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우물/정수자
부답의 메일 끝에 시 한 편을 건져들고
이명과 대작하듯 제 메아리에 제가 취하는
밤이다
허공 우물에 목을 길게 드리우는
문병마냥 다녀오던 노모의 빈 방께로
어둠도 혼자 고이는 고아 같은 밤이다
마음이 풍덩풍덩 빠지는 폐가의 우물 같은
그리는 그만큼씩 다 별 되는 건 아니라도
부르는 그만큼씩 더 빛나는 건 아니라도
밤이다
되삼키는 이름에 은하강도 붉게 젖는
정수자 시집 <허공우물/천년의 시작 2009년>
시를 쓰는 사람은 많으나 시를 살아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살다가 <저녁의 뒷모습> <저물녘 길을 떠나다> 등의 시집을 통해 시인을 만나며 시와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닮았을까 싶었다. 어머니 떠나보내고 빈방을 들여다보는 시인의 눈빛이 허공 우물보다 깊다. 어둠도 혼자 고이는 고아 같은 밤 은하강도 붉게 적시던 깊은 우물 같은 마음이 시를 쓰게 했으리라. 오롯이 시만을 살아내는 시인의 그 깊디깊은 속내가 문득 그리운 밤이다. /조길성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