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발이 묶이다/이상훈
우물가에 쪼그려 앉아 어떻게 하면 우물 속에 빠진
달을 길어 올릴까 궁리궁리한 끝에 결국 포기했다
북극 칠성의 무게를 재려고 푸줏간에서 저울을 빌려왔다
눈금 읽는 방법을 몰라 도로 가져다주었다
옆 마을 용한 점쟁이 왈 금년에는 애정운이 안 좋은
괘가 나왔다 하여 몹시 실망하여 점집을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에 두루마기 편지지 낱장을 사서 왔다
손꼽아 기별을 기다리다 못 견디어 심부름 값을 주고
인편으로 편지를 보냈지만 모두 감감무소식이었다
찬 겨울이 오기 전에 낙향하려고 주섬주섬 봇짐을 싸는데
기러기가 먼저 찾아오는 바람에 또 발이 묶여
일 년을 더 눌러앉아 살기로 했다
-이상훈 시집 <나비야 나비야>에서
사람은 꿈을 꾸며 산다. 꿈이라도 있어야 이승을 버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꿈이라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옳은 말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꿈을 꾸지 않으면 인생이 참 팍팍하고 답답하다. 하지만 꿈은 꾸어보았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이루어지는 꿈과 시인의 꿈은 좀 다르다. 시인은 이루어지는 꿈은 처음부터 꿈이라 하지 않는다. 그래서 꿈을 꾸다가 이루어지지 않아 절망하는 꿈은 아예 꾸지 않고 포기하겠다는 것이다. 꿈이 별 거냐. 우물 속의 달을 건진들, 북극 칠성의 무게를 재본들, 점쟁이 괘가 좋다고 호들갑을 떤들, 기다리던 편지 받아본들, 도시를 떠나 낙향해 본들, 지금이나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시인의 주장으로 보인다. 역설을 통한 인생의 답 없음이 통렬하다.
/장종권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