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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찾아 역사공부, 신나는 겨울방학 추억

도내 역사·문화유적지 소개

겨울방학이 돌아왔다. 추운 날씨 탓에 방안에서만 지내거나 스키장, 눈썰매장 등 즐길 것을 찾는 아이들이 많지만 방학 기간 아이들에게 좀 더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다면 우리 조상들의 지혜와 역사가 담긴 문화 유적지를 찾는 것은 어떨까.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구리 동구릉을 비롯해 향교, 선사, 객사 등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도내 역사·문화 유적지를 소개한다.

 

 



▲동구릉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구리시 인창동 산 2-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40기의 조선왕릉 중 9기가 모인 곳이다. 구리시 인창동에 있으며, 중국 사신이 ‘하늘이 만든 땅덩어리’라고 칭송한 명당 중의 명당이다. 1408년 태조 이성계가 승하하자 원평, 봉성, 행주 등의 길지가 왕릉 후보지에 올랐으나 결국 이곳이 채택됐다. 태조가 묻힌 건원릉은 공사에 참여한 군정만 6천명에 이를 정도로 대역사였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해두었다. 하지만 그의 뒤를 이은 태종은 부왕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신덕왕후와 태조의 능을 각기 다른 장소에 조성했다. 동구릉에는 건원릉 외에도 5대 문종과 현덕왕후의 능인 현릉, 14대 선조와 의인왕후·인목왕후의 능인 목릉, 18대 현종과 명성왕후의 능인 숭릉, 16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의 능인 휘릉, 20대 경종의 비인 단의왕후의 혜릉, 21대 영조와 정순왕후의 능인 원릉, 24대 헌종과 효현왕후·효정왕후의 능인 경릉, 그리고 순조의 세자 익종과 세자비 신정황후의 합장릉인 수릉 등이 있다.

▲고양향교(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306번지)

세종 10년(1428년) 건립되었으며, 지역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 중·고등 교육을 실시한 조선시대 이 지역 유일의 공립학교였다. 최초 건립 당시에는 관아가 있던 원당리 서삼릉터에 세워졌으나, 몇 번의 이전 끝에 1625년 현 위치인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에 자리 잡게 됐다. 고양향교는 지역 사회에 미치는 전통 교육기관의 중요성과 고양시민들의 학구열을 반영하듯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등 나라에 전란이 있을 때마다 소실됐다가 재건축되기를 거듭했다. 1985년 경기도 문화재 69호로 등록됐으며, 2005년 문화관광부 시범향교로 지정됐다. 향교를 거닐면서 명륜당에 모인 시민들이 맹자와 시경을 읽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석전대제, 분향례, 기로연, 성년례, 전통혼례 등 유교 문화 행사들을 참관해보자. 조상들의 얼이 뿜어내는 짙고 아름다운 향기가 느껴질 것이다.

▲흔암리선사유적(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산 2-1)

경기기념물 제 155호인 흔암리선사유적(欣巖里先史遺蹟)은 여주 흔암리에 위치한 유적건조물이다. 남한강 부근 해발 123m의 구릉 경사지에 형성되어 있는 선사 주거지로 한국 청동기시대의 대표적 유적으로 알려져 있다. 1962년 토기와 석기의 발견을 시작으로 1972년에서 1979년에 발굴해 구릉 동쪽에서 3기, 서쪽에서 11기 등 총 16기의 집터를 확인했다. 집터는 5×2.5m, 10×4.2m 등 다양한 크기의 규모로 알려졌으며 1977년 발굴된 12호 집터 주거바닥에서는 구멍무늬토기, 민무늬토기, 붉은간토기, 반달돌칼, 바퀴날도끼, 외날돌도끼, 돌살촉 등 다양한 유물이 발굴됐다. 토기 안에서는 탄화된 쌀, 겉보리, 수수, 조가 함께 발견되어 청동기시대에 이미 여러 곡식을 재배했음을 알려준다.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의 결과 기원전8세기에서 기원전 6세기 경인 청동기 전기에 해당하는 유적으로 추정되지만, 발굴된 유물 중 피홈식 돌칼은 유적의 실연대가 수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기한다고 한다.

▲팽성읍객사(평택시 팽성읍 객사리 117)

팽성읍객사는 평택시 팽성읍 객사리에 위치하며 조선시대 팽성현의 객사이다. 원래는 작은 규모였던 것을 현종(1659~1674)때 크게 중창하였고, 다시 영조 36년(1760)에 중수하고, 순조 1년(1801)에 또 다시 중수한 것이다. 현재는 대문간채와 본채가 남아있는데, 전체 9칸 가운데 3칸은 중대청이고 좌우에 동서헌이 각각 3칸씩이다. 중대청은 안에 왕을 상징하는 전패를 모시고 고을 수령이한달에 두 번 배례를 올리던 곳으로, 이곳은 굵은 원형 기둥에 초익공을 결구하고 지붕도 동서헌보다 높여건물의 격식을 높혔다. 동서헌은 다른 지방에서 온 관리들이 머물던 숙소로 사용되었다대문간채의 중앙에 1칸의 대문이 있는데 솟을 지붕으로 꾸몄다. 중대청과 대문의 지붕용마루 양끝에는 용두를 놓아 관리청으로서의 위엄을 나타냈다.팽성읍객사에 가려면 대중교통으로는 평택시내에서 안정리행 버스를 타고 객사리삼거리에서 내리면 된다. 정류장에서 도보로 1분 정도 걸린다.

▲궁집(남양주시 평내동 426-1)

남양주시 평내동에 위치한 궁집은 조선의 21대 왕인 영조의 딸 화길옹주의 시집이다. 막내 딸인 화길옹주를 지극히 사랑한 영조는 딸을 능성위 구민화에게 시집보내면서, 친히 왕가의 목재와 목수를 보내 신혼집을 지어주게 했다. 이 때문에 ‘궁집’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중요민속자료 제130호에 지정된 궁집은 18세기의 건축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목조기와집으로, 조선시대 전형적인 사대부가와 마찬가지로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로 구성돼 있다.

안채와 행랑채 사이에 두 칸짜리 중문을 만들어 자연스레 안채의 시선을 차단하는 등 남녀의 공간을 엄격하게 구분한 것이 특징. 화길옹주가 출가해 죽을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건축연대를 명확히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당시의 건축 기법, 양식을 추정할 수 있는 중요한 건축물로 꼽힌다. 눈에 띄는 것은 아름다운 조경이다. 뒤뜰에는 감나무와 앵두나무, 오동나무, 철쭉, 회양목, 호두나무 등이 자라고 뒷산은 밤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사시사철 수려한 경관을 자랑한다.

▲미륵당5층석탑(안성시 죽산면 매산리 366)

미륵당 내의 미륵불상 앞에서 위치한 석탑. 5층 석탑이지만 높이 1.9m로 아주 높은 규모는 아니다. 친근한 외모의 미륵불상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한 외양이다. 일반형 석탑으로 화강석의 각 부재가 질서정연하고 결이 짜임새 있게 구성돼 있다. 1단 위에 첫번 째 층만 몸돌이 있고 그 위에 4개의 옥개석이 올려져 있는 형태로 2~4층의 몸돌은 결실된 상태이다. 그래서 높이만 본다면 5층 석탑이란 이름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발굴의 과정을 거치면서 재건립되었으므로 현재의 위치가 원래 위치인지는 확실치 않다. 원래 모습을 잃고 높이가 낮아졌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겸양과 공존의 느낌을 자아내는 석탑이 됐다. 특히 낮은 담장을 배경으로 거대한 규모의 미륵불상과 어우러져있는 모습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미륵당의 고즈넉하고 여유로운 풍경은 마음의 평안을 가져다 주며 소박하고 수수한 석탑의 미덕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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