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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년 세월 오롯이 숨쉬는 역사의 땅

의정부의 문화유적

 

의정부시에는 선조들의 업적과 전통, 문화의 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사찰과 서원 등 문화유적지가 여러 곳에 분포돼 있다. 이곳 문화유적지의 얼과 전통에 대한 향유, 보존의 필요성에 따른 이해와 인식을 이번 기회를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한다.<편집자 주>

 


▲ 회룡사

도봉산 회룡골에 있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7호인 회룡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681)에 의상스님이 창건한 절로 의정부에서는 망월사 다음으로 오래됐다.

6.25 동란 때 완전히 불타 없어진 이후 대웅전, 약사전, 선실, 요사를 차례로 복원했으며 지난 1971년 큰 법당을 신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회룡사의 귀중품은 의상대사의 사리를 봉안했다는 5층 석탑과 식수저장용으로 쓰이는 석조가 있고, 신장상을 조각한 노주가 있다.

회룡사에는 태조와 관련한 전설이 내려온다. 1881년에 쓰인 회룡사 중창기에 따르면 왕자의 난을 계기로 함흥으로 옮겼던 태조가 아들 태종의 거듭된 간청에 한양으로 돌아오다 이곳에 있던 무학대사(無學大師)를 찾았고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다 절을 중창하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회룡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또 함흥에 있던 태조가 돌아오자 무학대사가 기뻐해 회룡사라고 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 망월사

의정부시 호원동 산 91번지에 위치한 망월사는 경기도 전통사찰 제8호로 지정된 사찰이다.

망월사는 자운봉과 만장봉, 선인봉과 주봉 등의 암 봉이 수려하고 빼어난 도봉산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서, 망월사로 오르는 길은 매표소에서 대원사, 원효사, 광법사를 차례로 돌아서 가는 코스가 있다.

망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에 해호 스님이 여왕의 명에 의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했다. 서라벌 월성을 향해 기원하는 뜻에서 망월사라 지칭됐다.

▲ 정문부 장군묘

의정부시 용현동 379-281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는 정문부장군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됐으며, 고려 말 충의공으로 문무를 겸비한 임진왜란의 명장이다.

그는 선조 때(1588)문과에 급제해 북평사가 됐다. 임진왜란 때 적에 항복하고 반란을 일으키자 의병대장이 돼 이붕수 등과 의병을 일으켰고 길주에서 적을 물리치는 전공을 세워 1597년 길주목사가 됐다. 1624년(인조2) 이괄의 난에 관계했다는 누명을 쓰고 고문을 당하다가 끝내 죽음을 맞이했고 그때 나이 60세였다. 그 후 숙종 때 무죄임이 밝혀져 좌찬성이란 높은 벼슬을 추증 받았다.

묘 앞 동남쪽 20미터 지점에 그의 신도비가 있는데 1665년 처음 세운 것을 1861년에 다시 새겨 세웠다. 신도비는 장군께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이끌고 왜적을 무찌른 이야기가 자세하게 기록돼 있다.

▲ 신숙주선생 묘

의정부시 고산동 산53-7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신숙주선생 묘는 경기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받았다.

신숙주묘는 의정부시 고산동 구성말에 있다. 무송군부인 윤 씨의 묘와 나란히 쌍분을 이루고 있으며, 묘 앞에는 묘비석, 상석, 문인상, 신도비, 한글창제사적비 등 각종 석물들이 있다. 그중 한글창제사적비는 최근에 건립한 것이다.

신숙주는 조선 초기의 학자이며, 정치가로서 자는 범웅, 호는 보한재, 회현당이고 공조 참판장 아들로 태어났다. 세종 때부터 성종에 이르기까지 여섯 임금을 충성으로 보필하고 특히 계유정란 이후부터는 조정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업적을 남겼다.

집현전의 수찬(修撰)을 지내다가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헌하고, 수양대군을 도와 계유정난에 참여해 정난공신 2등이 됐다. 세조가 즉위하자 예문관 대제학이 돼 고령군에 봉해졌고, 우의정과 좌의정을 지냈으며 1471년(예종 즉위년)에는 영의정에 재임됐다.

▲ 노강서원

의정부시 장암동 산146-1번지에 위치하고 있는 노강서원은 경기도 기념물 제41호로 지정돼 있다.

노강서원은 조선조 숙종 때의 문신 문열공 박태보를 모신 신당이다. 박태보는 1654년에 서계 박세당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24세 때에 문과에 장원급제하며 벼슬길에 올랐다. 1680년 홍문관 교리를 거쳐 이조좌랑, 암행어사, 파주목사 등을 지냈다. 나이 36세이던 1689년 인현왕후 민 씨의 폐위를 반대하다 혹독한 고문을 받고 전라도 진도로 귀향살이를 가던 도중 노량진에서 옥독(獄毒. 매 맞은독)으로 죽었다. 박태보는 학문과 문장에 능통하고 글씨도 뛰어나게 잘 섰다. 그가 죽은 뒤에 영의정으로 추증됐다.

원래 노강서원은 노량진에 있었고 1695년에 건립됐다. 1925년 큰 홍수로 한강 물이 넘치는 바람에 노강서원이 물에 떠내려갔다. 이후 1969년 그의 후손들에 의해 이곳에 새로 노강서원을 건립하고 1977년에 경기도 지방문화재로 지정받았다.

▲ 송산사지

의정부시 민락동 285번지 일원에 위치하고 있는 송산사지는 경기도 기념물 제42호로 지정 받았다.

고려 말 충신으로 새 왕조인 조선의 임금을 섬기기를 거부하고 은거해 여생을 마친 조견과 원선, 이중인과 김주, 김영남과 유천 등 6인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고려가 망하고 이씨 조선이 개국되자 조견과 정구, 원선은 ‘충신은 두 나라의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충절을 내세워 이성계의 끈질긴 권고를 끝내 물리치고 이곳 송산동 삼귀마을에 들어와 숨어 살았다. 조견의 호가 송산이기 때문에 송산동은 그의 호를 따서 지어진 이름이며, 조견과 정구, 원선 세분이 돌아왔고 해 삼귀마을이 됐다.

1804년 삼귀서사를 송산사로 고치고 조견과 원선 두 분만을 모셔 오다가 1811년에 이중인, 김주, 김양남, 유천 등 고려 말의 충신 네 분의 위패를 더 추가로 모시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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