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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현실에 대한 풍자 가득

공연리뷰-접시닦이들
접시닦이 노동자들이 펼치는
자본주의 밑바닥 삶의 이야기
특별한 꾸밈없는 일상적인 대사로
기득권층에 대한 풍자·해학 담아

 

연극을 관람하기 시작하고 20여분이 지날 즈음, 극이 본격적으로 밑바닥 삶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하자 가슴이 턱 막혔다.

공연 시작을 기다리며 간단한 요기거리로 먹은 샌드위치가 속을 더부룩하게 짖누르기 시작했다.

한시간도 더 전에 먹은 샌드위치가 이제 와서 소화를 거부하고 있는 것은 최근의 경기와 맞물린 극의 분위기와 극중 인물들의 막연하고 막막한 삶의 모습 때문이었다.

극은 한때 잘나가던 펀드매니저에서 접시닦이로 전락한 찬진의 첫 출근으로 시작한다.

최 고참인 방두식은 찬진을 신참이라 부르면서 접시닦이라는 직업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그는 이미 어두운 지하공간에 자신만의 성을 쌓고 있는 듯 하다.

활기 넘치는 얼굴로 접시를 닦는 단순한 노동에서 삶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두식. 그러나 찬진의 반응은 영 신통치 않다.

맞지 않는 작업복에 툴툴대며 “나를 숨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이 곳에 왔다”는 찬진의 말 역시 얼핏 그럴싸하게 들리지만, 결국은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한차례 암전, 담배를 꼬나물고 구부정하게 등장한 석구가 찬진과 대면한다.

일가 친척 하나 없이 병들어 있는 노인, 정년을 한참 넘겼을 이 노인은 죽기 전에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그의 꿈과 현실은 너무나도 먼데다 남은 시간도 많지 않아 보인다. 이룰수 없는 꿈은 그저 꿈일 뿐이고 그의 현실적 소망은 단지 해고되지 않는 것. 그저 접시닦이로서의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에게서 희망은 자취가 없다.

극은 연기 사이사이에 암전을 통해 시간을 흘려보낸다.

한차례 암전이 끝날 때마다 일에 적응해 가는 찬진의 목소리가 커지고, 젊은 혈기에 ‘먹물’까지 먹은 그는 점점 자신들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반감이 쌓여간다.

“위엣 놈들”을 운운하며 자신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자고 두식에게 건의하는 찬진. 그러나 두식은 이미 자신이 쌓은 성에서 그 “위엣 놈들”과 적당히 타협하고 살고 있다.

부당한 사회 체제에 하루하루 부화가 치미는 찬진, 체제에 모습을 감추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익을 뽑아내며 나름 만족스런 삶을 살아가는 두식, 그리고 이미 체제에 동화된 석구, 세 사람의 캐릭터가 만들어 내는 결말은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저 다시 시작되는 그들의 삶이다.

연극은 상대적으로 명쾌하고 빠르게 진행된다. 찬진이 화두를 던지면 두식이 자신만의 사고방식으로 일장 연설을 늘어 놓고, 찬진이 호응 또는 불응한다. 석구는 이쪽 저쪽을 오가다 다시 ‘접시닦이’로 돌아간다.

수려한 두식의 대사와 달리 찬진과 석구의 대사는 특별한 꾸밈없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다. 그러나 대단히 풍자적이고 또 정치적이다.

현실과 풍자의 공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이 둘의 병렬과 혼합은 사회 기득권층에 대한 풍자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밑바닥에 위치한 자신들에 대한 풍자로 나아간다.

‘위엣 놈들’의 삶을 경험한 전력이 있는 찬진은 허허실실 하지만 때론 무자비하고, 때론 연민을 자아내는 두식과 대립한다.

지하실의 공간에서 찬진은 비권력자로서 또다른 권력자인 두식과 갈등과 대결을 벌이고 이들의 모습은 우리를 둘러싼 사회에 권력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만들어 낸다.

연극은 경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배우의 연기와 행위들은 역동성을 지향한다. 암전에 맞춰 흘러나오는 청각적 요소들이 정서와 논리에 신호를 보낸다.

담담한 대사와 ‘위엣 놈들’이라는 다소 추상적인 지칭 대상, 우회적인 풍자 등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극을 관람한다면 의미를 찾기 힘들 수 있다. 반면 작품 창작의 배경이 되는 ‘자본주의사회’를 인지하고 극을 관람한다면 보다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것이다.

(9월 21일~10월 6일,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10월 30일~11월17일, 대학로 이랑시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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