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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농업경영인] 24. 파평농원 성도현 대표

여름내 땀방울 먹고자란 ‘황금빛 행복열매’

“나주 배는 10년 내로 다 사라지고 대신 이 땅(파주)에서 나는 파주배가 대세가 될 겁니다”

파주시 파평면 금파리에서 선조대대로 농사를 지어왔다는 성도현(57) 파평농원 대표를 만났다.

성글성글한 눈웃음이 매력인 성 대표는 경기도농업기술원과 파주시농업기술센터 등으로 구성된 일행의 방문을 진심으로 반겼다.

처음 기자와 만난 그는 한 눈에 기자임을 알아봤다고 한다. 어떻게 그렇게 봤을까. 수첩과 펜을 들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였다.

그는 “저희 농장에 오신 손님 등 외부인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배나무를 그냥 지나치듯 본다거나 조금 산만한 느낌이 들면 십중팔구 배와 관련이 없거든요”

언뜻 듣기에는 너무 단순했지만 그는 사람을 보면 풍기는 이미지를 봤다. 그리고 그 이미지를 통해 그 사람이 싫던 좋던 구분 없이 인격체로 봤다.

그가 지난 1992년부터 금파리에서 일궈온 배 밭은 풍성함 그 자체였다. 배는 아직 영글지 않았다. 그러나 곧 황금빛 피부를 드러낼 것이다. 피부 속에는 하얗고 달콤한 배가 속살을 숨긴 채 숨죽이고 있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다음 달 추석 무렵엔 벼와 함께 들판에는 여름 철 땀 흘린 열매의 결과가 나타날 것이다. 배는 이 중 단연 으뜸이다. 가장 알이 굵고 달다. 또한 수분도 많다.

이런 효자 과실은 단연 어른들에게 인기다. 치아가 약하거나 소화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배는 최고의 과일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배와 대척점에 있는 과일은 무엇일까. 성 대표는 단연 사과를 꼽는다.

“사과는 젊은 사람들이 즐겨 먹습니다. 하지만 배 만큼 매력적이지 않습니다. 사과 재배 농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배 만큼 유익한 과일은 없습니다”

그의 맹목적 배 예찬론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약간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질문을 해봤다. “배와 사과, 혹시나 시장에서 배의 인기가 떨어져 사과가 잘 팔린다면 그 땐 배 농사를 접고 사과 농사를 할 겁니까”

그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그의 시원스러운 대답에 나는 배에 대한 진념과 애착이 작지 않다는 걸 느꼈다.

파평농원에서 자라는 배는 사실 사연을 갖고 있다. 바로 성 대표 가족의 기관지염 때문이다. 선천성 기관지염을 앓아온 그는 어릴 때부터 배를 먹어야 만 했다. 일반 의약품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종합검진을 받았지만 현재까지 기관지 관련 질병은 더 이상 없다.

“기관지 때문에 저의 아버지, 아버지 때부터 배를 길러왔어요. 저부터 본격적으로 배를 재배했는데 자연에서 나는 풍성한 과실을 먹을 때면 몸에 있는 병도 다 나은 기분입니다”

걱정도 있다. 바로 자연의 재앙이다. 배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던 지난해부터 성 대표의 농장에도 온난화로 인한 피해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냉해와 잦은 강수로 인해 배 나무의 수확량은 많게는 50% 가까이 줄었다. 동해 피해를 비껴가지 않았다. 배 과실이 온전한 게 별로 없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배 재배를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했던 지난 1980년대를 생각하면 아직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당시 파주에선 배가 많이 생산되질 않았다. 집안 어른에게 배우는 배 재배 기술이 따로 있고 전문적인 배 재배 노하우를 지닌 전문가는 따로 있었던 것.

그래서 그는 인근의 배 농가 대표에게 찾아가 기술을 가르쳐 달라고 했지만 허사였다. 남 잘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근성 때문이라나.

“할 수 없이 평택까지 내려가서 배 농사를 짓는 전문가 3명을 파주로 초대했지요. 그 분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배 재배 기술을 모조리 전수 받았습니다”

지난 날 그의 배 재배 역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물려받은 땅은 있었지만 돈과 전문적 재배 기술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그 원동력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서 그가 일군 배 농원은 연간 45톤의 배를 생산한다. 해외로 수출까지 해서 얻은 수익만 11억 원이 된다. 이 같은 성공엔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다. 그는 배를 재배하기 전 이 땅에서 25년 간 양봉을 했다. 그러나 배 재배의 숙명은 그도 피할 수 없었다.

“농업으로 성공한다는 것이 돈을 벌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농업전문경영인이라면 응당 당당하게 얻은 이익을 다시 농촌에 환원하고 나눌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업 농촌이 인간다운 세상, 사람냄새 나는 세상을 실현하는 데 가장 큰 첨병입니다”

시골에서 평범하게 배 농사를 짓는 촌로치고는 거창한 철학을 가졌다고 빈정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 만큼 그의 삶은 성실성 그 자체다.

파주배의 역사를 잇기 위해 그는 지난 1992년 배연구회를 결성했다. 60여 농가가 회원이다. 그는 현재 경기도 배연구회 이사를 맡고 있다.

함께 인터뷰가 예정돼 있던 성 대표의 아내 윤화순(56)씨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읍내 병원에 몸이 좋지 않아 치료 받으러 갔다는 성 대표의 말을 믿어야 하겠지만 그래도 못내 아쉽다. 혹시나 그가 아내 속을 썩인 일은 없었는지. 그래도 농장이 오늘날처럼 이렇게 풍성한 비결은 무엇인지 말이다. 그런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타난다고 했던가.

아내 윤 씨가 겸연쩍게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의 배 사랑, 너무 넘치고 넘쳐서 문제입니다. 저는 아랑곳 않고 하루 종일 배밭에서 있는 걸 보면 때론 무심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배 있으니까 오늘날 우리 부부가 있는 거죠”

배 재배를 통해 건강과 웃음, 행복을 일구는 파평농원의 성 대표 부부. 나주배는 지고 파주배가 뜰 것이라는 이들 부부의 장담이 과연 현실이 될 지 관심 있게 지켜보련다. 파평농원 ☎031-958-3255

 

효율성 있는 농장 운영 年 생산량 100톤 목표

- 후계구도가 중요한데 어떻게 결정할 것인지.

▲ 아내와 슬하에 성찬(29), 성택(32) 등 두 아들을 뒀다. 이들은 모두 일찍이 결혼을 해 배 농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 두 아들에게 자신들의 꿈을 펼칠 곳은 이곳 배 밭이라고 말해준다. 두 아들 스스로 진로를 결정하겠지만 배 농장을 이어 받아 사이좋게 우애 넘칠 만큼 아껴주고 협력해 잘 이끌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 올해 작황이 좋지 않은데 대책은.

▲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라 속수무책이다. 이곳은 그래도 중부 산간으로 낮과 밤 일교차 커서 당도가 높아 배 재배 환경이 나쁘지 않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다르다. 하지만 포기 하지 않는다. 파주시농업기술센터와 함께 작황 실적 부진의 원인을 파악하고 공동으로 배연구회 차원에서 기후 변화 등 병해충 분야에서도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 앞으로 농장 운영 계획은.

▲ 배 재배 면적을 점차적으로 늘려서 연간 생산량 100톤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파평농장에 근무하는 분들의 복지를 항상 최우선적으로 생각해 이들에게 안전 보험을 들어주고 다른 농장보다 더 편안하게 근무하도록 배려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농장 운영도 점차 효율성이 높아져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파주배를 알릴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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