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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개혁·새이념 열망 과학적 사유의길 열다

 

당쟁에 아버지·둘째 형 희생 벼슬에 나가지 않고 학문 전념 실학의 종장으로 방대한 저술

조선 후기 주체적 입장으로 주자학 대체 할 서양 문화 수용 40여년 걸쳐 성호사설 집필

‘천원지방’ 전통 우주론 대신 지구원형설 등 다양한 문제 탐구

기존 절대 관념 얽매이지 않고 ‘개척의 학문’ 실학 출발점 마련


 

 

 

실학박물관, 성호 이익 서세 250년 특별전‘새로 여는 하늘 땅, 세계 - 성호 이익의 실학’

성호 이익(1681∼1763)은 실학의 종장으로 불리는 학자다.

그는 부친이 당쟁으로 희생된데다 둘째형마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죽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벼슬자리에 나가지 않고 오직 학문에만 전념해 실로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 중에는 평생에 걸쳐 유교 경전에 대한 연구 성과를 정리한 ‘맹자질서(孟子疾書)’를 비롯한 경전에 대한 연구와 민생의 대책과 제도개혁 방안을 체계화한 ‘곽우록(藿憂錄)’, 40세부터 83세까지 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그때 그때 기록한 학문노트인 ‘성호사설(星湖僿說)’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올해는 성호 이익의 서세(逝世) 250년이 되는 해이다.
 

 

 


경기문화재단 실학박물관과 안산시 성호기념관은 성호 이익 서세 250년을 기념하기 위해 올해 상·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순회 특별전 ‘새로 여는 하늘 땅, 세계 - 성호 이익의 실학’ 전을 개최한다.

상반기 전시는 오는 26일부터 8월 18일까지 실학박물관에서 열리고 하반기 전시는 안산 성호기념관에서 10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열린다.

▲과학적 사유를 개척한 성호 이익

성호 이익은 조선후기 주체적 입장에서 서양 문화를 수용해 현실의 문제점을 타개하고자 했던 학자였다.

관념화된 주자학을 대체해 새로운 개혁안을 모색했던 이익은 당시 조선에 도입되었던 서양 학문의 실용성을 주목했다.

서양의 자연과학은 이익에게 과학 세계로 접근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과 방법을 제공해 줬다. 천지만물 각각에 내재한 원리를 탐구하며 관념을 넘어선 객관적 사실의 세계로 나아갔던 것이다.

‘잡학(雜學)’이라 경시하던 세상만물에 대해 이익은 ‘비록 작은 도(道)라도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다’는 실용적 관점에서 연구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가 40여년에 걸쳐 집필한 ‘성호사설’ 전편에 흐르는 다양한 문제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는 바로 개별 사물의 이치를 규명해 나갔던 과정이었다.

바다의 물결이 또 다른 파도를 일으키듯 하늘과 땅, 그리고 세계에 대해 과학적 사유의 길을 열었던 이익의 학문이 실학의 바탕이 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인식의 전환

16세기 후반이래 서양 선교사인 마테오 리치 등이 중국에 들어오게 된다. 이들은 선교의 일환으로 천주교와 서양의 자연과학 서적을 중국어로 번역한 한역서(漢譯書)를 다수 간행했다.

조선에서 간 사신단 일행은 이 책들을 조선에 소개하기 시작했다.

이익의 부친 이하진(李夏鎭)은 1678년 중국 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수천권의 서적을 구입해 귀국했다.

그 가운데 서학서도 포함돼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익은 바로 이 책들을 통해 서양과학을 접했다.

이익의 문집과 ‘성호사설’에서 확인되는 서학서는 ‘천주실의’, ‘직방외기’ 등 약 20여종이 이른다.

이 책들을 통해 이익은 서양의 자연과학을 주체적으로 학습했고 인식 전환의 계기를 삼을 수 있었다.
 

 

 


▲새로운 학문의 세계로

이익은 시대가 요구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졌다.

그 가운데 새로운 자연과학적 지식을 제공한 것은 서학(西學)이었다.

그는 기존 유학의 학습과정에서 얻은 지식을 바탕으로 서양의 과학 지식을 유학의 그것과 대비해 각각의 차이와 우열을 탐구해 나갔다.

또 제자들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과학적 원리에 대한 인식을 함께 했다.

이를 통해 이익은 기존의 절대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었다.

이익과 제자들의 학문활동은 조선에서 사실·경험·관찰에 입각한 과학 연구의 전통을 수립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 이면에는 현실을 개혁하고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이념을 갈구했던 학자들의 열망이 있었다.
 

 

 


▲천체 우주에 대한 인식

이익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천원지방 天圓地方)”라는 전통적 관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늘의 형태에 대해 “양파껍질같이 각각 겹쳐져 있는 하늘은 큰 수레바퀴 가운데 작은 수레바퀴가 있는 것과 같다”라고 표현했다.

전통 우주론은 이익에 이르러 과학적 인식으로 전환했다.

행성의 구조에 대해 태양과 달 그리고 지구의 크기가 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수학적으로 파악했다. 서양 천문도는 망원경 등의 기구를 활용한 관찰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교하다고 했다.

우주 천체 현상을 관통하는 물리적 법칙을 믿었고 스스로 과학적 사유의 바탕을 삼았다. 이를 통해 이익은 하늘과 인간의 상호 작용을 강조하던 관념적 인식에서 벗어났던 것이다.
 

 

 


▲지구원형설의 수용

“땅은 모양이 탄환과 같고, 사람은 표면에 살면서 땅을 밟고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다.”

이익은 지구 원형설을 긍정했다.

‘땅은 네모나다’라는 전통 관념을 벗어나 지구의 모양은 타원형이며 둘레는 9만리라는 서양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이미 마젤란 등의 세계일주에 의해 증명됐다고 했다.

그 경험을 반영한 서양 세계지도에 대한 지식은 이익의 믿음을 확고히 했다. 지구의 중심으로 쏠려 들어오는 힘 ‘지력(地心)’은 지구원형설을 뒷받침해 주는 논거였다.

나아가 이익은 동서양 문명의 특성을 지구 원형설에 근거해 설명했다.

중국은 지구 위쪽의 정중앙에 위치한 지역으로 ‘인물이 처음 생겨난 땅이요. 성현이 먼저 태어난 곳’이었다.

그 아래쪽 정중앙은 구라파로 물질문명이 발전한 나라였다.

이익은 서양문화의 우수함을 인정하되 음양(陰陽)의 형이상학적 위계에 근거해 동양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점을 동시에 설명했던 것이다.
 

 

 


▲개척의 학문, 실학의 길을 열다

16세기 후반 이래 이수광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 기록됐듯 조선에 서양문화를 소개하려는 시도는 일부분 있어 왔다.

하지만 명청 교체의 격변과 조선의 보수적인 체제 고착으로 인해 단순한 관심의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호 이익은 서양의 학문을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으로 삼았다.

주자학 외에 양명학, 고증학 등 다양한 사조를 탐구하며 경세치용학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서학(西學)을 주목했던 것이다.

이익은 실증(實證)과 고증(考證), 그리고 실용(實用)의 차원에서 서학에 접근했다.

특히 서양의 천문·기계·수학 등 과학 분야의 성과는 동양에서 일찍이 도달하지 못했던 분야임을 인정했다.

과학적 자각 위에 이익은 주자학의 자연인식을 비판했다.

‘한 글자라도 의심스럽게 여기면 망령되게 여기고 이것저것 찾아서 대조하면 죄’라는 주자학의 관념적 학문풍토를 넘어섰던 것이다.

또 천지만물에 대한 과학적 인식은 인간과 사회, 나아가 세계관의 변화에 전환점을 마련해 줬다.

그와 교유했던 학자들은 드넓은 학문의 바다가 있었음을 깨닫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이익의 학문은 ‘완성의 학문’이라기보다는 ‘개척의 학문’이었다.

서양의 문화와 과학은 조선 학계의 내적 성숙에 의해 도입되기 시작하였고 그 출발점에 성호 이익이 있었다. 새로운 학풍에 영향을 받은 학자들은 ‘성호(星湖)’라는 호수에서 시작한 끝없는 학문적 항해를 떠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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