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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꿈꾸던 조선 생생하게 파헤치다

이 책은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다뤘던 태종과 세종의 갈등, 한글 창제에 얽힌 비밀, 밀본으로 대표되는 왕과 사대부의 권력투쟁, 인간 세종의 다양한 면모와 그의 시대를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 세종 이후 만들어진 또 다른 조선의 모습을 역사적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세종의 나라’ 조선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저자는 드라마와 역사를 가로지르며 드라마가 남긴 수많은 질문의 답을 찾고, 못다 한 이야기의 공백을 꼼꼼하게 채워 넣는다.

역사적 맥락에서 사건과 인물들을 재배치할 때 드라마가 던진 수많은 질문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그에 대한 ‘지금, 여기’ 우리의 답변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태종의 조선 vs 세종의 조선, ‘무’(武)라는 단단한 껍질과 문(文)이라는 부드러운 속살을 가진 조선’을 만들겠다는 세종에게 태종은 “조선의 임금이란 자리는 그리 한가한 자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한다.

실제 태종이 상왕으로 건재했던 세종 집권 초 4년 동안 세종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왕’이었다.

아버지가 자신의 처가를 무자비하게 숙청할 때 세종은 하루도 빠짐없이 경연을 열면서 ‘민생의 고달픔과 임금 노릇하기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괴로운 심정을 내비쳤지만 단 한 번도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맞서지 못했다.

태종이 숨을 거둔 뒤에야 명실상부한 ‘조선의 왕’이 된 세종은,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는다. 태종이 왕도와 패도를 양날의 검으로 활용했다면 세종은 명분과 왕도로써 원하는 바를 성취하려 했다.

힘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도록 만드는 정치, 그것이 세종이 추구했던 방식이고, 정치였다.

“군주가 꽃이라면 뿌리는 재상”이라고 주장하는 밀본 수장 정기준에게 세종은 “사대부들도 견제받지 않는다면 결국 부패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조선의 실질적 설계자’인 정도전은 여러 가지 왕권 견제 장치를 제도화해 신권과 왕권이 균형을 이루는 나라를 만들고자 했으나 태종은 특유의 임기응변과 폭력적 권위로 정도전의 의도를 무력화시키며 강력한 왕권을 구축했다.

세종은 ‘지혜로운 사람은 한나절 만에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는’ 한글을 만들고 그 첫 작품 ‘용비어천가’의 서두에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정치 화두를 덧붙였다.

세종이 말한 뿌리는 무엇이며, 그 꽃과 열매는 무엇인가? 모두의 진심을 얻어내어, 모두를 오직 품고자 했던 세종의 역사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뿌리깊은 나무 해례본

이경민 글 | 소네트 | 276쪽 |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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