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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댕기동자 한재훈 씨

“진정한 삶의 모델 제시하고파”

 

 

   
 
스물두 살까지 서당교육을 받고 검정고시를 거쳐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해 화제가 됐던 ‘지리산 댕기 동자’ 한재훈(41) 씨가 오는 24일 열리는 고려대 학위 수여식에서 박사학위를 받게됐다.

한씨는 일곱 살 때부터 전남 구례서당, 남원서당 등지에서 한학을 하다 1993년 상경한 한씨는 2년여 만에 중·고·대입 검정고시를 각각 차석, 수석, 차석으로 합격해 큰 화제를 모았었다.

1998년 고려대 철학과에 입학한 그는 댕기 머리에 흰 적삼 차림으로 입학식에 참석해 또 한 번 세간의 화제가 됐으며 ‘캠퍼스 명물’로 유명했다.

지난 17일 만난 한씨는 옥색 두루마기 차림에 상투를 틀어올린 머리엔 유건(儒巾)을 쓰고 있었다.

 

“보통 스무 살 즈음에 댕기를 풀고 상투를 올리는데 저는 한참 늦게 상투를 올렸어요. 대학교 1학년(27세) 마치고 그해 겨울에 관례(冠禮. 상투를 틀고 관모를 쓰는 의식)를 치렀어요.”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퇴계 예학사상 연구’(退溪 禮學思想 硏究).

퇴계의 예학사상을 박사학위 논문 주제로 본격적으로 다룬 것은 그가 처음이다. 석사학위도 퇴계의 심성론(心性論) 연구로 받았다.

한씨는 퇴계의 가장 큰 매력으로 ‘유연한 사고’를 꼽았다.

한씨는 “퇴계는 자신에게는 엄정했지만 학문과 수양, 인간관계 등에서는 자유롭고 넉넉한 모습을 보여줬으며 사고가 경직되지 않고 ‘말랑말랑’했다”고 말했다.

또 “조선이 개국과 함께 유학을 국시(國是)로 내세웠지만 학문적으로나 실질적으로 ‘성리학의 나라’로 거듭난 것은 퇴계 때부터라면서 “퇴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할 정도로 퇴계가 조선 성리학에 끼친 영향은 엄청나다”고 평가했다.

대학 입학 당시 “지금까지 배운 한학에 신학문을 접목시켜 정신세계를 넓히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던 한씨는 요즘 어릴 적부터 배워온 동양고전의 지혜를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파’하고 있다.

성공회대 교양학부 외래교수인 그는 학생들과 일반시민은 물론 노숙자, 재소자들에게 동양고전을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를 한 날에도 여주 교도소에서 재소자들에게 동양고전 강의를 했다.

“그분들에게 빵만 주어서는 만족감을 느끼게 할 수 없어요. 자존감을 회복해야 자립할 수 있는데 직업교육만으로는 자립이 안 돼요. 동양고전 등 인문학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무너져내린 자존감을 되찾게 한 다음 직업교육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동양고전에는 내면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어요.”

지난해 말 결혼한 한씨는 ‘자녀를 낳으면 서당 교육을 시킬 것이냐’는 질문에 “제가 어릴 때 공부했던 곳과 같은 서당은 지금은 찾기 어렵다”면서 “서당에서 공부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한학을 먼저 공부하고 그 바탕 위에 다른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한씨의 부친은 한양원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으로, 한씨 삼형제는 모두 정규 교육을 받지 않고 서당에서 한학을 했다.

한씨는 “‘왜 아이들을 무식하게 만들려 하냐’는 사람들의 말에도 아버지는 이 공부(한학)를 먼저 해야 하고 나머지는 그다음이라고 하셨다”면서 “대단히 현명했고 용기있는 선택이었다”고 했다.

서당에서 ‘세상’으로 나온 것을 후회하지 않느냐고 묻자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대학공부를)하긴 했는데 얻은 것이 있는 만큼 잃은 것도 있는 것 같다”고 답했다.

“서당에서 공부할 때는 ‘착한 생각’을 하면서 공부를 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서울에선 성적, 인간관계, 어느 시점 안에 공부를 해내야 한다는 압박감 등 서당에서 공부할 때와 달라서 힘들었어요. 하지만 얻은 것도 많아요. 서당에만 있었으면 그곳이 얼마나 고마운 곳인지 몰랐을 거에요. 서당 안에만 있었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도 많이 경험했고요. 또 계속 서당에 있었으면 이런 연구물(박사학위 논문)을 만들어내지 못했을 거에요.”

“부인을 얻은 것도 ‘소득’이 아니냐고 묻자 그는 "거기(시골) 있었으면 더 빨리 갔을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한씨는 지인의 소개로 컴퓨터 그래픽 학원 강사인 아내를 만났다.

그는 “아내가 제가 공부하는 내용은 물론 한자도 잘 모르지만 저라는 사람 자체를 믿어줘서 고맙다”고 했다.

앞으로의 포부를 묻자 “고전은 고전이 집필된 당시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고, 고전을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면서 “방향을 잃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동양철학을 통해 삶의 모델을 제시하고 싶다”고 밝혔다.

“사람들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모르지만 지금 이대로 계속 가면 안 된다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 것 같아요. 특히 교육이 방향을 잃으면서 ‘사람 잡는 교육’이 되어버렸어요. 예전만 해도 선진국을 따라가면 된다고 했는데 지금은 더 따라갈 것도 없어요. 우리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모델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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