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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픔의 땅’ 매향리

폭격 멈추자… 상처위로 새살이 돋기 시작한다
2005년 쿠니 미군사격장 폐쇄
주민들 난청·유산·자살기도 등
반세기 넘는 고통 후유증 여전
희망 상징 평화생태공원 추진

 

매화향기 가득한 작은 어촌마을엔 포탄 소리가 멎은지 8년여가 가까운 지금도 수많은 폭격의 잔해가 생명이 숨쉬는 갯벌에서도 문득 우리에게 다가선다. 이제는 잊혀질만도 하건만 마을로 날아드는 포탄에 민간인 12명이 사망했고, 15명이 다친 세월의 기억은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단지 지난 2005년 ‘쿠니’란 이름의 사격장이 폐쇄되고 소유권이 국방부로 넘어갔을뿐 소박한 어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기는 마찬가지다.

언제쯤 갯벌에서부터 마을까지 예전처럼 매화향기가 생명의 숨결로 가득해질까? 그러나 아쉬워만 하기엔 우리의 희망은 너무 푸르다. ‘통합’과 ‘상생’의 상징인 흑뱀의 해 계사년, 그 새 아침에 우린 다시 평화생태공원의 새로운 첫 삽을 뜬다. 아픈 상처도 아물면 새살이 돗듯이 우리에겐 아직 희망이 있기에. 이제 다시 희망이다.

평범한 시골이다. 설경에 어울린 마을은 평화롭다. 눈앞에 바다가 있고, 썰물때면 드넓은 갯벌이 장관인 동네는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답답한 가슴을 비우러 찾기에 제격일 정도로 번잡한 도시에서 고작 1시간도 걸리지 않는다. 이곳이 바로 매향리다. ‘저주의 깃발’이 55년만에 내려진 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한국 현대사의 한 페이지를 고스란히 품은 곳이라고는 생각조차 하기 어렵다.

그러나, 나라잃은 설움에서 되찾은 조국을 위해 기꺼이 내어준 반세기가 넘는 아픔은 소중한 내나라 대한민국의 뒷짐속에 밤낮을 가리지않는 수면장애와 소음성 난청, 우울증과 자살 기도 등의 상처로 고스란히 동네를 휘감고 있다.

조용한 어촌은 아직도 투쟁과 포탄, 탄피 등 전쟁의 상징이 맨 먼저 발걸음을 맞는다. 입구 앞 매향리 평화마을 건립추진위원회 사무실에선 당시의 아픔을 간직한 상흔들이 지난 폭설에 덮여 있다. 그 옆에는 사격장 폐쇄 직전까지 사용된 미군의 쿠니사격장 관제탑도 여전히 서 있다. 언제쯤이면 다 지워지려나. 그 기대도 아랑곳 없이 미군이 지정한 폭탄응급처리구역이었던 농섬과 곡섬 사이에는 베트남전쟁 당시 사용하다 남은 포탄 수천기가 버려져 있어 어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도 현재진행형이다.

주민들은 상처투성이의 이곳에 평화생태공원 설립을 추진 중이지만 곳곳에 암초가 가득하다. 국방부는 영지 97만3천㎡를 화성시와 주민들에게 약 1천100억원에 매입하라고 요청한 상태다. 또 공원 설립비용으로 약 900억원의 사업비용이 예상되지만 국가에서는 424억만 지원하기로 결정돼 예산부족으로 당초보다 4년여가 미뤄진 2017년에야 조성 예정인 상태다.
 

 

 


이렇게 아픈데도 매향리 주민들은 웃는다. 6·25 전쟁 전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백완기(72)씨는 “평생 동안 고통 속에서 살았었지, 죽기전에 미군기지가 없어져 이제는 매일 바다에 나가 바지락을 캐든 뭘 하든 상관 없으니까 살판났어”라며 “공원 설립이 조금 늦어져도 지금 이 평화로운 분위기가 계속된 자체로 좋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8일 열린 ‘매향리 평화축제’는 한목소리로 희망의 노래를 부른 날이다. 채인석 화성시장의 국토대장정 15일차에 열린 평화축제는 미군 폭격장이었던 농섬이 훤히 보이는 자리에서 ‘매향리 평화음악회’를 열었다.

채 시장은 이날 “미군부대가 있는 다른 지역은 미군부대 주둔으로 경제적인 이익을 얻기도 했지만 매향리는 전적으로 피해만 입은 곳”이라며 “매향리는 차별을 너무 많이 받았다. 차이는 줄여야 하지만 차별은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채 시장은 또 “용산 미군기지는 특별법을 제정해 국비를 전액지원해서 공원으로 만드는데 매향리는 평화공원 조성에 드는 2천억원 중 400억원만 지원하겠다고 한다”며 “이런 곳에 평화공원을 조성하는데 국가에서 전적으로 지원해야 옳은 것이 아닌가. 국가에서 매향리 주민들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도 했다. 구구절절이 맞는 말이다. 국가를 위해 삶의 터전을 내주고 목숨까지 아낌없이 내온 소중한 국민이 아니던가.

주민들의 35%가 소음성 난청에 시달리고 일반인에 비해 청력이 20데시벨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난 것도 모자라 폭격섬광으로 일주일에 1~2일은 잠들기 힘든 수면장애를 겪는가 하면 자연유산률도 20%나 되는 것으로 조사된 ‘아픔의 땅’.

폭격장 설치 이후 200여 가구중 32명이 자살을 기도해 28명이 실제로 숨지고, 폭격장 인근마을 학생들이 학습장애로 문제아로 되는 비율과 주민들의 혈중 납 농도도 높고, 오폭과 불발탄 사고로 소중한 희생도 무던히 감내하던 매향리에 평화공원은 그래서 다시 희망이다.

그 희망을 가슴에 품고 다시 주민들은 아침을 연다. 바로 눈앞에 두고도 50년이 넘게 들어가지 못했던 바다에 들어갈 수 있었던 자유와 평화는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많은 발길이 매향리로 향한다. 변화는 사람만이 아니다. 동네에 흐르는 생기는 반세기가 넘게 잊고 살았던 가축들도 숨쉬게 했다. 황폐화됐던 지역살림도 조금씩 희망의 새싹을 틔운다.

사격장 폐쇄 후 축산업을 시작한 백원기(62)씨는 “사격장이 있던 시절에는 소음으로 소나 돼지가 쉽게 죽어 축산업 자체를 할 수 없었다”며 “현재는 양계장뿐만 아니라 소와 돼지를 키우고 있어 마을 축산업이 살아나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8살짜리 손자와 손을 잡고 걷던 김왕기(63)씨는 “이곳을 잘 모르는 관광객들은 사격연습이 시작되면 굉음에 놀라 전쟁이 터진 줄 알고 거리에 아무 집이나 들어갔었다”며 “관광객들이 부쩍 늘어난 것은 물론 서울 사는 아들도 2005년부터 매년 손자들이랑 찾아온다”고 말했다.

변화는 곧 희망이다. 그 희망의 밑그림엔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이 있다. 상처 치유를 위해 시작된 매향리 평화생태공원은 이제 예산부족을 핑계로 더 미루기에도 옹졸하다. 기대와 달리 뒷짐만 지고 있는 중앙 정부의 ‘매향리 역차별’ 속에서도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매향리는 매향리 주민만의 매향리이거나 화성시민과 경기도민만의 매향리가 아니기에. 전쟁과 상처를 넘어 평화와 상생의 끈을 놓치 않는 우리의 미래임을 알기에 오늘도 매향리는 여전히 드넓은 바다를 품는다. 다시 희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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