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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파워] 임은백 은백 꽃예술중앙회 우먼파워 회장

꽃속에 묻힌 35년의 세월 설치·조형예술 정상에 우뚝서다

 

㈔한국꽃곶이협회 총무이사로

꽃꽂이 발전에 기여

수원매향여고 총동문회장 맡아 지역사회 헌신에도 앞장

글 l 사진 안병현 편집장 abh@kgnews.co.kr

시 인 도종환은 ‘흔들리며 피는 꽃’에서 이렇게 표현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세상 그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꽃 을 인생에 빗대어 멋지게 노래한 시인은 꽃의 아름다움 이면에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꽃의 모습을 전하려고 한 걸까. 꽃과 더불어 한평생을 살면서 희노애락을 느껴봤음직한 장본인이 있어 만나봤다.



이른 새벽부터 흰 눈망울을 뿌리던 12월 17일 오후 수원시 팔달구 교동 64-2(중앙침례교회 맞은편) 건물 2층 은백 꽃예술중앙회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혜경궁홍씨의 풍채를 가진듯한 후덕한 인상의 임은백 회장(58)이 일손을 멈추고 반갑게 맞아준다.



-지난번에 들렀다가 문이 잠겨 있어 공쳤는데 다행입니다.

“예, 금요일은 하루종일 회원들과 사범들에 대한 꽃꽃이 교육이 진행됩니다. 연말이라 모두들 빠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꽃꽂이를 언제 시작했습니까.

“제가 23살인 1973년입니다. 매향여고를 다니던 시절에는 학교에서도 촉망받는 예술소녀로 통했습니다. 특히 그림, 수예 등에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서울 조선호텔에서 개최된 꽃꽂이 전시회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전시회를 보는 순간 황홀해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였어요. 당장 매향여고 스승인 유수자 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 꽃꽂이를 시작하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은 흔쾌히 승낙하시더군요”

-처음 입문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꽃꽂이를 시작하겠다는 각오를 하고 주위의 만류도 있었지만 다니던 공무원을 그만뒀습니다. 서울 남대문 근처에서 한 아주머니가 힘에 부칠 정도의 꽃더미를 안고 가는 모습이 측은해 같이 들어주게 되었어요. 그분이 바로 당시 우리나라 꽃꽂이의 본산인 금년회에 관여하던 분이셨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금연회에 들어가 꽃꽂이를 배우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임 회장의 꽃꽂이 인생이 시작된다. 임 회장은 금연회에서 피나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1977년 임 회장은 꽃꽂이 강사를 할 수 있는 사범자격이 주어지게 되고 수원시 조원동 친정집에서 꿈에 그리던 꽃꽂이 강습을 시작하게 된다.

당시 꽃꽂이에 대한 인기가 대단해 강습을 받으러오는 수강생들이 넘쳐났다. 그래서 임 회장은 1977년 은백 꽃예술중앙회를 설립해 회장을 맡으면서 수원시 교동 경기타자학원 건물을 임대해 본격적인 꽃꽂이 강습에 매진하게 된다. 1977년부터 현재까지 은백 꽃예술중앙회를 거쳐간 사람만도 1721명에 달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은백 꽃예술중앙회에서 배출된 사범 87명이 전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국 굴지의 꽃꽂이 단체로 성장한 것이다.

1992년에는 수원지역 꽃꽂이 관련 모임의 결성체인 수원시 꽃예술연합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1998년부터는 전국 182개회를 거느려 우리나라 꽃꽂이 단체의 총본산격인 사단법인 한국꽃꽂이협회 총무이사를 맡아 오면서 우리나라 꽃꽂이 발전에 기여해 오고 있다.

꽃꽂이 하면 꽃을 화병에 장식하는 정도의 지식만을 갖고 있는 필자로서는 꽃꽂이의 활용 정도가 궁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꽃꽂이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꽃은 감성을 순화시킵니다. 순화시키는 방식에 있어서 인간의 말로서 행동으로서가 아닌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꽃으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매력입니까.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꽃을 보고 아름답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꽃은 세계 공통의 언어이자 보편적인 삶의 한 방식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더욱 아름답게 하는 작업이 꽃꽂이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요즘 꽃꽂이는 단순하게 꽃을 장식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면서요.

“예, 꽃꽂이가 종전에는 아름답게 가꾸고 다듬는다는 소극적 활동범위에서 요즘에는 설치, 조형예술의 한 분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는 건물내 설치조형물로 인정을 하고 설치를 늘려가고 있습니다. 대학교 학부과정에 꽃과 관련한 학과 설치요구가 늘고 있는 것은 이같은 추세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임 회장님도 활동영역을 넓혀가고 계시다면서요.

“저도 숙명여자대학교 고위 디자인 지도자과정과 플라워아트스쿨 과정을 수료하는 등 학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꽃꽂이가 학문으로서 인정받고 예술로 승화할 수 있는 고유 영역을 간직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화성시 관내에서 주관하는 각종 원예스쿨에 강사로 초빙돼 강의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북수원 슬기샘도서관 등 주요 도서관이나 각종 행사 컨셉에 맞는 실내를 장식하는 일에 정열을 쏟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소화초등학교와 매향여중·고를 졸업한 임 회장은 방송통신대 일본학과를 나왔다. 임 회장은 매향여상 총동문회장을 6년동안 맡아 오다 얼마전 후배에게 불려줬다. 임 회장은 동문회장직을 물러나서도 모교 식당을 새롭게 건축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다. 예산이 드는 문제인 만큼 각계각층에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꽃꽂이 역사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의 ‘산림경제’에는 꽃꽂이에 관한 화병법, 삽병법, 변색법, 요수법 등의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꽃꽂이가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음을 풍속화, 탱화, 화훼화 및 병풍 등의 그림에서 엿볼 수 있다. 커다란 항아리에 꽂힌 연꽃과 산호가지의 조화, 도자기화병과 국화의 조화, 문방구류와 깃털, 괴목 등과 어울린 여러 종류의 꽃은 조선시대 사람들의 격조 높은 생활감각과 멋을 느끼게 해 준다.

1950년대 후반 차츰 생활의 여유와 정서를 되찾아 꽃꽂이가 다시 시작되려 했을 때, 일본의 꽃꽂이가 편입돼 발전하게 되었다.

60년대 초반부터는 꽃꽂이 연구가들의 개인전도 활발히 열렸고, 60년대 후반부터 꽃꽂이 역사연구가 행해지면서 꽃꽂이가 대중 속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70, 80년대는 우리나라 꽃꽂이 업계의 전성기였다고 한다면 2000년대는 꽃꽂이의 예술적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꽃꽂이가 시대를 거듭하면서 발전해 왔다는 증거다.

임 회장은 꽃과 더불어 35년을 살아왔다. 그는 2002년 월드컵 경기를 앞두고 열린 은백꽃예술중앙회 사범전에 고기굽는 석쇠위에 꽃을 장식한 작품을 내놓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발상의 전환과 끊임 없는 도전정신을 통해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임 회장은 ‘꽃꽂이는 꽃 예술’이라는 명제를 고착화 시키는데 앞장서 왔다.

끝으로 임 회장의 말을 들어보자. “꽃 예술 분야는 전통적인 취미와 장식의 수준을 넘어서서 새로운 생활환경을 조성하는 미적 예술분야로 전문성을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꽃을 사랑하고 또 꽃 예술을 통해 자신의 삶을 통찰해 나가는 모든 분들과 공감하는 발전의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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