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셔츠가 걸려 있다
겨드랑이와 팔 안굽이 심하게 구겨져 있다
바람과 구름이 비집고 들어가도
잔뜩 찡그리고 있다
작은 박새도 도로 날아 나온다
저 옷을 벗어놓은 몸은
오늘 밤을 자고 나도 팔이 아프겠다
악착같이 당기고 밀치고 들고 내려놓았을
물건들, 물건 같은 당신들,
벽에 셔츠가 비뚜름히 걸려 있다
오래 쥐고 다닌 약봉지처럼 구겨진 윤곽들,
內心에 무언가 있었을,
內心으론 더 많은 구김이 졌을
구김의 정도에 따라 하루의 성과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셔츠의 구김살. 매일 입고 벗어 놓는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현대’라는 셔츠는 구겨질 수밖에 없다. 셔츠의 구김살보다 더 구김이 가는 몸의 구겨짐. 그보다 더 뚜렷한 윤곽으로 남는 마음의 구김에서 생기는 상처들. ‘현대’라는 증후군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모두는 오늘과 다른 푸른 내일이 있기에 아침마다 구김살을 편 새 셔츠를 입는 것이다. /권오영 시인
-문태준 시집 ‘그늘의 발달’ /2008년 / 문학과 지성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