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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의정부 ‘의순공주’

 

의정부시와 의정부문화원의 문화원형은 ‘의순공주’다.

이에 의정부시와 의정부문화원은 문화원형인 ‘의순공주’를 경기도문화테마발굴프로젝트로 선정, 지난 2009년부터 우리나라를 관통하는 상징적 문화소스를 발굴했다.

특히 문화원은 문화원형을 살리는 프로젝트를 기획해 잘 알려지지 않은 문화원형들을 착는 작업을 하던 중 세계 어느 테마에도 뒤지지 않을 보석같은 소스를 찾아낸 것이 바로 ‘의순공주’다.

‘의순공주’라는 문화원형을 무엇으로 개발해낼 것인가 고심한 끝에, ‘의순공주’와 가장 어울리면서도 현재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에 대중성의 맹위를 떨치고 있는 ‘뮤지컬’로 제작하기로 했다.

‘의순공주’는 ‘명성황후’나 ‘정조대왕’에 절대 뒤지지 않는 테마다.

명성황후, 정조대왕은 역사적 테마로서의 감동을 줄 뿐이지만, ‘의순공주’는 어느 시대에건 어느 나라에서건 감동을 주는, 시공(時空)을 초월한 테마기 때문이다.

과거 ‘의순공주’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재창조해 스토리텔링화를 거쳐, 언제 어디에서도 환영받는 뮤지컬로 부활시켰다.

이와 함께 문화원은 의정부 문화 소스로 미래지향적 의정부 문화 제품을 만들어냈다.

미래지향적인 것은 대중들이 환영하고 즐겨 자생력은 물론 성장력내지는 확장력을 자체 성질에 갖고있다.

의정부문화원은 경기도 문화 소스와 더불어 미래지향성과 함께 문화적 가치면에서 ‘의순공주’가 문화원형임을 판단하고 다른 문화원형보다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보고 의정부가 갖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의정부시의 영원한 자산이자 경기도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한국의 문화로 세계의 빛나는 문화 자산으로 생산해내고 있다.
 

 

 


▲의순공주는?

‘의순공주’는 효종의 급조된 수양딸이다.

1627년 후금(後金)의 조선에 대한 제1차 침입인 정묘호란 때, 조선과 후금은 형제지국의 맹약을 하고 양국관계는 일단락됐다.

그러나 1632년 후금은 만주 전역을 석권하고 명나라 북경을 공격하면서, 양국관계를 형제지국에서 군신지의로 고칠 것을 요구했다.

또한 1636년 2월 용골대·마부태 등을 보내어 조선의 신사(臣事)를 강요했으나 인조는 후금사신의 접견마저 거절하고 8도에 선전유문(宣戰諭文)을 내려, 후금과 결전(決戰)할 의사를 굳혔다.

1636년 4월 후금의 태종은 황제를 칭하고 국호를 청(淸)이라고 고쳤으며, 조선이 강경한 자세를 보이자 분개한 청나라 태종은 압록강이 얼기만을 기다렸다가 그 해 12월 2일 10만 대군을 스스로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 쳐들어왔다.
 

 

 


조정에서는 급히 종묘사직의 신주(神主)와 종실(宗室) 등을 강화로 피난하게 했다.

14일 밤 인조도 강화로 피난하려 하였으나 이미 청나라 군에 의해 길이 막혀, 소현세자와 백관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으로 피했다.

그러나 16일 청나라군이 남한산성을 포위했고 1637년 1월 1일 태종이 도착하여 남한산성 아래 탄천(炭川)에 20만 청나라 군을 집결시켜, 성은 완전히 고립됐다.

성 밖에는 청나라 군이 무고한 백성들을 죽이고 노략질하기를 일삼으며, 어미는 진중(陣中)에 잡아놓고 그 아이들은 추운 길바닥에 버려 거의 모두 굶어죽고 얼어죽었다.

1월 30일 인조는 성문을 나와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찧음)’를 한다.

이후. 효종 1년(1650년) 청나라의 섭정왕인 도르곤(多爾袞)이 조선에서 왕비를 찾는다.

“왕의 누이나 딸, 왕의 가까운 친족이나 대신의 딸 중 정숙한 여성을 선발하라”는 것.

관료들은 딸을 보낼 수 없다며 물러선다.
 

 

 


지금의 의정부시 금오동에 살던, 효종의 10촌 할아버지뻘인 이개윤이 열여섯 살의 딸을 보내겠다고 나선다.

고마운 마음에 효종은 의순공주로 봉작한다. 대의에 순종하라는 뜻의 ‘의순(義順)’, 이름으로부터도 의순공주의 순탄치 않은 삶을 예고한다.

하지만 의순공주와 결혼한 도르곤은 7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역적으로 몰려 사후에 재산은 국가에 몰수되고 신분도 박탈된다.

의순공주는 효종 2년(1651년)에 또다른 청의 황족이며 도르곤의 부하장수였던 보로(博洛)의 첩종이 된다.

그런데 보로도 1년 뒤 세상을 떠난다. 우여곡절 끝에 7년 만에 조선으로 돌아왔지만 오랑캐에게 몸과 마음을 더럽힌 여인들을 배척하는 세상의 눈길에 휩싸여 쓸쓸이 스물여덟에 병들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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