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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가는농업경영인] 35. 평택 ‘홍기양봉원’김홍기 대표

벌이 가진 무한가치 체험 꿀시장 확대 온힘 다한다

 

“꿀벌의 공익적 가치가 얼마인지 아십니까.”

평택시 팽성읍 송회리 266-2 ‘홍기양봉원’ 김홍기(57) 대표가 인터뷰 도중에 대뜸 이런 질문을 했다.

“글쎄요. 정부가 그런 통계까지 갖고 있을까요?”

이런 대답에 그는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손님맞이용 꿀 차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직까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 뜨거웠을 텐데 그는 무엇인가 답답한 거 같았다.

현재 농림수산식품부는 양봉 분야 업무를 축산과 통합해 보고 있다. 이는 광역, 기초 단체의 농업기술원도 마찬가지다. 그 만큼 법적으로 양봉 분야 농민들을 위한 규제만 있었지 법적으로 보호 장치가 전혀 없다는 말이다. 올초부터 낭충봉아부패병으로 꿀벌(토종벌) 집단 폐사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양봉 농민들은 보상 근거가 없고 자연재해로 인정조차 해주지 않는다는 정부의 무책임한 말에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정부의 양봉 정책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어졌다며 독설을 쏟아냈다. 산림청의 예를 들었다. 산림청이 1년에 나무나 국립공원 관리에 쏟는 혈세가 1천400억 원인데 꿀벌은 오히려 농민들에게 1천500억 원의 소득을 준다고 그는 주장했다.

“선진국을 가보세요. 꿀을 많이 생산하는 아카시아 나무를 아예 국유림으로 정해 정책적으로 심고 밀원(꽃피는 나무)수를 확대하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정부는 오히려 규제만 했지 전혀 양봉 농민들의 고충을 모릅니다.”

김 대표가 주장하는 내용이 십분 공감이 갔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는 꿀벌의 무궁무진한 잠재력과 유무형의 경제적 가치를 십분 체험한 사람이다. 문제는 시스템이다. 그에게 맞는 양봉 환경이 조성되는 시대가 곧 올 것이다.

김 대표는 “벌은 저에게 생명의 은인입니다. 벌이 없었으면 이미 전 죽은 목숨입니다. 벌침이 주는 항바이러스 등 이른바 항 효과는 우리 인체에 매우 유익합니다. 현대 의학이 해결할 수없는 걸 벌은 해결해 줍니다.”라며 꿀예찬론을 펼쳤다.

사실 그는 죽을 고비를 넘겼다. 벌이 없었으면 처음부터 좌절했을 것이다. 그는 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았다. 보통 사람에게는 무서운 벌이 그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럽다. 벌이 얼굴을 다 감싼다면 그 공포에 누구나 치를 떨것이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다르다. 그가 벌을 통해 기사회생 한 것은 지난 1970년대로 거슬러 간다. 당시 25살이던 청년 김 대표는 국내 굴지의 건설사에 입사, 20년 간 설계 감리 일을 도맡아 낮밤이 바뀌면서 생활했다.

안전이 최우선이라는 생각에 그는 개발주의 시대의 어두운 단면인 건설자본의 살을 찌우기 위해 자신의 몸을 혹사했다. 야근에, 술, 담배, 스트레스까지 그의 몸 마디마디 세포는 점점 빛이 바랬다. B형 감염과 췌장염, 위염까지 암 직전 상황까지 간 그는 어느 날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 입원했지만 당시 의사는 가망이 없다고 했다. 그러더니 주위의 친구가 모두 자신을 떠났다. 그렇게 믿었던 가족 역시 김 대표를 외면했다.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혈육의 정이 현실의 병 앞에서 얼마나 허약하고 위선적인지를 말이다. 형제와 부모가 떠난 그의 옆 자리는 아내가 남아 채웠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의 끈을 놓고 싶을 때 그에게 벌이 찾아왔다. 경남 밀양에서 양봉을 하는 사촌인 김세기(59)씨가 그를 산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두 달 동안 그는 하루에 수 백여 차례 벌침을 맞았다.

아프다는 것보다는 그저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로얄제리까지 병행해 몸에 적용해보니 효과가 나타났다. 벌이 그를 살린 것이다. 그러니 벌이 얼마나 소중하겠는가.

이를 계기로 김 대표는 양봉에 손을 댔다. 지금은 평택의 약산꿀을 전문으로 생산하고 판매하고 있다. 당시 1천만 원을 투자해 봉군 35군과 봉기구를 구입해 이동 양봉을 시작했다. 아내인 유애선(57)씨가 늘 함께했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오히려 그 때만 생각할 수록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커졌다.

그의 양봉 매장(평택-온양 간 45번 국도)에는 꿀과 화분, 프로폴리스, 로얄제리 등 다양한 봉산물을 판매하고 있다. 벌을 사랑하다 보니 그는 지난 2004년 국립 한경대에서 유밀가 다수확 봉군관리 관련 연구 논문까지 발표했다. 또한 3단계상 이용 체밀량을 높여 말벌 퇴치와 노제마병 예방, 가축질병진단 실내 노제마원충 진단 성과도 이뤄냈다.

이와 함께 매달 한 번씩 국회를 찾아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료 봉사를 해오고 있다. 농업인단체를 대상으로 양봉기술 무료 교육과 축산 농가에 벌을 무상으로 제공해 오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그는 이미 지난 2008년 경기도농업전문경영인으로 선정됐다. 약산꿀의 명성을 잇기 위해 그는 자식들에게 양봉을 권유했지만 모두들 반응이 없었다. 그래도 막내(32)아들을 믿었지만 그는 연예개로 데뷔해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래도 그는 약산꿀의 명성을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아내와 자신이 숨 쉴수 있는 그 날까지 벌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 나갈 것이다.

“벌이 이 지구상에 사라진다면 그건 재앙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양봉 정책을 정부가 재검토해 농민과 소비자가 윈윈 하도록 제도 개선을 해야 합니다.”

그는 지금도 내일도 싸워 나갈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도 그는 이미 이런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문의: 평택 홍기양봉원 ☎(031)692-1203

 

※인터뷰

고기능 꿀 생산 도 통합브랜드화 꿈

 

- 양봉 분야 대내외 활동이 많았는데.

 



▲ 3대 경기도양봉연구회 회장을 맡았다. 지역에선 평택시 양봉회를 조직했고 양봉영농조합을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또한 벌꿀 용기 연구 개발 보급에도 공을 들였다. 3단계상 이용기술 및 무료 봉침 시술에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특히 양봉회와 영농조합법인을 위한 기금 조성에도 헌신했다.

- 양봉을 운영하면서 세운 원칙은 무엇인가.

▲ 무엇보다 체계적인 봉군관리를 실천하고 있다. 적시에 질병을 예방하는 게 중요하다. 계절별로도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벌이 죽지 않는다. 또한 꿀벌이 좋아하도록 위생관리와 계절별 사양관리 연구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봉산물 생산 및 공급에 최선을 다하겠다.

- 향후 계획은 무엇인가.

▲ 약산꿀이 경기도 통합 브랜드화되는 것이다. 또한 유통체계를 확립해 시장성 강화에도 노력할 것이다. 이와 함께 현재 지역의 양봉 영농조합을 활성화 시켜 기술 교류와 시장 확대에 헌신하겠다. 특히 고 기능성 꿀을 생산하고 유통체계를 확대해 나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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