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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보일’의 I dream a dream을 새기며

최영화(崔英花)는 트롯 무명가수다. ‘쪽지’, ‘세월아 네월아’, ‘애인이 되어 주세요’ 등 10여 곡의 레퍼토리가 있지만 아직 힛트곡이 없다. ‘얼굴 짱’, ‘노래 짱’, ‘몸매 짱’, 세 박자를 두루 갖추면 뭐하랴. 그 ‘한방’이 없어 ‘무명의 설움’을 안고 붉은 조명 아래서 노래를 부른다. 도대체 가수가 뭐길래…. 최영화는 행사 가수다. 서울, 대전, 부산, 광주, 대구, 수원, 강릉, 팔도를 뛴다. 먹고 살기 위해서다. 그래서 생업가수다. 나이 마흔, 불혹에 전업가수로 뛰어든 ‘늦깍이 가수’다. 오로지 꿈은 하나. 하루 아침에 뜬 무명의 테너 가수 ‘폴 포츠’처럼. ‘수잔 보일’처럼. 화려한 날개짓을 위해….

글ㅣ김동섭 문화부장 kds610721@kgnews.co.kr
사진ㅣ최영석기자 choi718@kgnews.co.kr

 

 

 

혹한이 몰아쳤던 지난 1월 18일 오후2시, 수원 장안문 로터리 조용한 3층 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팔등신이었다. 가슴이 패이고 꽉 조여진 얼룩무늬 원피스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밤 무대도 아닌데 의상이 다소 섹시한데요…” “아, 그런가요?, 인터뷰 사진 때문에 조금 신경썼어요.” 웃는 얼굴이 매우 순수해 보였다. 착한 인상이었다. 화장끼 때문에 다소 화려해 보일 뿐 그 내면과 성품은 따뜻한 여자 같았다. “잘 봐주세요” 그녀는 명함을 내밀면서 성원을 부탁했다. 그런데 명함이 특이했다.

 

 

앞뒷면 아랫 부분에 굵은 고딕체로 ‘Mobile 010-4759-2055’라고 쓰여 있었다. “본인의 핸드폰번호를 명함에 새겨넣은 가수는 첨 봅니다” 대다수의 가수가 자신의 핸드폰번호는 공란이다. 굳이 무명가수란 것을 스스로 PR할 필요가 뭐 있겠냐고 톡 쏘아붙였다. 걸작의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야 단 한 건의 행사라도 연결될 것 아니예요?” 이렇게 말하곤 그녀도 크게 웃는다. 노래가 전업이란 것을, ‘전면 승부’를 걸지 않으면 생계를 꾸려가기도, 이 업계에서 살아남기도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무명 가수’ 본능의 표현이었다.

“언제부터 가수를 꿈 꿨나요?”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갔다. “처음부터 얘기해도 되죠?.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어요, 언젠가 인기가수가 될 거니까요. 비록 지금은 무명이지만…” 그녀는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거일리. 평화스런 어촌 마을의 2남2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선주(船主)인 아버지와 동네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했던 어머니 덕분에 어렵지 않은 유년을 보냈다. 가수의 끼를 공개석상에서 첫 발휘한 것은 후포고교 시절. “고1 때로 기억해요. 음악시간에 ‘비목’을 불렀죠. 트롯으로 말이예요. 그랬더니 음악선생님이 다음 시간에 당장 오리지널 ‘트롯’을 준비해서 불러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녀 특유의 경상도 말투는 무척 애교스러웠다. 마치 그 때로 돌아간 듯 당시의 기억을 또렷이 끄집어냈다. 일주일 후 음악시간에 그녀는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과 술만 드시면 부르시는 아버지의 18번인 ‘나그네 설움’을 ‘꺾어’ 불러댔다. “음악선생님과 급우들이 책상을 치면서 배꼽이 빠지라 웃고 난리가 났죠. 그 격려의 갈채가 훗날 ‘가수의 길’로 몰아넣은 거죠. 아니 인도한 거죠.”

‘가수의 길’은 바로 이어지지 않았다.

지난 2003년 KBS1 ’전국노래자랑 동대문구 편’에 출연해 최우수상을 수상한데 이어 2004년 SBS ‘도전주부가요스타‘에서 가창상을 수상한다. 그녀의 고고한 침묵의 빗장이 열리는 인생반전의 무대였다. “‘아, 나도 이제 가수에 도전할 수 있구나’하는 희망의 빛을 보는 순간이었어요. 그 고교시절의 푸른 꿈을 20년의 세월이 훌쩍 넘은 이때 다시 훨훨 불타기 시작했어요. 굳은 다짐을 했어요. ‘톱가수가 되자’고 제 스스로 채찍을 했어요.”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하던가. 그녀에게 각계에서 지원과 성원이 봇물쳤다. 행사 섭외가 밀리고 고향 ‘울진’의 선후배들이 ‘최사모(최영화를 사랑하는 모임)’를 결성해 밀어줬다.

이런 기세에 힙입어 2007년 모 기획사에 소속돼 첫 CD 음반을 냈다. 타이틀 곡은 ‘당신은 내 사랑’. 유명한 김정만 선생의 곡인데도 어필되지 않았다. 소속사가 영세하고 개점휴업인 탓에 라디오 방송에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이런 걸 두고 ‘생후즉사(生後卽死)’라고 하던가. 기대만큼 실망이 컸다. 그 유명한 ‘장녹수(전미경)’, ‘정말 좋았네(주현미)’, ‘해바라기 꽃(전미경)’등 수많은 트롯 힛트곡을 낸 작곡가 박성훈의 ‘애인이 되어 주세요’란 노래도 뜨지 않았다. 방법이 없었다. 소속사를 탈퇴해 ‘홀로서기’를 감행했다. 이를 악물고 2년여간 행사에 부지런히 쫓아다니며 돈을 모았다.

 

 

이를 가엾게 여긴 고향 울진의 선후배들이 전폭적으로 밀어줬다. 드디어 지난 해 2집 앨범을 냈다. 타이틀 곡은 ‘쪽지’(정환 곡, 곽치근 사), ‘세월아 네월아’(김인철 곡, 나리 사). ‘내 사랑 울진’(노영준 곡, 유정 사), ‘사랑했는데’(김정만 곡사), 그리고 ‘애인이 되어 주세요’도 다시 편곡해 넣었다. 반응이 매우 좋았다. 여기저기서 와달라는 출연요청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마치 로켓이 발사돼 지구 중력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위한 단계라고나 할까. 2집 앨범 이후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그녀의 음색(音色)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최우수상과 가창상을 수상한 KBS 전국노래자랑과 SBS 전국주부가요스타에서 부른 노래가 ‘당신은 바보야’(이혜리 노래)다. 빠른 트롯인데 아주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그녀가 트롯 바탕에 민요풍이 ‘딱’이라고 추켜세운다. 가수 주현미처럼 ‘꺽기의 달인’이면서도 김세레나의 민요 음색을 갖췄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2집 앨범에서 ‘내 사랑 울진’이란 노래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키는 이유다. 간드러지면서도 꺽어 부르는 특유의 재주를 가졌다. 무대 매너는 톱가수를 뛰어 넘는다. 평소에는 지극히 얌전하고 숫기가 많지만 일단 무대에 올라서면 그 ‘끼’가 여지없이 발산된다. 오죽하면 ‘행사의 여왕’이란 칭호가 붙었을까. 훤칠한 키에 수려한 외모가 빛이 날 정도다. 궁금해서 물었다. “그 ‘끼’와 ‘목소리’를 누구한테 물려받았어요?” “두 분 모두예요. 어머니의 평생 꿈이 가수였어요. 장구를 치며 민요를 구성지게 불렀죠. 좋은 시대에 태어났다면 영락없이 가수가 됐을 거예요. 아버지 역시 한 잔 하시면 옛 노래를 불렀어요. 특히 고향 울진의 저의 집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해 바다가 훤히 보였어요. 실컷 세상이 떠나갈 듯 크게 소리치고 노래를 부를 수가 있었죠. 그 환경이 가수의 꿈을 더 키워준 것 같아요.”

그녀는 틈틈이 소외계층 ‘봉사 도우미’로 나선다. 직함도 있다. 수원시 바르게살기협의회 홍보대사다. 지난 2009년 선정돼 매월 한 두 차례씩 회원들과 함께 양로원과 요양원 등에 들러 어른들을 수발하고 노래봉사를 펼친다. 한국연예예술단 소속으로서도 교도소, 정신요양원에 정기적으로 들러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주고 트롯도 들려준다. 목소리만큼 얼굴만큼 마음씨도 예쁘다. 그녀에게 “어떤 꿈을 갖고 있냐”고 물었다. “전 국민들의 평생 잊혀지지 않는 힛트곡을 내고 싶어요. 국민 트롯가수가 되고 싶어요. 꼭 이루고 말 거예요. 늦깍이 무명가수도 ‘카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제가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어요.” 그녀는 매우 진취적이고 자신감에 가득찬 무명가수였다. 그러나 머잖아 화려하게 등극할 것 같았다. 마치 ‘수잔 보일’이 신인탄생에서 부른 ‘I dream a dream(나는 꿈을 꾸어요)’를 꿈꾸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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