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치기 /김왕노
가지치기는 아버지의 오랜 버릇이었다.
가지로 갈 양분을 열매로 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가지치기뿐이라는 것을 아버지 말씀하셨다.
아버지 가지치기 하던 전지 가위
아버지 돌아가신 후로
새파랗던 날마저 벌겋게 녹슬어 있다.
벗어 놓은 장갑도 삭은 채 그대로 있다.
아버지가 가버린 것에 대해
합세해 항의하듯 아버지 가신 후
작은 열매만 맺는 배나무도 무성해진 잎만
철마다 대놓고 내 눈앞에다가 흔들어 대는 것이다.
나도 아버지가 들고
세월의 웃자란 가지나 쓸데없는 가지를
신나게 전지하고 싶던 튼튼한 전지 가위 하나
아버지 가신 후 나마저 녹슬어 버려
날마다 후회로만 푸르러 가는 것이다.
시인은 포항 출생으로 매일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이 땅의 아버지라는 이름은 크고 슬프다. 그것은 과거회귀로 삶을 성찰케 하거나 암울한 시절들을 끊임없이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고 해가 바뀌면서 육체와 정신의 그믐은 타락하기도 하고 기능대로 역설적인 방향을 잡기가 어렵다. 시인의 진술처럼 열매를 가져다주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늘 새로운 마술을 보여주기도 하고 전위시켜주기도 한다. 또 기다림의 자세와 미학은 늘상 반복되는 나무들의 단상만 아니더라도 잘 자라게 하였거나 성장케 하는 동 시대의 호흡에서 가지 많은 바람들의 가지치기는 자르거나 없애는 등의 반복으로 사색하게 될 것이다.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길을 걷지 못하였으나 시인이 당면한 세상 속 자아를 발견하고 희망대로 보답하는 비상구가 보이지 않는 아득함일지라도 아직 몇 개의 미성숙한 것들은 더 내려놓고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