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지방선거가 끝났다. 여당에 일격을 가한 야당연합의 일대승리로 막을 내렸다. 당 대 당 승리 여부를 떠나 시도지사의 선거공약을 통해 여성정책의 변화와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의 여성정책은 1945년 해방 후 미군정기에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해방 직후 남한의 미군정은 부녀국(보호과, 연락과, 아동과)을 설치하여 여성을 행정의 대상으로 보고 각종 사업을 실시하였다. 이 시기의 행정체계가 오늘날 가족을 포함한 여성정책 추진체계의 효시를 이룬다. 여성업무를 법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이다. 헌법은 여성과 남성의 평등을 보장한 최초의 문서인 것이다.
이후 6.25전쟁과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UN 등의 세계적 여성인권 보장, 평등정책, 성주류화 정책 등의 흐름과 발을 맞추어 한국의 여성정책도 발전과 변화를 거듭하였다.
급격한 산업화와 군사정부의 지속은 여성문제(특히 여성노동문제)를 사회구조적 모순의 하나로 보는 관점이 등장시켰다. 다시 말해 여성문제의 제기가 곧 민주화운동이었다.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전성기에 여성정책에 대한 획기적 변화의 움직임도 나타나 한국여성개발원(현재의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탄생하였다. 여성발전기본계획을 수립하였고, 남녀차별개선지침 등을 제정하였다. 소위 급진적 여성단체도 등장하여 각종 여성차별을 반대하고 평등을 확산하기 위한 법제정운동을 펼쳤다. 90년대에는 보수 여성단체와 연대하여 호주제 폐지운동과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에 많은 성과를 보였다. 참여정부에 들어와서는 성매매방지 등 섹슈얼리티 문제에 역점을 두기도 했다.
1995년 세계 여성대회가 북경에서 열렸고, UN은 성주류화정책을 각국에 권고하였다. 한국은 정무장과(제2)실, 대통령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여성부, 여성가족부 등 중앙부처의 여성정책 담당 행정부서를 설치하면서 세계적 요구에 부응하였다. 대체로 중앙과 지방에 여성정책담당기구가 확대되었고, 행정부문에서 여성업무가 확대되고 장관, 담당관 등 정책 결정직에 여성진출도 늘었다.
2008년 2월 출범한 이명박 정부는 ‘실용’정부를 표방하면서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보수적 입장을 취한 것으로 평가된다. 인수위 초기 여성가족부의 폐기를 제기했다가 반대에 부딪쳐 여성부로 축소 조정된 바 있고, 지난 3월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하였다. 특히 이명박 정부는 전반적으로 친서민적 생활 체감형 정책을 내세우고 있으나, 여성 정책에 있어서는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취업지원 정책이 눈에 띌 뿐이다.
이러한 현상은 6.2지방선거에도 반영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 선거라는 특징도 있으나, 서울, 경기도, 인천 등 수도권 시장과 지사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복지 공약이 주류를 이룬다. 후보들의 여성정책을 살펴보면 보육이 가장 중요한 공약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전 선거의 공약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여성 고위직 임명, 여성부서 확대, 여성단체 지원, 성주류화 정책 등 여성의 권한 척도와 관련된 공약이 많이 쇠퇴한 것으로 보인다. 남녀평등이 달성되어 여성차별을 주장할 수 있는 시대가 지난 것인지 다시 한번 따져보아야 할 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