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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18세기 조선사회 변화의 목마름

강이천은 기회로 정조는 위기로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

백승종 글|푸른역사

408쪽|1만6천500원.

표암 강세황의 손자로 당대의 불량선비로 알려진 강이천(1768~1801)과 그의 재주를 아끼면서도 못마땅하게 여긴 국왕 정조(1752~1800)가 벌인 문화투쟁이다.

18세기 조선은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이었다. 이 책은 그 사람들의 열망과 좌절, 바램과 분투를 절실하게 그려냈다.

저자는 이런 시대상황을 두 인물의 정반대 쪽에서 바라봤다고 진단한다. 강이천은 새로운 기회의 시대로, 정조는 위기의 시대로 인식했다는 주장이다. 강이천은 ‘소북(小北)’을 대표하는 명가의 후예로서 당대 사회가 요구하던 성리학 공부에 매몰되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향한 이상을 키웠다.

그러나 정조는 지적인 면에서 18세기의 어떤 성리학자보다 탁월했다.

정조는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능통한 철인설에 정치군주였지만 그의 능력은 기성체제를 방어하는 쪽으로 활용됐다.

두 인물의 대립은 운명같았다. 강이천은 해적에 관한 유언비어 날조 및 유포죄로 체포돼 옥중에서 생을 마감한다.

강이천의 내면 세계가 여러 가지 불온한 사조로 뒤엉켜 있었다는 사실, 그것이 지배층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던 문제의 핵심이었다.

정조가 강이천으로 상징되는 불량한 선비들을 상대로 ‘문화투쟁’을 벌인 이유다. 미시사의 실천운동에 전념하고 있는 저자는 강이천 사건을 이렇게 결론 내린다. “오늘의 우리 현실은 강이천이 살던 그때와 너무 닮았다.” 새겨볼만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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