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A씨(27·여)는 2개월의 수습기간을 거쳐 정규직으로 임용됐다. 사장은 A씨에게 일을 가르쳐준다는 명목으로 자주 옆에 앉아 상습적으로 어깨를 주무르거나 허벅지를 만졌다. 심지어는 속옷 디자인 사진을 보여주며 “저런 팬티는 네가 입어야 잘 어울릴 것 같다”는 말도 들었다. 회식 자리에선 더 심해져서 사장은 A씨를 껴안거나 뽀뽀를 하기도 했다. A씨는 사장의 성희롱을 거부도 했고 불쾌하다는 의사도 표시했지만 상습적인 성희롱은 끊이지 않았다.
A씨처럼 직장에서 일어난 성희롱은 지난해 264건이었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제17회 여성주간(1∼7일)을 맞아 전국 9개 평등의전화 상담소에 접수된 통계를 취합한 결과다.
성희롱은 미혼(56.4%), 그리고 입사한 지 1년 미만(54.7%)인 직원이 가장 많이 당했고, 특히 30인 미만의 소규모 사업장(68.2%)에서 사무종사자(47%)에게 주로 발생했다.
가해자는 상사(54.5%)나 사장(33.3%) 순으로 많았다. 특히 가해자 가운데 사장의 비율이 2009년(21%)에 비해 12.3%포인트나 높아졌다.
성희롱 상담을 위해 상담실을 찾은 여성의 41.7%는 이미 퇴사를 한 상태였다. 재직 중 성희롱을 문제시할 경우 부당해고와 같은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퇴직 후 상담을 요청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여성노동자회는 “직장 내 성희롱은 업무와 관련해 발생하므로 산업재해로 인정받을 수 있으나 절차가 복잡하고 기준이 모호해 실제 산재로 인정받긴 어렵다”며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