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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세계관을 바꾼 ‘곤여만국전도’
中華 벗어나 문화적 자의식 형성하다

 

■ 도 실학박물관‘곤여만국전도’ 복원

“땅의 모양을 네모나게 한 것은 측량을 편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땅의 본래 모습은 둥근 것이다.” -다산 정약용(1762-1836)

“이 지구 세계를 우주에다 비교한다면 미세한 먼지만큼도 안 되며, 저 중국을 지구 세계와 비교한다면 수십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담헌 홍대용(1731-1783)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둥근 하늘과 네모진 땅, 중국이 중심인 세계관을 바탕으로 조선은 하늘의 모습을 담은 ‘천상열차분야지도’와 함께 땅의 모습을 담은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만들었다. 1602년, 둥근 땅을 바탕으로 하는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가 만들어지기 전까지의 일이다. 실학자들의 ‘중국 중심의 세계관에서의 탈피’와 ‘세계를 향한 관심’을 상징하는 곤여만국전도는 1603년 조선에 처음 전해져, 1708년 당대 최고의 궁중화원들에 의해 ‘초고본’과 왕이 보는 ‘어람본’으로 필사됐다. 현재 초고본은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돼있으며, 어람본은 봉선사에 소장하던 중 1950년 소실됐다. 이에 경기도 실학박물관은 소실된 ‘곤여만국전도 어람본’을 남아있는 초고본과 흑백사진을 바탕으로 복원을 시도했고, 지난해 9월 성공했다. 그리고 이렇게 복원된 ‘신 곤여만국전도’는 오는 27일 60년만에 다시 봉선사로 돌아간다. ‘신 곤여만국전도’의 반환을 앞두고 곤여만국전도의 역사적 의미와 조상들의 발자취를 짚어봤다.

▲마테오 리치(Matteo Ricci)와 세계지도

이탈리아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는 1582년 선교를 위해 마카오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간다.

이마두(利瑪竇)라는 중국 이름을 쓴 마테오리치는 수학과 천문학 등을 중국인들에게 전해주며 1583년 중국 광둥 지역의 자오칭에서 선교를 시작한다.

1601년 베이징으로 간 그는 중국인 이지조와 함께 세계지도를 만들어 중국 너머에 다른 세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지구, 경위선, 회귀선의 개념과 함께 하늘의 1도가 땅의 250리에 해당된다는 것을 기준으로 만들어진 이 지도에는 지리 정보뿐만 아니라 우주에 대한 서양의 과학지식이 함께 투영돼있었다.

청에 볼모로 갔던 소현세자는 1645년 선교사 아담 샬로부터 서양식의 세계지도를 받아 조선에 들여오게 되는데, 이때 소현세자가 가지고 온 세계지도도 마테오 리치의 ‘곤여만국전도’로 추정된다.

그리고 다시 이 지도는 사신을 통해 1603년(선조 36) 조선에 공식적으로 들어오고, 조선은 이를 바탕으로 1708년(숙종 34) 서양의 배와 여러 나라, 동물들을 생생하게 그리고 채색한 조선만의 세계지도를 만들었다. 이것이 ‘곤여만국전도’다.

마테오 리치의 지도 원본은 “검은 튜울립처럼 값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희귀하다”는 의미로 ‘Impossible Black Tulip of Cartography’라고도 불리는데, 지난 2009년 미국 미네소타대학 제임스 포드벨 연구소는 100만 달러를 주고 마테오 리치가 1602년에 중국 베이징에서 만든 ‘곤여만국전도’를 구입한 바 있다.
 

 

 

 

 

 


▲‘곤여만국전도’의 상징성

곤여만국전도 이전 조선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과 “모든 세계는 중국의 영향아래 있다”는 ‘직방(職方)’의 세계관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곤여만국전도’를 본 조선 지식인들은 중국 너머에 더 넓은 세계가 있고, 중국은 그중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도에 표현된 5개대륙과 수많은 나라들은 실학자를 비롯한 조선 지식인들의 호기심을 자극시켰으며, 학문과 사상에 밑거름이 됐다.

사실상 실학 탄생의 외적인 부싯돌의 역할을 ‘곤여만국전도’가 한 것이다.

이후 조선에선 점차 서양에 대한 막연해던 지식도 점차 구체적이 됐으며, 과학지식도 체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18세기가 지나선 지구가 둥글다는 지원설은 무너졌고, 중국 중심의 사고도 사라져 조선의 자주적인 가치관이 퍼졌다.

특히 국가가 직접나서 ‘곤여만국전도’의 필사를 지시하고 적극적으로 우주와 지리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얻으려했다는 점은 조선 사회의 개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초고본과 어람본, 그리고 복원

조선 왕실은 마테오 리치의 지도를 바탕으로 궁중화원들을 동원, 직접 손으로 그린 회화식 지도 ‘곤여만국전도’ 초고본과 어람본을 제작했다.

1708년 8월에 만들어진 초고본은 현재 서울대학교 박물관(보물 제 849호)와 오사카 남만문화원에 각각 소장돼있다.

초고본보다 한달 늦게 만들어진 어람본은 국왕이 보기 위해 특별히 만든 것으로 초고본보다 훨씬 화려하고 생생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왕실사찰인 봉선사에 소장됐지만, 한국전쟁 때 사라져 지금은 사진으로만 남아있다.

역사속에 묻혀 있던 ‘곤여만국전도’는 서울대학교 정기준 교수와 송영배 교수를 통해 다시 조명을 받게 된다.

본격적으로 ‘곤여만국전도’를 판독하고자 마음을 먹은 정기준 교수는 당시 규장각에 있던 사진자료와 박물관에 소장된 실물의 사본을 비교해 각각이 다른 지도라는 것과, 일본에 있는 또다른 모사본을 통해 규장각에 있던 흑백사진이 소실된 봉선사 어람본의 사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이에 봉선사본의 사진을 소장하고 있는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이를 디지털로 전환해 병풍으로 제작했고, 실학박물관에서는 이를 바탕으로 마모된 글씨의 복원과 함께 채색을 더해 원형에 가깝게 복원했다.

부분적으로 마모된 글씨는 일본 교토대학과 미국 미네소타대학에 소장돼 있는 1602년 북경판 ‘곤여만국전도’를 참조했고, 채색에는 서울대박물관의 보물본을 참고했다.

결국 이러한 노력들이 모여 지난 해 9월 소실된 봉선사의 ‘곤여만국전도 어람본’의 실물에 가장 가까운 ‘신 곤여만국전도’가 만들어졌고, 현재 경기도 실학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 일본이 만든 최초의 서구식 세계지도인 만국총도. 1645년 시모노 세키에서 목판본으로 만들어졌다.

 


▲‘곤여만국전도’ 복원의 의미

경기도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곤여만국전도’는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세계관을 변화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번 복원을 통해 학계의 관심과 함께 숨겨져 있던 문화유산의 가치를 다시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다.

선조들의 세계를 향한 관심과 정보, 문화적 개방성을 알 수 있는 ‘곤여만국전도’를 통해 세계와 호흡하고 문화적 자의식을 형성해 나간 조선후기 지식인들의 실학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한 디지털 방식으로 복원된 지도는 회화체, 천문도 등 그동안 연구되지 않았던 부분의 잃어버린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동물들이 그려진 그림체에 나타난 화법의 특징 등 앞으로 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다뤄져야 할 부분이 복원을 통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복원된 ‘곤여만국전도’는 오는 27일 오전 11시 30분, 기증식과 함께 원 소장지인 남양주 봉선사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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