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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책사랑… 옥좌 뒤엔 ‘책가도’ 병풍이 있었다

 

■ 경기도박물관 책거리 특별전

‘책거리’(冊巨里)는 일거리, 이야깃거리처럼 책을 비롯해 여러 가지 물품을 그린 그림을 가리킨다. 여기서 ‘거리’는 복수형을 의미하는 우리말로 한자 ‘거리’(巨里)의 이두식 표기다. 책거리와 더불어 많이 사용하는 명칭으로는 책가도(冊架圖)가 있다. 책가도는 말 그대로 책가(冊架), 즉 서가와 같은 가구를 그린 그림이다. 즉, 책가도는 책가가 있는 그림을 말하지만, 책거리는 책가가 있든 없든 책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을 모두 포괄한다. 책거리가 책가도보다 상위의 개념이 된다. 또한 책가도나 책거리는 조선후기에 ‘문방(文房)’이라고도 불렀다. 책은 넓은 의미로 문방구에 속하기 때문이다.

책거리는 중국 청대의 장식장인 ‘다보격’(多寶格)이나 ‘다보각’(多寶閣)을 그린 그림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지만 조선후기 책거리의 유행은 정조(재위 1776~1800)와 관련이 깊다.
 

 

 

 

 

 


정조는 궁중 화원들에게 ‘책가(冊架)’와 ‘책거리(冊巨里)’를 그리게 했으며, 집무실인 창덕궁 선정전의 어좌 뒤에 오봉병 대신 책가도 병풍을 장식하고는 만족해했다는 일화가 각각 ‘내각일력’(內閣日曆)과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에 전해져 오고 있다. 조선시대 5백년은 유교와 문치주의 기풍이 성했으며 조선의 선비는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을 닦고 나라에 이바지하고자 했다. 책거리는 이러한 조선 선비의 취향을 잘 반영한 그림이었다.

조선후기에 책거리를 잘 그린 화원으로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김홍도(1745~1806이후)를 비롯해 다수의 화원이 알려져 있으나 현존 작품이 많이 남아 있는 이형록(1808~1871이후)의 책거리가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최근 경기도박물관 소장 장한종(1768~1815이후)의 책가도가 알려지면서 책거리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됐다.
 

 

 

 


이렇듯 우리에게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조선시대의 책거리와 현대 책거리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회가 열린다.

경기도박물관(관장 조유전)은 21일부터 6월 10일까지 ‘책거리 특별전: 조선 선비의 서재에서 현대인의 서재로’ 전을 연다.

한국민화학회(회장 정병모 경주대 교수)가 후원한 이번 전시회에는 국립고궁박물관과 국립민속박물관, 서울역사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가회박물관, 조선민화박물관 등 전국의 박물관과 개인 소장가, 작가 등 약 스무 곳에서 출품한 50여 점의 작품이 전시된다.

전시회는 모두 5부로 구성해 조선후기 책거리의 탄생과 민화 책거리로의 전개를 살펴보고 현대 작품에까지 이어지는 책거리의 전통을 통해 조선 사람들과 현대 한국인의 책 사랑 문화를 조명한다.

1부에서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인 책거리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적 배경으로 조선후기의 풍속화, 근대의 초상화와 사진 등에 남아 있는 조선 사람들의 문기(文氣)와 책 사랑을 조명한다.

또 2부에서는 궁중 책거리의 탄생 배경과 전개 과정을 조명한다.

정조가 창덕궁 규장각의 조직으로 ‘자비대령화원’이라는 궁중화원제도를 운영하며 그리게 했던 책거리를 살펴볼 수 있다.
 

 

 

 


 

현존하는 책거리 중 작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선배 화원격인 장한종의 ‘책가도’와 함께 국내·외에 가장 많은 책거리를 남긴 이형록의 작품 3점도 함께 전시된다.

이 밖에 창덕궁과 운현궁 등 왕실에서 사용했으리라 추정되는 궁중 책거리를 감상할 수 있다.

3부에서는 책거리에 반영된 조선 후기 상류층의 중국 취향을 조명한다.

조선후기 사대부들이 애호했던 화려한 책거리 그림에는 도자기·청동기·문방구 등이 책과 함께 진열돼 있다.

이 물건들은 당시 연경 사행에 동행했던 역관들이 북경의 골동품 시장인 유리창에서 수입한 중국제품이 주를 이룬다.

당시 한양의 광통교 주변 종로거리에서는 이러한 중국제 물건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거래됐다.

조선후기 사회에 일어난 중국 고동서화 수집 취향은 마치 17~18세기 유럽 사회에 열풍처럼 번졌던 ‘쉬누와즈리’ 현상과 같다.

당시 유럽에서는 중국 도자기나 가구 등을 수입해 집안과 정원을 꾸미는 것이 유행했고 이후 18세기 유럽의 회화, 건축, 정원 및 장식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더불어 4부에서는 민화 책거리에 반영된 미감을 조명한다.

궁중과 상류 지배층에서 사랑받던 책거리가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민화 책거리로 활발하게 그려지게 된다.

민화 책거리는 일반 민가의 크기를 반영해 궁중 책거리에 비해 크기가 작아지면서 책가가 사라지고 서안이나 경상이 등장한다.

수선화와 불수감, 석류 외에도 길상을 상징하는 매화, 연꽃, 모란, 국화, 수박, 복숭아, 참외, 가지, 오이 등과 학과 봉황, 용과 사슴 등 상서로운 동물들이 등장하는 것도 민화 책거리의 특징이다.

서양식 원근법과 투시법을 적용했던 궁중 책거리와 달리 민화 책거리는 역원근법과 비합리적인 표현을 구사했고, 이는 민화의 매력으로 느껴지는 점이기도 하다.

마직막 5부는 전통 책거리가 현대에 와서 어떻게 이어지고 재창조되는지 살펴본다.

전통적인 ‘임모’(臨模)에서 출발해 유화, 팝아트와 사진, 조각과 설치미술 등 다양한 장르로 나타나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민화 중에서도 책거리만 즐겨 그리는 정성옥, 책거리에 콜라쥬(화면(畵面)에 종이·머리털·나뭇잎 등을 오려 붙여, 보는 사람에게 이미지의 연쇄 반응을 일으키게 하는 미술) 기법을 활용한 김선정, 책가도와 기명도에 나타나는 정신을 절제된 미학으로 그리는 김광문, 현대의 물상과 오브제를 화려한 색감으로 그려 ‘팝아트 책거리’를 구사하는 김민수와 김지혜, 주제별로 쌓은 책을 그려 그 속에 담긴 정신을 전하고자 하는 서유라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또 환상적인 구도와 새로운 색감으로 서재를 그리는 홍경택과 오병재, 서재와 도서관을 사진으로 찍어 재작업하는 임수식과 나현, 돌 조각으로 책에 담긴 이야기를 담아내는 김근배와 박선영, 철과 레진 등 색다른 재료로 책을 표현하는 최은경 등의 작품이 출품돼 현대인의 서재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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