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어뢰 공격에 침몰한 천안함 사태는 1953년 6·25전쟁 종료 이후에도 끊임없이 되풀이 됐던 남북간 군사적 긴장 상황에 연속 이다. 북한의 무력 도발과 테러 공작이 불거질 때마다 한반도 정세는 급격히 요동쳤고,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일촉즉발의 전쟁 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에 북한의 도발사례를 뒤돌아 보며 정부의 대응반응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당포함 침몰사건=1967년 1월 19일 동해안 명태잡이 어선들의 월경을 막기 위해 경비근무중인 ‘당포함’을 북한 해안포대의 발포 공격을 받아 당포함 승무원 79명 가운데 3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을 당한 사건.
이에 정부는 침몰 사건의 책임을 두고 북한과 한국은 서로를 비난했고 북한은 한국 해군이 북한 영해에 진입했기 때문에 정당한 자위권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한국군은 북한 영해에 진입하지 않았다고 맞섰다. 정부는 이에 보복공격을 강행 하려 했지만, 작전권이 없던 정부는 공격을 중지한다. 이에 정부는 한 해 뒤인 1968년 우리 어선이 동해안에서 북위 38도 30분 이상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어로한계선을 설정됐다.
◆1·21사태=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31명 북한 무장 특수부대원들이 대통령 관저인 ‘청와대’ 기습하려 했던 사건. 정부는 이 사건 이후 남북한 간의 군사적 긴장관계를 이유로 국가안보 우선주의를 선언했다. 이후 노동조합 및 민주화운동 을 탄압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대한민국 예비군이 창설되는 계기가 되었다.
◆8·18 도끼만행 사건=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안에서 미루나무 작업치기를 작업을 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 군인의 도끼에 맞아 즉사한 사건. 이에한미 양국은 ‘데프콘2’(공격준비태세)가 발령했고, 미국에선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F-111 전투기 20대가 한반도로 급파, 전쟁 직전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북한이 김일성 주석 명의의 ‘유감성명’ 전달로 일단락됐다.
◆아웅산 묘역 폭탄테러사건=1983년 10월9일 미얀마(당시 버마)의 수도 양곤에 위치한 아웅산 묘역에서 북한 공작원이 미리 설치한 폭탄이 터져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던 각료와 수행원 등 17명이 순직하고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의 부상당한 북한의 폭탄 테러사건. 이 사건으로 미얀마와 서사모아 등의 국가들은 북한과 수교를 단절했다.
◆대한항공 858편 폭파사건=1987년 11월 29일 미얀마 안다만해역 상공에서 대한항공 보잉 707기는 북한 공작원 김승일과 김현희에 의해 공중 폭파되어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 폭파된 사건. 이에 정부는 대 북한 안보체제 강화와 선거방해 책동에 대한 엄단을 지시하였으며, 북한은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 등록됐다.
◆1994년 1차 핵위기 때 서울 불바다 발언 파문=1994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위협 직후 나온 서울 불바다 발언 등이 전쟁위기를 고조시켰다. 미국은 당시 북한의 핵시설이 있던 영변지역 공격 위해 군함 33척과 두척의 항공모함을 동해에 배치했지만 한국정부는 미국측에게 전쟁은 막아야 한다며 설득해 공격이 무산됐다. 이와함께 정부는 유엔 안보리 회의를 통한 대북지원과 교류중단 등의 경제원조를 중지 하였다.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1996년 강릉 지역에 북한 특수부대가 상어급 잠수함을 이용, 침투한 사건. 한국군에 의해서 생포 내지 사살로 소탕되었지만, 1990년대 민중들이 식량난을 겪던 북한에 대한 지원으로 화해분위기가 조성되던 남북한 관계가 급속히 냉각 되었다.
◆연평해전=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영해 침범사건을 계기로 해군과 북한간의 일어난 전투사건. 1999년 6월 15일 참수리급 고속정이 부딪쳐 막는 일명 ‘밀어내기 작전’으로 대응한 최초의 연평해전 이후, 2002년 6월 29일에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 전사 6명, 부상 18명 한편 북한의 피해는 약 30여명의 사상자를 발생하였다. 이후 정부는 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규칙을 소극적 대응에서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수정함.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건= 2008년 7월 11일 오전 4시50분쯤 금강산관광지구에서 관광객 박왕자(53·여)씨가 북한의 군사 경계지역을 침범하였다는 이유로 북한군에 의해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 정부는 북한의 공식 진상요구답변을 요청했으나, 북측은 답변을 거부했다. 이와함께 금강산 관광 전면 중단조치와 관광객을 받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천안함 침몰 사건=2010년 3월 26일 서해 백령도 남쪽 1.5 km 해상에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나 나머지 46명은 사망하였다. 한편 천안함 실종자 수색과정에서 UDT 대원인 한주호 해군준위가 작업 중 실신하여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순직하였다. 아와함께 천안함 수색을 참여했던 저인망어선 금양98호가 천안함 실종자 수색을 마치고 조업구역으로 복귀하던 중 서해 대청도 서쪽 55km 해상에서 침몰해 탑승 선원 9명 중 2명이 숨지고 7명이 실종됐다.
이에 정부는 민군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지난 5월 20일 조사단은 침몰 원인이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이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4일 대국민 담화문을 통해 “대한민국을 공격한 북한의 군사도발”로써 “북은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될것이며, 북한의 책임을 묻기 위해 북선박이 우리 해역, 해상 교통로 이용을 불가하고 남북간 교역을 중단하는 조처를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 침범시 즉각 자위권 발동, UN안전보장이사회 회부 및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의 책임을 요구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군 전력 및 한미 연합 방어태세를 한층 강화할 것이다라고 선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