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31 (수)

  • 맑음동두천 27.7℃
  • 맑음강릉 33.2℃
  • 맑음서울 29.7℃
  • 맑음대전 30.5℃
  • 맑음대구 32.6℃
  • 맑음울산 31.1℃
  • 맑음광주 29.4℃
  • 맑음부산 28.9℃
  • 맑음고창 29.2℃
  • 맑음제주 30.1℃
  • 맑음강화 26.1℃
  • 맑음보은 27.6℃
  • 맑음금산 29.0℃
  • 맑음강진군 28.9℃
  • 맑음경주시 30.8℃
  • 맑음거제 27.7℃
기상청 제공

[특집] 서울경마공원 말총공예展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꼬리’ 내달 30일까지
갓일 강순자·붓장 김종춘 등 명품 55점 선봬
먹고 살려고 배운 기술 이제는 강한 자부심으로

 


한올한올 전통 잇는 ‘장인정신’ 놀랍구나~


말(馬)은 소(牛)와 함께 오랫동안 인류 겉에 머물며 많은 것을 선사한 유익한 동물이었다.
옛날 옛적 소가 농경시대에 없어선 안 될 주요한 농기구 역할을 했다면 말은 들판에서 병사와 생사고락을 같이했다.
문명의 발달로 이들은 맡은 소임을 끝내고 쓸쓸히 퇴장했지만 말은 아직도 승마나 경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조선시대부터 모든 계층의 사랑을 받아온 말총공예 역시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에도 굳건히 버텨 조상들의 현란한 솜씨를 오늘까지 이어오고 있다.  
기나 긴 세월 우리네 삶에 머물었던 말총공예의 전시회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꼬리’란 제목을 달고 서울경마공원 해피빌 복합문화공간 1층에서 열려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세인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권한다.
<편집자 주>

지난달 28일 서울경마공원은 몰려든 경마객들로 북적였다.

이들은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경주마들 움직임에 시선을 고정한 채 “좀 더 힘내”, “그래, 그대로 죽 가”를 외쳐댔다.

마권판매소가 지척인 전시장은 오픈 공간이라 그런지 이들의 함성이 공기의 흐름을 타고 아렴풋하게 들려왔다. 탄식과 환희가 출렁이는 그곳에 갓, 탕건, 총모자, 붓, 해금, 체 등 말총공예품들이 예쁘게 단장된 전시대 위에 은은한 조명을 받고 수줍은 듯 가만히 앉아 있거나 벽에 기대있었다.

휑하니 넓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으나 좁다는 생각도 들지 않은 전시장에 진열된 말총공예품은 모두 55점.

속인(俗人) 생각으로 별반 생계에 보탬이 되지 않을 상 싶은 작품에 온갖 정성을 쏟으며 매달리는 장인 정신이 전시장에 발을 딛는 순간 몸으로 전해져온다.

어려운 현실을 탄하지 않고 한 올 한 올 전통을 엮는 갓일 강순자, 붓장 김종춘, 말총체 백경현, 전통악기 해금, 아쟁의 조대석이 공동전시에 흔쾌히 응해 쳐다보기도 아까운 명품들을 내놓았다.

강순자(64) 명인 어머니는 전통 갓의 대표적 전승고장인 제주도 아낙이었다.

자식새끼 먹여 살리려고 손댄 갓일을 어릴 적부터 옆에서 지켜본 그녀의 인생이 어머니 길을 따라간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조선시대 양반의 상징물이었던 갓 만들기는 오랜 시간과 기술, 인내를 필요로 하는 작업이다.

질 좋은 대나무를 쪼개 실처럼 가늘게 길게 만든 줄사와 말총으로 엮는 일 자체가 고단의 연속으로 그는 이를 하늘이 준 일이라 여겨 매달린 끝에 지난 2009년 문화재청으로부터 총모자장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받은 영광을 누렸다.

우리나라 갓 만들기에 관한 한 최고 자리에 우뚝 선 장인이 내놓은 작품은 갓 다수와 탕건, 망건 외 전통공예에 현대적 디자인을 입힌 보라색 여성용 모자다.

씨줄과 날줄로 엮어진 말 꼬리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촘촘하고 정교해 조선시대 대감들이 타임머신을 타고 전시장을 찾는다면 군침깨나 흘릴 법하다.

울산시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김종춘(69)은 붓 하나에 50여년이란 장구한 세월을 걸었다.

뜻한바 있어 그 일에 뛰어들었느냐는 전화 인터뷰에 “어데요, 그 때는 묵고 살기 힘들어 부모가 끼니나 해결하라고 보냈다 아닙니꺼”란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왔다.

그는 붓 만드는 재료를 족제비 꼬리털로 만든 황모붓, 암노루 겨드랑이 털을 사용한 장액붓 등을 사용하나 산마필(山馬筆)에 유독 애착이 깊다.

마필 앞에 뫼 산자가 붙은 까닭은 털이 몽골 야생마만 가능한 때문으로 붓에 힘이 넘치고 큰 글씨에 유용해 애호가들은 꼭 이 붓만 찾는단다.

지름 6㎝ 길이 45㎝부터 지름 1.5㎝ 길이 25㎝까지 크기도 다양하지만 쓰임새에 따라 모양도 제각각이다.

장봉, 추사체용, 한글용 등등.

한글용은 사군자 중 죽(竹)을 칠 때도 쓰인다고 귀띔했다.

붓 한 자루 만드는데 150차례 손이 가는 힘든 가업을 딸이 잇고 있는 것을 은근히 대견스럽게 여겼다.

조대석(60) 장인이 내놓은 전통악기인 해금과 아쟁은 음악 문외한인 기자로서도 집안 장식품으로 하나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탐났다.

곧게 뻗어가다 끝 부분이 살짝 꺾인 줏대의 곡선, 대나무 뿌리로 만든 울림통에 새긴 무궁화, 삼족오 문양, 나무무늬가 살아 꿈틀대는 공명통.

그는 14살 되던 해 국악기를 제조하는 오촌당숙에게 입문했다.

그 어린 나이에 우아한 소리와 악기의 아름다운 자태에 반했다면 믿을런가.

국립국악고등학교 전통악기제작소 등 이력을 쌓아 1977년 33세 새파란 나이에 민속국악사란 공장을 세웠다.

제조기계래야 대패, 톱, 끌, 망치 등 재래식 도구로 전 공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해금에 말총이 쓰이는 부분은 오죽(烏竹)이나 해죽(海竹)으로 된 활대에 걸치는 활시위.

말총 활시위에 나오는 소리는 나일론이나 명주실 등 섬유에 비해 음색이 확연히 다르다.

조대석 장인은 “현악기 줄과 활시위 모두 섬유소재이면 미끈해 소리가 잘 나지 않고 조금만 써도 이내 끊어지나 말의 갈기나 꼬리털은 질긴데다 표면에 꺼칠꺼칠한 돌기가 있어 소리의 울림이 청아하면서도 그윽하게 퍼진다”고 했다.

아내가 배우는 전통공예 매듭을 옆에서 힐끔힐끔 눈 동냥하던 백경현(51)은 관련 서적을 뒤적이다 전통 체를 발견했다.

심플하면서도 과학적인 그 매력에 그만 푹 빠진 사내는 2001년 서울시 무형문화재 19호인 최성철 체장에게
간곡하게 배움을 청했다.

쳇바퀴 안에 원을 그린 채 좌정한 흑, 백, 하얀 색의 실루엣은 비단결처럼 고왔다.

또 흑, 백, 황색들이 두색이나 혹은 삼색이 가로 세로 교차하며 어울려 이룬 조화는 어느 미술품보다 멋스러움을 연출해냈다.

마치 삼베 같은 느낌을 주는 말총 발은 여름 한철 툇마루에 걸어두고 농주 한잔에 시나 한수 읊으면 제격이겠다 싶다.

차(茶)거름용 조롱박은 귀엽고 앙증맞아 좋은 찻잎 구해다 지인과 내려 먹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전통체에 옻칠을 해 실용성을 높였다는 백 체장은 쳇바퀴에 쓸 소나무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라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꼬리’는 오는 5월 30일까지 매주 금~일요일 열린다.






배너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