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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농업경영인] ⑮ 화성 머쉬매니아 이 규 천 대표

주말에는 화성으로 떠나보자. 화성 서쪽 끝자락에 있는 매향리 방면으로 드라이브 하다보면 드넓게 펼쳐지는 서해 바다가 우선 시원하다. 또 시화방조제 길을 가다보면 궁평항이 보인다. 이곳에서 가족이나 친구 단위로 모여 회를 안주삼아 소주 한잔 진하게 나누면 삶의 여유와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순간적인 기분보다 더 깊은 인간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화성시 장안면 사랑2리에 있는 영농조합법인 머쉬매니아(www.mushmania.co.kr). 이규천(50) 대표이사가 지난 2002년부터 터를 잡은 곳이다.

그가 이곳에 온 사연은 소설로 써도 모자람이 없는 듯 했다. 이 대표는 영락없는 농사꾼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검붉은 구릿빛 피부가 그랬다. 이마엔 주름살이 조금 패였다. 그러나 그의 신체 지수는 30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우선 그는 부지런하다. 머쉬매니아에서 자라나는 느타리 버섯양은 하루에 1톤하고도 300kg이 더 된다. 가공할만한 생산력이다.

 

 


“느타리버섯, 내겐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

그는 화성 땅에서 자란 느타리버섯을 누구보다도 사랑한다. 자신의 밥줄이라서가 아니다. 그의 성공과 실패담을 들어보면 안다. 느타리버섯은 그를 살리기도 했고 죽이기도 했다. 처음 재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그렇다.

군 복무를 마친 20살 청년(이규천 대표)은 마땅히 할 게 없었다. 당시 그의 터전은 지금의 화성시 기산동 경기도농업기술원 터 바로 옆이다.

이 청년의 아버지는 자식에게 물려줄 게 농사지을 조그마한 땅 밖에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농장 절반을 빌려 우선 닥치는 대로 시도했다. 뭐든지 실험했다.

양계가 첫 번째 실험이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실패했다. 닭이 알을 품지 않고 자꾸 울어대다가 죽어갔다. 이유가 없었다. 다음으로 관상용 조류를 길렀다. 투자비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이것도 실패했다. 소비층이 없었기 때문이다.

86아시안 게임과 88올림픽 때로 거슬러 간다. 당시 우리는 누구나 마이카, 마이홈 시대를 선호했다. 이 대표도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도시민들의 기호와 성향을 간파했다. 관상조류는 이런 흐름에서 그가 고안해낸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성공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팔리지 않은 관상 조류를 죄다 폐기 처분 하거나 이웃에게 나눠줬다. 그에겐 절망만이 남는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가뭄의 단비 같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기산동에서 함께 지낸 선배가 버섯을 길러보자고 제안해 온 것. 20대 혈기왕성한 청춘에 실패가 계속되자 의기소침해 있던 그는 선배의 제안을 계기로 다시 재기에 나섰다. 당시 경기도농촌진흥원(현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화성군농촌지도소(현 화성시농업기술센터)의 도움이 컸다. 그가 버섯 재배 기술을 본격적으로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볕집을 이용한 느타리버섯으로 시작했다. 1992년에는 팽이버섯에도 손을 댔지만 아뿔사! 과욕이 화를 부른다는 속담, 딱 그 짝이다. 실패였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이 대표를 버리지 않았다. 3년 후인 1995년 그는 드디어 병 느타리버섯 재배를 시작했고 결과는 성공이다. 7전 8기 끝에 찾아온 기회였다.

그는 기산동 터를 팔았다. 병점 일대 도시화 바람으로 보상을 받아 그 동안 부채를 탕감하고 지금의 사랑2리로 왔다. 이곳은 버섯 재배의 낙원이다. 버섯이 알맞게 자라나도록 모든 환경이 맞춰졌다. 지금의 머쉬매니아는 모두 자동화 시설이다.

이듬해인 1996년 준공된 공장은 8천㎡ 부지에 시설 면적은 2천㎡다. 이곳에는 접종과 작업, 냉각실을 비롯해 배양, 생육실 등 첨단 시설로 자동화 생산체계를 갖추고 있다. 1일 생산 가능량은 1만1천여 병이다. 1톤이 넘는 양이다. 경기도권에서는 최고다.

그는 생산뿐만 아니라 판로에도 공을 들였다. 현재 전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와 농협 하나로 마트에서 머쉬매니아 브랜드의 느타리버섯을 살 수 있다.

또 이 대표는 학교에도 판로를 뚫어 G마크 인증을 달고 도내 학교 급식 재료로 이용되도록 하는 수완을 발휘했다.

놀라운 건 느타리버섯 수출도 이 대표가 주도한다는 점이다. 지난해 수출로 벌어들인 외화만 10만달러이다. 올해 목표는 100%올린 20만달러이다. 현재 수출 국가는 호주와 싱가포르, 하와이 등이다. 또 인도와 러시아에는 그의 느타리버섯 재배 기술이 전수되고 있다.

화성의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버섯을 주작목으로 해외 수출까지 하는 효자 농업인이다. 그런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이미 지난 2007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에 선정되는 영예를 누렸다.

겉으론 화려해도 이 대표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여자 문제가 아니다. 함께 동업한 버섯 농가들의 부채를 떠안은 것이다. 당시 네 농가가 힘을 합쳐 버섯 재배에 의기투합 했지만 다들 내 마음 같지 않았다. 그는 “당시 이자만 해도 1년 소득을 전부 농협에 주어야 겨우 현상 유지가 될 정도입니다”라며 아픈 기억을 끄집어냈다.

이 대표의 내일은 여전히 맑음이다. 물론 그 동안 숱한 시련을 겪었지만 그는 여전히 긍정형 미래를 품고 살고 있다. 아내 김정현(45)씨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역 체육회에서 만난 인연으로 부부로 살게 된 김 씨는 남편 이 대표를 이런 사람으로 정의했다.

“아내인 저와 사는 건지 느타리버섯과 사는 것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버섯에 애착이 강합니다. 그렇다고 섭섭하진 않아요. 이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고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아내와 사는 남자들 중에 부럽다고 느끼지 않을 자가 누가 있을까.

<영농조합법인 머쉬매니아: ☎(031)351-7515>

 

“전세계 어딜 가도 품질·맛 자신있어”

   
▲ 이 규 천 대표
-해외 수출로 벌어들이는 외화 액수를 올해 목표대비 100% 늘렸는데.
▲충분히 승산이 있다. 느타리 버섯만 나가는게 아니다. 팽이와 송이, 그 중에 느타리가 끼어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해외 소비자들이 우리 버섯 맛에 찬사를 보낸다. 느타리의 효능을 그 만큼 알고 있다는 말이다. 머쉬매니아에서 자라나는 버섯은 생명 그 자체다. 전 세계 어디를 가도 품질과 맛, 영양에는 자신이 있다.

 

-오늘날 20,30대 청년들에게 인생철학을 가르쳐준다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20대부터 실패를 거듭하다 보면 분명 나중에 가서는 성공의 길이 분명히 보인다. 또 운도 따라 줄 것이다. 좌충우돌하면서 단맛 쓴맛 다보며 성숙하는 게 20대라고 본다. 정말 농업에 생각이 있고 버섯 재배에 뜻이 있다면 찾아오라. 무엇이든 가르쳐 주겠다.

 

-국내 버섯 기술 재배 농가의 과제는 무엇인가.
▲일단 우리 버섯 재배 기술은 종주국인 일본과 비교해서 아직 한참 뒤쳐진다. 일본 견학을 간 일이 있다. 버섯 재배 시설의 겉은 우리와 차이가 없었지만 내부는 달랐다. 정말 견고하고 단단했다.
또 수백 년 간 이어져 온 버섯 재배 기술의 노하우가 그대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부분을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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