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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농업경영인] 18. 한아름 영농조합 이상엽 대표

 

오이지는 오이와 천일염을 일정 온도에 20일 간 숙성시켜 만든 장아찌의 일종이다. 지역별로도 장아찌의 종류가 다르다. 강원도 사람들은 오이지에 무까지 넣어 된장, 막장, 고추장에 버무려 장기간 보관해 먹는다. 이북 평안도는 오이를 끓는 물에 데쳐 소금물에 절였다가 말려서 된장이나 고추장 항아리에 넣는다.

그렇다면 경기도 사람들은 오이지를 어떻게 먹을까. 용인시 남사면 원암리에 있는 한 오이 시설 재배 농가 한아름 영농조합(대표 이상엽). 이곳은 용인에선 유일하게 오이지를 전남 신안에서 나는 천일염을 사용해 담그는 곳이란다.

오이지를 만드는 과정은 신기했다. 먼저 시설하우스 9천900㎡에서 자란 싱싱한 오이를 오이지 공장으로 가져 온다. 껍질 채로 겉만 간단히 손질된 오이는 천일염을 담은 대형 물통에 차곡차곡히 쌓여진다.

이후 18~20도 온도에서 20일 간 숙성 냉장 시설에서 보관된다. 20일 후 오이지를 비닐 포장 용기에 포장해 출고하면 끝이다.

맛을 보니 시지만 짭짤하면서도 씹히는 오이 맛이 상큼했다. 여름 철 입맛이 없거나 육류 등에 잘 어울릴 것 같았다. 또한 국수류를 먹을 때 단무지 대용으로 색소가 전혀 없어 인체에도 유익해 자연무공해 그대로 우리 몸에 좋다.

이곳 농장에서 생산되는 오이는 용인 지역 8개 농협 하나로마트에 납품된다고 한다. 15kg 기준 농협 납품가는 4만5천원, 가락시장에선 4만원 선에 거래된다. 요즘처럼 이상기온으로 수확량이 줄면 오이 가격은 7만원대로 뛴다. 이 같은 가격 경쟁력은 바로 캡오이 생산 농법에 있었다. 종전의 오이 농사 방법보다 연간 2천만 원 가까이 소득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곳은 가족 단위의 소규모 농장이다. 그러나 이런 오이지 제품을 일반 소비자들이 손쉽고 값싸게 집하장 개념의 공동조합에서 구매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추는 것이 꿈이라는 사나이가 있다. 이민희(30)씨가 장본인이다. 그는 이곳 한아름 영농조합 이상엽 대표(54)씨의 쌍둥이 아들 중 한명이다. 이 대표의 아들이 그와 함께 오이지 농사를 하게 된 사연을 들어봤다.

“원래 아버지(이상엽 대표)의 오이 농사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하지만 공대에 진학한 후 IT 분야의 열악한 상황과 비전이 없는 걸 깨닫고 중퇴 후 지난 2007년부터 아버지 일을 시작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흰 피부에 공부만 할 것 같은 착한 인상이지만 고무장갑을 끼고 오이를 다듬는 민희씨의 모습은 영락없는 영농 후계자의 그것이다.

원래 인터뷰하기로 했던 민희씨 아버지 이상엽 대표는 읍내 농촌지도자 임원회의에 참가해 아들인 민희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의 가업을 물러 받아 오이지가 수도권과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값싸고 편리하게 사먹을 수 있도록 많은 오이지 농가와 힘을 합쳐 공동의 집하장을 만들 것입니다”

올해로 3년차로 오이지 기술을 전수받아 농장 일을 해온 민희씨는 자신의 미래가 가족과 함께 일궈져온 현재 노력의 결과물인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 이상엽 대표를 이 세상 누구보다 존경한다.

“아버지가 지난 2006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으로 선정 됐는데 그 이전에 이미 지역 고아원에서 봉사와 지역 사회에 다양한 역할을 해왔다”며 “오이지를 팔기 전에 먼저 남과 이웃을 돌보는 마음과 정서부터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 자랑은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택시기사에서 시작해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모님의 부탁에 모든 걸 제쳐놓고 순종한 것이 시작이다.

그 후 민희씨 아버지 이 대표는 특별한 기술도 없이 고추 농사부터 오늘날 오이와 무에 이르기까지 기술력과 이론 학습에도 게을리 함 없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다는 게 아들이 본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은 건 바로 자기 분야에 대한 끝없는 투자다. 그는 “재래식 농사를 고집하지만 농장의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무인방제시스템 설치와 4단 변온장치로 연료비를 절감하려는 노력, 토양 미생물 연구와 제조사업으로 친환경 오이 생산의 밑거름이 된 점은 이 다음에 제가 농장에 농사를 직접 짖더라도 잊지 말아야 할 참 교훈이다”고 말했다.

부전자전이라고 했던가. 이상엽 대표의 아들 민희씨는 대학 공부를 중도에 포기하고 스무 살 중반에 진로를 수정해 농군의 길로 들어왔다. 이 대표 역시 젊은 날 방황을 끝내고 땅과 함께 생을 마감해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고난과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민희씨와의 대화가 끝날 무렵 이상엽 대표의 아내이자 민희씨의 어머니인 허인숙(52)씨가 뒤늦게 손님을 맞이했다.

오이지 냄새가 진동하는 한아름 농장에서 마시는 깊은 커피 맛과 향이 절묘하게 조합 돼 순간 이상엽 대표 가족에 대한 시샘이 생겼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요즘, 이 대표의 농장은 분명 평생직장이다. 다만 농사일이란 건 신체 건강하고 기술에 대한 노력이 뒤따라 주고 판로가 보장 될 때만이 지속가능한 업의 형태를 띤다.

그런 면에서 이 대표의 농장은 용인시를 넘어 경기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오이지 농장으로 지역 음식 문화를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고 생각된다.

이 대표는 부인 허인숙씨 사이에서 쌍둥이 아들을 뒀다. 민희씨는 자기와 꼭 닮은 형제가 있다. 일반 기업체에 다니는 형제는 처음부터 농사를 싫어했다. 그래도 이상엽 대표는 든든하다. 두 쌍둥이 아들이 일찍 장가를 들어 벌써 손자 손녀만 4명을 둔 할아버지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오늘의 주인공을 만나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 순간 바깥에서 트럭 소리에 문을 여닫는 인기척이 들렸다.

이 대표였다. 사실 이 대표 아들인 민희 씨를 통해 그에 대해 속속들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이 것 하나만은 궁금했다. 쌍둥이 아들들이 낳은 손주 가운데 어떤 녀석이 제일 정이 가는지를 말이다

“어느 하나 눈에 넣어도 안아프지요, 오이를 시작하면서 제 생애 가장 큰 보람이라면 아들과 아들 식구들이 정말 순리대로 효도하며 이웃에게 봉사하고 오이지를 나누며 베풀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한아름 영농조합: ☎(031)339-7791>

건강한 식탁문화 일조 다양한 봉사활동 뿌듯

- 지난 2006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에 선정됐는데 이후 변화가 있다면.

▲주변에서 많은 관심을 받는다. 오이지를 생산해 연 소득 2억원까지 올리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별히 나의 농장은 친환경 무농약으로 시설 현대화와 끊임 없는 투자를 통해 오이지와 무지, 오이지 고추 등을 통해 많은 수도권 시민들에게 건강한 식탁 문화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 쌍둥이 형제를 뒀는데 그 중 한명이 본인의 후계자를 자처했다. 기분은.

▲처음에는 걱정을 했다. 하지만 아들 녀석을 믿는다. 좋은 대학 나오고 취직이 안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차라리 자신이 하겠다는 분야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아 농사짓고 자립하도록 돕는 것이 아버지로서 역할이라고 생각된다. 무엇보다 든든하다. 나의 분신인 자식이 대를 잇겠다고 나서는 것 자체가 내가 삶을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든다.

- 그 동안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봉사를 해왔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요즘 농촌이 많이 어렵다. 그 말은 농민들 가운데에서도 생활고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다. 지역에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알아서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앞으로 자녀와 자녀의 자녀들과 함께 기회가 되면 자주 찾아서 위로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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