발자취


과거 70년대만 시흥군 과천면 당시만 해도 과천은 여느 농촌과 다를 바 없었다.

관악산과 청계산 아래 펼쳐진 들판엔 봄이면 모심기 일손이 바빴고 여름이면 가족들과 촌로들이 원두막에 오손도손모여 시원한 수박과 참외로 더위를 이겨냈다.

가을이면 풍년을 자축하는 풍물패가 동네를 휘돌아 쳤고 겨울 해질녘엔 아궁이에서 피어난 연기가 굴뚝을 타고 허공을 맴돌았다. 그러나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정부청사 대부분이 이전해오면서 불도저를 앞세운 개발에 땅은 요동쳤고 밤이면 정적이 감돌았던 마을은 수년간 굉음이 끊이지 않았다.

상아벌과 과천벌은 서울대공원과 서울경마공원이 차지했고 넓디넓은 들판은 고층아파트가 그 위용을 자랑했다.

당시 이 고장에 살았던 원주민은 7~8천 명이나 일부는 정든 고향을 등졌고 텃밭은 아니라도 과천 땅의 흙냄새만은 맡고 살겠다고 남은 사람들도 대부분이 타계했거나 중도에 외지로 떠나 원주민은 이제 2천명을 밑돌고 있다. 7만2천명이 채 못 되는 인구 중 과천의 옛 모습을 떠올리며 술안주거리로 삼는 사람은 이제 매년 사라져간다.

과천문화원과 그 산하단체인 과천향토사연구회가 이것이 못내 아쉬워 추진한 작업이 ‘과천향토사료전’이다. 이들은 과천의 옛 풍광과 그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자취를 붙들기 위해 집집마다 보물인 양 장롱 깊숙이 숨겨놓았던 빛바랜 사진들을 찾으려 쫓아다녔다.

이들의 숨은 노력은 1년에 딱 한번 세상 밖으로 나와 시민들이 접하는 기쁨을 안겼다.
<편집자 주>


 

지난 6일부터 오는 11일까지 시민회관 2층 전시실에서 열리는 사진전은 올해로 벌써 11째다.

문화원과 향토사연구회 가족들이 지난 15년간 어렵게 구한 옛 사진들은 매년 주제를 달리하며 시민을 찾아갔다.

1백점이 나온 올해 향토사료전 주제는 ‘사진으로 보는 과천사람’.

전시장을 찾은 시민들은 근현대를 힘겹게 오르면서도 그래도 웃음만은 잃지 않았던 그때 그 시절 인물들과 당시 옷차림, 풍습, 옛 과천모습을 되새겨보는 귀중한 자리임을 깨닫는데 그다지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알게 된다. 총 7부로 나눈 전시회는 ‘세월속의 그 인물’, ‘가족’, ‘어린 시절’, ‘일상생활’, ‘생업과 새마을운동’, ‘광창마을 부녀회’, ‘나들이’로 꾸몄다.

시대배경은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나 대부분 60~70년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강의영, 김귀성, 최완규 등 당시 시대를 살다 간 마을의 큰 어른들의 표정은 감히 범접이 어려울 만큼 위엄이 서려있고 일제말기 일본군으로 강제 징병되기 직전 연주대를 배경삼아 찍은 과천 청년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어둡다.

1973년 문원1리 주민 김필선 노인(당시 78세)이 가을깊이 갈이 대회에 나온 도중 배고픈 소에게 쇠죽을 먹이는 장면은 지금은 농촌에서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광경으로 너무도 정겨워 ‘5060’세대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세련된 옷맵시에 멋진 포즈가 돋보인 한 여성 뒤로 새마을회관이란 명칭 전에 사용했던 농민회관이 걸린 건물이 이색적이고 월남전에 참가했다 돌아온 삼부골 청년의 백그라운드에 등장한 돌담장과 초가집은 현대화의 물결에 사라진 우리네 농촌 선대들의 보금자리였다.

현 중앙동 구세군양로원이 40여 년 전엔 고종 측근으로 형조판서를 지낸 김규홍 대감의 99칸 기와집을 사용했다는 사실은 흥미롭고 올망졸망 모인 아이들과 시부모 며느리 등 대가족이 함께한 사진은 화목하고 따뜻한 정이 강물처럼 넘실거린다.

일제시대 과천공립학교(현 과천초교)의 조회 모습에서 6.25때 소실됐다는 부림헌을 발견하는 것은 정말 귀한 발견이었고 예나 지금이나 막걸리 한잔에 하루의 고단함과 시름을 달랬던 농민들의 얼굴에선 그래도 일순 행복이 스친다.

주변이 논과 밭으로 둘러싸인 막계리 외딴 농가 굴뚝에서 모락모락 피는 연기가 퍼져가는 풍경은 참으로 평화롭고 농사일 품앗이를 하고 얻은 고구마, 감자를 머리에 이고 귀가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선 손자들의 사랑이 바구니에 가득 담겨있다.

그리고 가족 끼리나 가을운동회, 새마을 현장이나 가족사진, 나들이, 늘 어께 동무하던 친구와의 한 컷에서 현대화의 거센 파고 앞에 당당히 맞선 그들의 기개가 엿볼 수 있다.

과천문화원 이영구(66)부원장은 57년 전 과천초교 동창들과 관악산 연주암에 소풍 온 사진을 보곤 감회에 젖기도 했다.

과천에서 가장 큰 들판인 상아벌 전경은 관람객들의 발길을 오래 붙들어놓았다.

70년대 어느 날 롱샷으로 잡은 이 사진은 가을추수가 끝난 들판 곳곳에 짚단을 쌓아올린 짚가리가 널려있고 갈무리에 들어간 농부와 여인의 손놀림이 바삐 돌아간다.

지금 이 벌판은 경마장과 서울대공원, 선바위 전철역이 들어서 세월의 무상 앞에 관람객들은 마음 한구석이 헛헛해진다.

개발의 거센 바람이 불어 닥친 1980년대 초 포클레인을 정면에 두고 막계리 집성촌 전체를 포착한 ‘서울대공원 공사 중’은 상징적 의미를 함축한 수준 높은 사진이었다.

1984년 5월1일 문을 연 서울대공원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1백만 명의 인파가 구름처럼 몰린 광경을 막계저수지 주변을 배경으로 공중에서 촬영한 사진은 당시 서울대공원의 인기를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

정경 사진 대부분은 현 과천문화원 최종수 원장이 발품을 팔아가며 찍은 것으로 후대에 귀중한 자료를 남겼다. 과천향토사연구회 이정찬 회장은 “과천은 자생적이 아닌 서울의 확대 연장선상에서 타의로 도시화가 이뤄져 과천의 원형과 선인들의 경제문화 활동의 맥이 제대로 보존되지 못했다”며 “전국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장기간 열리는 향토사료전은 그런 점에서 높이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최종수 원장은 “사료전은 묻혀 가는 과천역사와 선인들의 삶, 발자취, 전통문화가 배여 있다”며 “이것들을 통해 젊은이들이 배울 것은 배우고 애향심을 북돋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나타냈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