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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철 경기도체육인회 회장

2012년은 경기도 체육계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 해다. 도는 올 한 해 동안 국내 최대 규모의 종합경기대회인 제93회 전국체육대회와 제93회 전국동계체육대회에서 각각 11년 연속 종합우승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경기도 선수단 2012년 런던올림픽서 체육웅도 위상 드높여

무엇보다 온 국민에게 감동과 환희를 안겼던 2012 런던올림픽에서 대한민국의 원정 올림픽 역대 최고 성적(종합 5위)에 이바지한 도 소속 선수단의 활약은 체육 웅도로서 위상을 더욱 높이는 계기가 됐다.

해를 거듭할수록 승승장구하며 대한민국 체육을 이끌고 있는 경기도 체육은 결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다. 창립되던 개척기부터 발전기를 지나 오늘날의 중흥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선수와 지도자, 체육행정가, 이제는 원로가 된 많은 이들의 피땀 흘린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중에서도 인천과 분리돼 체육회가 단독 창립되던 시기부터 햇수로 16년여 동안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의 수장으로서 경기도 체육을 이끌었던 이가 있다. 주인공은 바로 경기도 체육의 ‘선구자’이자 ‘산증인’인 정기철 경기도체육인회 회장(79·전 경기도체육회 사무처장)이다.

정기철 회장은 사무처장직을 내려놓은 뒤에도 도체육회 부회장과 고문을 지낸 뒤 도체육계 원로들의 모임인 도체육인회 회장을 맡으며 오늘도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경기도 체육의 발전을 위해 헌신 봉사하고 있다.

1972년 화성시 정남면장으로 시작해 오산읍장에 이르기까지 10년 가까이 지방공직에 종사한 정 회장은 1981년 7월 1일, 인천시가 직할시 승격으로 경기도와 분리되던 시기에 체육행정에 몸을 담게 됐다.

깃발 하나만 든 맨 몸으로 도체육회 사무처장 업무 시작

당시 토담으로 둘러쳐 있던 수원공설운동장(현 수원종합운동장) 내 임시건물 사무실에서 ‘경기도체육회’라는 깃발 하나만 든 맨몸으로 도체육회 사무처장으로서 홀로 업무를 시작한 것이다.

인천시로 선수 및 지도자가 대거 유출되면서 조직 정비는 물론 웬만한 종목의 경우 팀 구성도 되지 않은 채 그 해 10월 서울시에서 열린 제62회 전국체전에 참가한 경기도선수단은 결국 전국 13개 시·도 중 7위라는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야만 했다. 전년도 챔피언인 경기도로서는 처참한 결과였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경기도체육이 절치부심하고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전국체전 7위라는 성적표에 크게 자극받은 정 회장은 종목별 가맹단체의 정비와 각 종목 선수단의 구성을 위해 도내 방방곡곡을 누볐다.

정 회장은 “경기도의 지리적 특성상 각 시·군이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다 보니 선발전은 고사하고 종목별 선수 구성도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며 “종목 출전 점수라도 얻기 위해 서울농대, 아주대, 한양대 등 각 대학 운동장을 다니며 학생동아리 선수 위주로 팀이라도 꾸려야 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정 회장은 삼성전자, SK 등 향토기업의 지원을 통해 육상 수영 등의 기초종목 육성에 힘썼고, 각 시·군팀 창단을 적극 유도해 체조 레슬링 펜싱 사격 요트 등 비인기 종목의 육성 및 저변 다지기에도 노력했다. 비인기 종목에 대한 투자와 지원은 단기간 효과를 보지 못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종합경기대회에서 고른 활약과 종합 순위 상승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1986년 제67회 전국체전서 6년만에 종합우승

1982년 제63회 전국체전에서 5위로 한 단계 도약한 경기도는 결국 1986년 제67회 전국체전에서 감격스러운 6년 만의 종합우승을 이끌어냈다. 이후 경기도는 5년간의 전국체전에서 서울시와 종합우승과 준우승을 번갈아가며 차지하는 등 한국 엘리트 체육 발전을 위한 선의의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게 된다.

경기도 선수들 제11회 베이징아시안게임 대거 출전시켜 대한민국 종합 2위 기여

체육 강도로서 자리 잡게 된 1990년, 경기도는 그 해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11회 베이징아시안게임에 총 525명의 선수 중 20%에 가까운 90여 명이 참가하며 한국 선수단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특히 정 회장은 베이징아시안게임 한국선수단의 수석 총무로 참가해 경기도선수단의 수장이자 대한체육회 임원으로서 대한민국이 종합 2위를 차지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1992년 도 체육회관 개관···정 회장의 큰 성과

정 회장의 도체육회 사무처장 임기 동안 또 다른 성과는 경기도체육회관의 건립이다. 1992년 5월 14일 개관한 도체육회관은 경기도민의 체육에 대한 열망과 성원이 담겨있는 의미 있는 건물이다. 이전까지 경기도체육회 사무처는 수원공설운동장 주변 임시건물에서 시작해 수원상공회의소 건물에서 더부살이 하는 처지였다.

1989년 도에서 개최된 제70회 전국체전을 맞아 정 회장을 비롯한 도체육인들은 체전을 기념하는 배지를 판매해 13억 원이라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수익금을 얻었다. 여기에 7억~8억 규모의 경기체육 기금과 도비를 더해 착공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배지 판매는 열화와 같은 도민의 성원이 있어서 가능했다”며 “경기도체육회관 건립은 도민들의 애향심과 체육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결실로, 도체육인의 긍지를 높이는 효과로 작용했다”라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체육 꿈나무 육성과 지도자를 양성하는 경기체육의 요람 ‘경기체육고등학교’를 4년여 준비기간 끝에 마침내 1995년 개교하며 기초 종목의 저변 확대를 이루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1996년 도체육회 사무처장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경기도 체육을 향한 그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2008년 발족한 도체육 원로들의 모임인 경기도체육인회의 회장으로 추대돼 체육계로 돌아온 그는 고희를 지나 팔순을 바라보고 있음에도 여느 젊은이 못지않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올 한 해에도 평택에서 열린 제58회 경기도체육대회의 개회선언, 2012 런던올림픽 경기도 선수단 격려, 대구에서 벌어진 제93회 전국체육대회 원정 응원 등 국내외 종합경기는 물론 작은 규모의 종목별 대회도 직접 참여하여 후배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4년간의 초대 회장직 임기를 보내고 또다시 유임된 그는 경기도체육인회가 지난 4월 대한민국 체육인 원로의 모임인 한국체육인회에 정식가입 승인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더욱 발전적인 도체육인회의 운영을 계획하고 있다.
 

 

 


경기도체육 위해 지원해주는 도체육회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터뷰 말미에 그는 “경기도 체육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게 예우를 갖춰주고 지원해주는 현 경기도체육회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며 “원로 체육인들과 함께 경기도 체육인의 후견인으로서 모범을 보이며 힘닿는 데까지 봉사를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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