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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도 주변인도 없는 세상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

작가 김애란의 동명 단편 소설 극화
편의점녀·마트녀·학원강사녀 등
다섯 여자가 펼치는 소소한 일상
단절된 공간 속에 살고 있는 인물들
하나로 엮어낸 놀라운 연출 돋보여
음악·전시 등 다양한

 

 

 

드라마 전시 <노크하지 않는 집>

그녀들의 삶이 전시된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오는 22일까지 공연하는 ‘노크하지 않는 집’은 공감의 작가 김애란의 동명의 단편을 극화한 작품이다. 배우이자 연출가인 이항나가 각본과 연출을 맡아 ‘드라마 전시’라는 새로운 장르로 탄생한 이 작품은 관객의 오감을 은은하게 자극하며, 우리의 삶 깊숙한 곳을 담담하게 이야기한다.



근래 TV드라마들은 대단히 친절하다.

배우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전해져 오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생’해 주는 가 하면, 자신의 생각을 독백의 형식을 빌어 ‘설명’해 준다.

캐릭터의 성격과 역할도 분명하다. 착하기만한 주인공과 못되기만한 악역, 주변인물은 종종 극의 긴장을 완화하는 재미를 담당하지만 이야기의 큰 틀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일종의 공식이 성립돼 있는 셈이다.

그러나 공식에 익숙해 질수록 시청자들은 극에 흥미를 잃는다. 그런가하면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해 주지 않으면 반감을 갖기도 한다.

인간의 삶을 이야기해야 할 드라마가 점차 삶과 유리돼 가고, 캐릭터들이 ‘인간적임’을 잃어가는 상황, 그리고 그 이면에서 양산되고 있는 수동적 관객은 달가운 일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연출가 이항나가 선보이는 ‘노크하지 않는 집’은 불친절하게 다가오면서도 형식과 공식의 탈출을 통해 ‘드라마’가 갖춰야 할 본연의 가치를 간직해 내고 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들어선 소극장은 무대와 객석 대신 어지럽게 놓인 소품들이 점령하고 있다.

한편에 마련된 벤치에서 기타리스트 박세환이 전하는 잔잔한 기타연주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선율에 맞춰 소품 주변을 돌아본다.

언뜻 불규칙하게 놓인듯한 소품들은 조명으로 그어진 선들을 따라 네모난 각각의 공간을 구성하고 있고, 각 공간 앞에는 공간의 주인을 설명해주는 작은 쪽지가 붙어있다.

10분 남짓, 차근차근 소품으로 구성된 무대를 둘러보고서 무대 주위에 놓인 의자 하나를 가져다 자리를 잡는다.

어디에 의자를 놓을 지는 자신의 취향이다.

극이 시작되면 각 공간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다섯 여자가 하나 둘 방으로 들어선다.

담배 한대를 물고 컴퓨터를 두드리고 있는 ‘편의점녀’, 과자를 잔뜩 싸들고 돌아온 ‘마트녀’는 방에 들어서자 마자 화분에 정성껏 물을 뿌린다. ‘학원강사녀’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황급히 창밖을 살피곤 문을 닫는다. 한껏 몸을 움츠렸던 그녀는 조심스럽게 우울증약 한알을 입에 넣는다.

하루 종일 술에 취해 사는 ‘술녀’도 비틀대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누군가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지만 종종 욕설이 오갈 뿐 즐거운 상대는 아닌 듯하다. 다시 맥주 한잔을 들이키던 그녀는 그만 구토가 치밀어 오른다.

한 쪽 구석에 자리잡은 방으로는 안경을 낀 ‘소심녀’가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간다. 도통 입을 열지 않는 그녀는 후에 등장하는 아버지에게 울화를 쏟아낼 때가 돼서야 잠시 목소리를 찾는다.

각자의 공간에 다섯 여자가 자리를 잡고 나면 각자의 일상이 펼쳐진다.

좁은 공간에서 서로의 삶을 사는 이들은 문 밖으로 들리는 인기척에 의존해 서로를 피한다. 어쩌다 마주치더라고 급히 고개 숙여 인사하며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 않은 채 급히 방으로 향한다.

가상의 벽, 가상의 문으로 격리된 그들은 공연 내내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간다.

삶의 무게와 비극이라는 공통된 감성 아래 모두가 주인공이고 또 주변인이다.

때때로 옆 방에서 들려오는 잡음에 반응하지만 이내 자신의 삶 속에 파묻혀 버리는 그들의 모습은 때때로 어지럽다.

관객은 다만 그들의 일상을 바라볼 따름이다. 무엇을 느껴야 할지, 누구에 초점을 둬야 할지는 오로지 관객의 몫이다.

이 점에서 ‘드라마 전시’의 의의를 엿볼 수 있다.

관객의 시야는 이 전시된 드라마를 담는 하나의 틀이다. 관객은 자신의 눈에 비친 장면장면 속에서 스스로 초점을 정해야 한다.

인물들 전체가 만들어내는 암울한 삶의 모습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것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삶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하지만 극은 관객의 시선을 한 곳에 매몰시키지 않는다. 배우들의 대사와 행동, 시선이 공간을 넘나들며 서로 얽히도록한 영리한 연출은 단절된 공간 속에 살고 있는 그들의 삶을 하나로 엮는다.

또 미디어아트, 음악 전시 등 다양한 장르의 활용으로 60여분의 시간 동안 관객의 오감에 다양한 신호들을 끊임없이 전달한다.

모두가 주인공이자 모두가 주변인인 그들의 모습이야 말로 삶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 아닐까.

펼쳐진 세상 속에서 이야기를 만드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다. 누군가를 내 공간으로 들여오는 것 역시 자신의 몫이다.

떠먹여지고 있는 이야기, 강요되는 감상에 지쳐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그 문을 두드려 보자. 일반 3만원, 대학생 2만원, 청소년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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